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예요?”
“남산에서 만든 꿀이에요.”
10월21일 낮, 맑고 밝은 가을 하늘 아래 서울 용산구 용산2가동 자치회관 앞 해방촌오거리에는 꿀 향이 은근하게 퍼졌다. 해방촌에서 도시양봉을 하는 비밀(Bee Meal)이 2014년부터 네 번째로 동네잔치를 여는 날이다. 비밀은 올해 해방촌의 한 주택 옥상과 남산 소월길에서 키운 벌통 7개에서 꿀 약 65kg을 얻었고, 이것을 동네 주민들과 나누기 위해 시식 행사를 준비했다.
비밀의 이종철씨는 도시의 속도에 지쳐가던 몇 해 전 양봉을 배웠다. 비밀은 ‘벌(Bee)들의 밥(Meal)’이라는 뜻으로 꿀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양봉은 배웠는데 뭘 할까 하다 비밀을 시작했어요. 올해는 아카시아꽃이 지고 꽃이 부족해서인지 꿀이 그렇게 많이 모이진 않았어요.” 비밀은 꿀을 따서 벌이 겨우내 먹을 꿀을 남겨두고 이렇게 나눔을 해왔다. 일종의 마을운동 아니냐는 말에 “마을에서 수확한 꿀이니 나눠 먹을 뿐”이라고 이씨가 겸손하게 말했다.
홍연숙(46)·최근배(50) 부부를 비롯한 다른 도시양봉가들도 행사를 도왔다. 떡집에서 가져온 초록색과 흰색 절편에 꿀과 견과류를 발랐다. 과자 위에 치즈와 꿀 먹은 견과류를 올려 카나페를 만들었다. 비밀의 유아름씨는 꿀 먹은 팥양갱, 단호박양갱, 백년초양갱을 만들어 예쁘게 잘라 가져왔다. 유씨는 “농가의 양봉은 경제활동 성격이 강하지만 도시에선 사회활동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꿀을 통해 마을에서 지나칠 수 있는 이들과 진짜 이웃이 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들른 주민들은 꿀맛을 보고 또 봤다. 지팡이를 짚은 70대 할머니, 외출하는 50대 주부, 슈퍼에 나온 60대 아저씨가 ‘꿀이 달고 맛있다’며 웃었다. 동네 아이들에게 벌을 보여주기 위해 탑바 형식의 벌통이 등장했고, 벌과 관련한 ‘OX 퀴즈’를 푸는 시간도 마련됐다.
지난 8월 비밀에서 양봉을 배운 홍씨 가족도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기 위해 양봉을 시작했다. 머리에 꿀벌 머리띠를 한 홍씨는 “심각하게 생각하며 양봉을 시작하진 않았다”면서도 “회사일은 괴로움을 줄 때도 있지 않나. 양봉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중”이라고 했다. 페이스북을 보고 행사장에 왔다는 일러스트레이터 최민주씨는 아카시아꽃으로 유명한 경북 칠곡에서 내년 3월 문을 열 예정인 ‘꿀벌나라 테마파크’의 디자인 컨설팅을 담당했다. 최씨는 “도시환경이 좋아야 도시양봉도 잘되는 걸 알았다. 지방자치단체가 도시양봉을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비밀을 통해 양봉에 눈뜬 ‘해방촌양봉’의 박인형(39)씨의 마음도 나와 같았다. “올해 처음인데 벌통 3개에서 20kg 수확했어요. 옥상 빌려준 분, 여러 도움을 주신 분과 팀원이 꿀을 나누니 1인당 1.5kg 받았어요. 다들 회사 다니면서 내검(벌통 살피기)하니 시간 내기 쉽지 않은데. 내년에는 저희와 같이 하실래요?” 다른 누군가도 벌과 함께하는 도시의 삶을 꿈꾼다는 것만으로 어딘가 든든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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