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꿀비가 내린다

도시 한복판에서 수확한 건강한 벌꿀
등록 2017-09-14 02:26 수정 2020-05-03 04:28
채밀기 안에 벌집을 넣고 한 방향으로 돌리면 원심력 때문에 꿀만 빠져나온다. 한 면의 꿀이 다 빠져 나오면 벌집 방향을 바꿔 끼고 다시 돌린다. 최우리

채밀기 안에 벌집을 넣고 한 방향으로 돌리면 원심력 때문에 꿀만 빠져나온다. 한 면의 꿀이 다 빠져 나오면 벌집 방향을 바꿔 끼고 다시 돌린다. 최우리

“중금속 나오는 꿀 너나 먹어라.”

도시양봉 기사를 쓰면 종종 이런 댓글이 달린다. 그러게 말이다. 만약 중금속 든 꿀이라면 도시양봉은 음식쓰레기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바로 댓글을 달려다 참는다. 왜냐면 나는 중금속 없는 꿀을 맛있게 잘 먹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나도 의심했다. 자동차 매연과 건물 열기를 생각할 때 도시에 사는 녹색 생명의 몸 안에 분명 나쁜 성분이 농축돼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와 양봉 동료들은 올해도 ‘식용 적합’ 판정을 받은 꿀을 수확했다.

사실 꿀은 벌이 온몸으로 낳은 결실이다. 꿀은 벌이라는 자연 필터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다. 꽃은 화분을 다른 꽃으로 보내기 위해 단맛 나는 액체인 꽃꿀을 만들어 벌을 유혹한다. 벌은 꽃꿀을 빨아먹느라 정신없이 여러 꽃의 암술과 수술을 오가며 꽃가루를 퍼뜨린다. 그러고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채집된 꽃꿀을 벌은 다시 토해낸다. 봄이면 밖에서 재미나게 놀다 벌통으로 돌아온 벌들은 벌집에 머리를 처박고 엉덩이를 씰룩거린다. 꿀을 토해내기 위해서다. 벌은 꽃꿀을 토해내며 어금니에서 발생하는 물질과 배 속 효소를 섞어 꽃꿀을 포도당과 과당으로 분해해 꿀을 만든다. 꿀을 방에 모아뒀다고 끝이 아니다. 벌은 계속 날갯짓해 꿀 속 수분을 날린다. 꿀 먹었을 때 입 안에 진함과 진득함이 맴도는 건 꿀에 함유된 수분을 벌이 날려서다. 꿀의 수분량은 10~20%다.

벌이 꽃에서 꿀을 딸 수 없는 가을·겨울에 벌에게 설탕을 먹여 채취한 꿀을 ‘사양벌꿀’이라 한다. 이렇게 만든 설탕꿀과 진짜 꿀을 구별하려면 꿀 성분표에 표기된 탄소동위원소비를 확인하면 된다. 보통 -23‰(퍼밀) 이하여야 진짜 꿀이다. 탄수화물이 주성분인 꿀은 탄소값이 꽃꿀 값인 -22‰에서 -33‰ 사이여야 한다. 설탕의 탄소값은 -11‰ 정도라 차이가 난다. 올해 우리가 딴 꿀은 -24.6‰이었다.

도시양봉을 하며 꽃마다 다른 꿀맛과 색을 보지 못하는 건 아쉬운 일이다. 원하는 꽃만 따라다니며 채집하는 이동양봉과 달리 도시양봉은 잡화꿀밖에 먹지 못한다. 하지만 여러 맛이 나는 잡화꿀을 음미하며 벌들이 어떤 꽃 위를 날아다녔을지 상상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쉬움은 따로 있다. 도시 곳곳에 계절별로 피는 꽃(밀원식물)이 다양하게 많았다면 꿀도 여러 종류로 딸 수 있을지 모른다.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대로에는 밀원식물이 쭉 늘어섰다던데, 광화문대로를 각종 밀원식물로 꾸미는 건 어떨까. ‘꿀 부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8월26일, 서울 광진구의 한 학교 교실에서 채밀기를 돌렸다. 원심력으로 벌집에서 빠져나오는 꿀이 스테인리스 채밀기 벽에 번쩍거리며 붙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고였다. 체에 걸러 꿀만 따라내니 마치 꿀비가 내리는 것 같다. 벌이 고생해 만든 꿀을 시큼한 자몽에 찍어먹고, 고소한 프라이드치킨에 찍어먹고, 담백한 바게트빵에 발라먹었다. 딸이 종종 벌에 쏘여 아파할 때 쓸데없는 짓 하고 다닌다며 꾸중하시던 어머니도 꿀이 들어간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