분봉(벌무리가 벌집을 버리고 떠나는 것) 위기를 잘 넘긴 벌통의 벌은 꿀을 모으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한다. 6월, 아카시아꽃을 찾아다니던 벌은 이제 밤꽃 위에 내려앉을 준비를 한다. 아카시아꿀은 투명한 노란색이고 밤꿀은 짙은 갈색이다. 아카시아꿀보다 밤꿀이 더 쌉사름한 맛이 난다. 이렇게 꿀의 맛과 색이나 향기는 밀원(꽃이 피는 식물)에 따라 다르다. 같은 밀원이라도 생산지, 생산연도, 기후조건에 따라 또 다르다. 일반적으로 색이 연하고 향기가 부드러운 꿀이 좋은 꿀이라고 본다.
벌은 꽃에서 꿀을 따와 벌집을 가득 채워간다. 꿀은 벌의 ‘먹이’이기도 하다. 꿀방에 머리를 박은 벌들이 꿀을 먹기 위해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걸 보면 내가 괜히 흐뭇하다. 벌은 날갯짓으로 꿀 안의 수분량을 조절한다. 방에 꿀이 들어찬다고 보이는 대로 채밀하면 맛없는 꿀을 먹게 된다. 벌이 스스로 만드는 밀랍으로 봉개(방 입구를 닫음)하길 기다려야 한다. 벌은 꿀을 저장하면서 효소와 산을 첨가해 꿀을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꿀을 많이 모으려면 벌통이 더 있는 게 좋지 않을까? 그래서 대부분의 양봉가들은 초봄에 단층이던 벌통을 유밀기(꿀 들어오는 시기)에 한 층 더 올린다. 1층 벌통만 있으면 ‘단상’, 2층 이상 벌통은 ‘계상’이라 한다. 꿀을 많이 모으려면 이렇게 계상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양봉가들이 네모난 나무 상자 모양으로 벌집 크기가 일정한 ‘랭스트롱스’ 벌통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꿀은 벌이 모아오지만 어떻게 꿀을 모을지는 양봉가가 결정할 수 있다. 산란과 저밀(꿀의 저장)이 동시에 이뤄지는 벌집에선 보통 벌집 위쪽이 꿀, 중앙은 산란방이 된다. 이렇게 한 벌집에 꿀과 산란방이 섞여 있으면 벌집에 산란방이 남아 있어 채밀 과정이 불편할 수 있다. 또 여왕벌을 벌통 안에서 격리시켜 산란을 제한하면, 양육하느라 바쁘던 일벌도 밖에 나가서 꿀을 따오니 처음에는 꿀이 많이 들어오는 것 같다. 하지만 일벌은 45일이면 수명을 다한다. 일벌이 다 죽기 전에 새로운 벌이 태어나야 꿀도 계속 모이고 벌무리도 유지된다.
나는 단상과 계상 사이에 격왕판을 둬 단상에선 산란, 계상에선 저밀이 되도록 분리했다. 가장 효율적으로 꿀을 모으는 방법이라고 해서 많이들 그렇게 한다. 격왕판이란 여왕벌은 빠져나갈 수 없고 일벌은 자유롭게 왕래하도록 일정한 크기로 구멍이 나 있는 판이다. 여왕벌이 일벌보다 몸이 크기 때문에 격왕판을 두면 단상에 있는 여왕벌은 계속 그 안에서 알을 낳고 계상에는 일벌만 갈 수 있어 꿀만 모을 수 있다. 만약 계상에 산란이 많이 일어났다면, 그 벌집을 단상으로 내리고 꿀이 들었거나 빈 벌집을 계상으로 올리면서 벌집을 관리하면 된다.
서울 동대문의 옥상 양봉장도 5월 중순부터 계상을 2~3층으로 쌓아올렸다. 벌통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른 벌을 눈길로 좇아보니 벌들은 금세 건물 밖으로 점이 되어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 궁금하지만 추측만 해볼 뿐이다. 노트북으로 지도를 펼쳐놓고 인근 녹지를 찾아봤다. 주변 곳곳에 약간의 공원이 있다. 특히 남산까지 거리가 약 5km이기 때문에 벌이 꽃을 찾아 충분히 비행할 거리가 된다. 아마 내 벌들은 남산까지 비행할 것이다.
계상을 쌓아올리면 혼자서는 양봉하기 힘들어진다. 꿀이 가득 찬 벌집은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만큼 무겁다. 그 벌집이 10장씩 있는 벌통은 건장한 성인 남성도 혼자 들어올리기 힘들다. 이 경우 다른 양봉가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공동 양봉을 하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어 편하다. 물론 수확물은 나눠야 하겠지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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