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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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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가장 강한 폭력

‘국가폭력’의 인문학·사회과학적 사유를 돕는 책 6
등록 2016-10-05 23:25 수정 2020-05-03 04:28

농민 백남기 선생이 숨졌다. 지난해 11월14일 민중총궐기 때 의식불명에 빠졌고, 그로부터 317일 만의 일이다. 그는 경찰이 쏜 직격 물대포에 맞았다. 국가가 해선 안 되는 일이어서,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법으로 강제된 일이다. 그런데도 경찰 진압 장비인 물대포에 맞아 사람이 숨지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국가’란 이름을 앞세워 저지른 ‘폭력’ 가운데 가장 악질적인 경우다.

비슷한 일이 2009년 겨울에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의 빈 건물 남일당에서 철거민 32명을 상대로 경찰이 진압에 나섰을 때다. 용산 개발을 앞두고, 세입자들이 철거 예정 건물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경찰이 테러 진압용 특공대를 투입했고, 무리한 진압 과정에서 농성자 5명과 경찰특공대원 1명이 숨졌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는 점점 ‘괴물’이 되고 있다.

도대체 ‘국가’는 무엇일까? 로마의 극작가 플라우투스는 ‘인간은 모든 인간에게 늑대다’(루푸스 에스트 호모 호미니)라는 말로 인간의 본성을 표현했다. 불행히도 모든 사람이 크든 작든 각각 ‘폭력의 힘’을 가졌다. 강한 권력에 통제받지 않으면, 인간끼리 잔혹한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늑대처럼.

이 지점에서 국가가 생겨난다. 공진성은 (책세상 펴냄, 2009)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압도하는 엄청난 폭력 앞에서 자신의 보잘것없는 폭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 때, 국가는 논리적으로 탄생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기 위해, 저마다 국가에 폭력의 힘을 넘겼다. 공진성은 이런 과정에 대해 “국가는 사람들이 자연 상태에서 보유하고 있던 그 모든 폭력을 자신 안으로 흡수함으써 그 자신이 폭력이 되고, 압도적인 힘의 비대칭성 속에서 감히 어느 누구도 폭력을 사용할 수 없게끔 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고 풀이했다.

이 때문에 국가의 힘은 본질적으로 절대적, 파괴적, 독점적이다. “사적인 폭력의 사용은 또 다른 사적인 폭력의 사용을 부른다. 그렇게 되면 국가 상태는 자연 상태로, ‘각 사람에 대한 각 사람의 전쟁’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것이 국가가 정당한 폭력의 사용을 독점해야 하는 논리적인 이유”라는 게 공진성의 설명이다.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전설 속 ‘바다 괴물’ 이름을 딴 책 에서 “지상에서 이보다 강한 자는 없다”는 말로 국가를 묘사했다. 애초부터 국가는 모든 개인이 양도한 ‘폭력의 집합체’였다.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법이란 개개의 주권자들이 국가에 위임한 폭력이다. 법의 원천이 폭력이자, 법 그 자체가 폭력”(, 길 펴냄, 2008)이라는 식으로 국가의 폭력성을 풀이했다. 국가의 본질이 잔인함에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고 했다. 그러나 밀은 하나의 단서를 달았다. 그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는) 단 하나의 경우 말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 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가폭력이란 무엇일까? 조희연은 성공회대 교수 시절 낸 책에서 국가폭력을 “사회의 제집단·제계급·제계층의 투쟁에 대하여 강압적 수단을 활용하여 억압하고 통제하는 국가적 행위”라고 불렀다.(, 함께읽는책 펴냄, 2002) 그는 “국가폭력은 고문, 타살, 의문사 등과 같이 누가 보아도 정당성이 없는 반인륜적 행위를 포함하겠지만, 경계가 모호한 많은 억압적 행위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게 어떤 형태이든, 모든 국가폭력은 엄격하게 통제받아야 한다. 백남기 선생과 용산 참사 당시 철거 반대 농성자들, 그리고 경찰특공대원이 국가가 폭력을 휘두른 현장에서 숨진 사실이 분명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런 국가폭력은 ‘평화를 위해 자신의 힘을 국가에 위임했던’ 국민을 위한 게 아니다.

한때 정치인이었고 지금은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은 이런 의견을 내놓는다. “경찰특공대의 모습으로 남일당 빌딩에 출현한 국가, 살아남은 농성자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하고 선고한 검사와 판사의 행위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국가, 이런 국가는 기득권자만을 떠받드는 ‘계급지배의 도구’이다. 용산 참사는 국가가 원래 그런 존재이며 그 성격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돌베개 펴냄, 2011)

‘진짜 국가’가 해야 할 마땅한 일은 무엇일까? 유시민의 답이 울림을 준다.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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