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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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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 벌 보러 가자

도시빈민 감수성 체득하는 도시양봉가의 땅고르기
등록 2017-02-15 23:21 수정 2020-05-03 04:28
지난해 8월16일 ‘어반비즈서울’이 서울 동작구 핸드픽트호텔 옥상에 놓은 벌통에서 꿀을 수확했다.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오른쪽 남성)와 그의 설명을 듣는 시민들. 최우리

지난해 8월16일 ‘어반비즈서울’이 서울 동작구 핸드픽트호텔 옥상에 놓은 벌통에서 꿀을 수확했다.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오른쪽 남성)와 그의 설명을 듣는 시민들. 최우리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도시인이 양봉을 하고 싶다면 ‘도시양봉’을 하면 된다. 빌딩숲에서 양봉하면 도시양봉이고, 산속에서 양봉하면 시골양봉이다. 빌딩과 아파트를 병풍 삼아 양봉할 수 있는 융통성과 다른 도시인과의 공생을 해치지 않는 섬세함. 도시양봉가에게 더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옥상은 세계 도시양봉가들이 주목하는 공간이다. 인간이 지구를 점령한 듯 보이지만 광활한 땅속과 하늘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도시인이 이용하는 공간은 기껏해야 아래위로 10여m에 불과하다. 서울을 비롯해 영국 런던,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 등 모든 도시양봉가들은 옥상을 활용할 것을 권한다. 시청이나 구청 같은 관공서, 학교나 백화점 옥상을 활용하거나 아예 꿀을 사용하는 식당이나 빵집 건물 옥상에 벌통을 두고 요리하는 도시양봉가도 있다.

서울의 빌딩 옥상 몇몇에도 벌이 산다. 동작구 상도동의 핸드픽트호텔 옥상과 강남구 봉은사로에 있는 부즈까페 건물 옥상이 대표적이다. 명동 유네스코빌딩 옥상과 여의도 한국스카우트연맹 건물에도 벌통이 있었다.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뒤 서울시청 옥상에도 벌통이 잠시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서울대와 숭실대 같은 대학 옥상에서도 종종 벌을 키운다. 자신의 주택 옥상에서 벌을 치는 사람도 꽤 있다.

옥상에 사는 벌은 도시인 눈높이로 날아다닐 일이 거의 없다. 장애물 없이 숲과 강변의 꽃을 보러 자유로이 비행한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개발되기 전까지는 비행기와 건물 옥상 사이 빈 공간이 날개 달린 생명의 마지막 피난처이지 않을까.

“그래도 벌통을 설치할 옥상을 찾기 쉽지 않은데 어떡하죠?” 수도권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예비사회적기업 어반비즈서울의 박진 대표에게 물었다.

박 대표가 대답했다. “집 구하는 방법이랑 똑같아요. 벌을 키울 만한 위치에 있는 건물을 골라보세요. 그다음에 등기부등본을 떼고, 등본에 나오는 건물주를 만나보는 거죠. 옥상을 빌려주면 수확하는 꿀의 일부를 주겠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 등 제안을 해보세요. 도시양봉에 관심 있거나 도시양봉을 이해하는 착한 지인이 건물주라면 가장 좋죠.”

박 대표는 항상 밝고 긍정적이다. 그의 말만 들으면 도시에서 양봉터 구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착각할 정도다.

‘남의 논과 밭을 경작하며 곡식을 바치던 소작농의 삶도 이러했겠지. 건물주가 될 수 없다면 건물주의 친구라도 될걸 그랬어. 이참에 옥탑으로 이사를 갈까. 개·고양이도 아니고 세입자가 벌을 키운다고 하면 집주인이 좋아할까….’

대부분의 도시양봉가는 자연스럽게 도시빈민의 감수성을 체득한다. 부동산과 생태, 공동체 문제 등 도시가 낳는 사회문제에 눈을 뜰 수밖에 없다. 올해 나는 서울의 어느 착한 건물주가 내준 옥상에서 벌들을 만날 계획이다. 게을러 직접 땅을 구하지는 못했다. 전문 도시양봉꾼인 어반비즈서울이 설치한 옥상의 벌통 하나를 관리하기로 약속했다. 전문 소작농에게서 소작하는 전대차계약이랄까. 일단은 씩씩하고 부지런한 소작농이 되어보려 한다. 이래저래 기대되는 봄이 오고 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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