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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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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이 가능하다는 믿음뿐”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상영작 <핵마피아>의 김환태 감독 인터뷰
등록 2016-09-28 23:11 수정 2020-05-03 04:28
김환태 감독은 탐정단을 꾸려 꼬박 3년 동안 ‘핵마피아’를 쫓았다. 마이클 무어처럼 유머스럽지 않고 <예스맨 프로젝트>처럼 통쾌하지도 않지만 우리 모두가 핵마피아를 쫓는 탐정단이란 묵직한 숙제를 던진다. 정용일 기자

김환태 감독은 탐정단을 꾸려 꼬박 3년 동안 ‘핵마피아’를 쫓았다. 마이클 무어처럼 유머스럽지 않고 <예스맨 프로젝트>처럼 통쾌하지도 않지만 우리 모두가 핵마피아를 쫓는 탐정단이란 묵직한 숙제를 던진다. 정용일 기자

원자력발전소 14기가 몰려 있는 경북 경주와 부산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은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오랜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일본과는 다르다, 한반도는 지진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는 주장은 이제 활성단층 아래로 사라졌다. 정부는 계속되는 여진에 “국내 원전은 규모 7.0 수준 지진까지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항변하지만, 울산단층의 경우 지진이 발생하면 그 규모가 5.8에서 최대 8.3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이미 수년 전에 공식 보고서로 제출됐고, 정부는 이조차 무시했음이 드러났다.

세상사 어떤 문제들을 만약 가능과 불가능으로 나눈다면, ‘핵 없는 세상’은 가능의 영역일까, 아니면 영원한 불가능의 문제일까. 국내 전력 생산의 30%를 원자력이 담당하는 상황에서 핵의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무너진들 ‘원전 르네상스’를 쌓아온 체계와 시스템의 굳건함은 쉽사리 허물어지지 않는다.

기록영화제작소 ‘다큐이야기’ 김환태 감독은 말하자면 확신범이다. ‘핵 없는 세상’이 당연히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미 왔어야 할 미래를 누군가들이 교묘하게 ‘유예’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지난 3년간 사설 탐정단을 꾸려 ‘핵마피아’들을 쫓아왔다. 그들은 ‘핵마피아’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두목’이 누구인지 확인했을까. 9월22~29일 열리는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영화 상영을 앞두고 분주한 그를 9월21일 만났다.

사건에 직접 뛰어든 다큐 는 9인의 탐정단이 핵마피아를 쫓는다는 설정이다. 그래서 핵마피아를 찾았나.

핵마피아는 상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핵 관련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국가권력이다. 마피아는 계속 바뀐다. (웃음) 원전 정책을 결정하는 국가권력의 정점이 핵마피아다. 영화 내내 이명박을 쫓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도 당연히 연장선상에 있다. 그 밑으론 재벌을 위시한 행동대장들이 있다. 그리로 의제를 만들어가는 교수와 원자력 학계가 있다.

결국 못 찾았단 얘기 아닌가. (웃음) 그렇다면 프로젝트는 실패한 것이 아닌가.

그렇진 않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탐정단을 꾸리겠다는 건 일종의 퍼포먼스 다큐를 해보자는 거였다. 탐정단에 참가한 분들은 정말 많은 것을 내주었다. 각자의 삶 속에 문제의식이 남았다. 다큐 작업을 통해 우리 모두는 핵마피아 탐정이다,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진지한 작업을 주로 해왔는데, 퍼포먼스 다큐를 차용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뭔가.

전작 상영회를 하다, 제주의 고준위 폐기물 문제를 알게 됐다. 그때 이 다큐를 생각하게 됐다. 워낙 무거운 주제이다보니 재밌게 가보자고 생각했다. 앤디 비클바움의 나 마이클 무어의 같은 작품이 모티브가 됐다. 일종의 페이크 다큐처럼, 핵마피아들의 민낯을 재밌게 벗겨보자는 취지였다.

탐정단은 쉽게 모였나.

모집하고 소개받고 섭외도 했다. 원래는 탐정단과 사기극을 해보고 싶었다. 처럼. 탐정단을 꾸려 핵마피아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고, 한 방에 통쾌하게 날려보자는 콘셉트였다. 근데 막상 시도하고 준비하다보니 잘 안 되더라. 우리가 까는 판에 저들이 들어올 것이냐, 절대 안 들어올 건데 어떻게 끌어낼 수 있는가.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준비해보자, 이런 아이디어도 있었지만 결국 안 됐다. 욕심과 좌충우돌이 많았지만 결국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탐정단의 활동과 서사를 따라가는 것이 작품의 콘셉트이긴 하지만, 오히려 탐정단 활동에 치중되면서 영화적 완성도는 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부터 수행적이고 참여적인 다큐멘터리로 생각했다. 사건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이었다. 그게 영화적 완성도와 충돌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영화적으로도 새로운 스타일을 만든 측면이 있다. 물론 더 능수능란했다면 마이클 무어처럼 기발하고 폭로적이고 유머까지 있는 완성물을 내놓을 수 있었겠지만.

지진 이후 ‘마피아 게임’의 밤일까 낮일까
‘서울에 지을 수 없다면 어디에도 짓지 말자’. 원전을 둘러싼 가장 명확한 입장이다. 영상 작업 중인 김환태 감독(위쪽)과 영화 <핵마피아>의 한 장면. 정용일 기자, 김환태 제공

‘서울에 지을 수 없다면 어디에도 짓지 말자’. 원전을 둘러싼 가장 명확한 입장이다. 영상 작업 중인 김환태 감독(위쪽)과 영화 <핵마피아>의 한 장면. 정용일 기자, 김환태 제공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이른바 ‘원자력계가 일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핵마피아를 찾으려면 그 카르텔에 더 깊게 들어가야 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발언을 통해 원자력계가 일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었다. 원자력계가 일하는 방식은 돈부터 집어넣고 ‘이게 허가 안 나면 큰일 난다’고 우기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돌고 도는 논리다. 핵마피아들이 가장 원하는 건 원전 얘기나 정보가 알려지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 갖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핵을 일상과 가깝지 않은 문제로, 멀리 있어 실체가 없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마피아 게임’은 참가자들을 소수의 마피아와 다수의 일반 시민으로 나눠, 서로의 생존을 가리는 심리게임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의 심리학 교수 드미트리 다비도프가 1986년에 창안한 교육용 게임이다. 소련을 비롯해 당시 공산권 국가들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마피아 수가 시민 수보다 크거나 같아지면 마피아가 이기고, 모든 마피아를 처형하면 시민이 이긴다. 마피아는 밤에만 시민을 죽일 수 있고, 시민은 낮에 투표를 통해 마피아 용의자를 처형할 수 있다. 이 과정을 매개하는 것은 ‘선전’과 ‘선동’이다. 내가 마피아가 아님을 강변하며 무고한 사람을 마피아로 몰아가야 마피아는 승리할 수 있다.

마피아들끼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 협력할 수 있지만, 마피아가 누군지 모르는 시민들은 분열하고 의심하게 된다. 정보를 독점한 소수의 마피아들이 실체를 감춘 채, 탈핵을 외치는 이들을 이념적 극렬주의자로 몰아 배척하는 현재 한국 원전 상황은 마피아 게임의 그 ‘밤’일까. 아니면 지진으로 선전과 선동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 ‘낮’일까. 만약 낮이라면 투표를 통해 마피아 용의자들을 몰아낼 수 있을까.

경주의 지진으로 영화 개봉을 앞두고 핵 문제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3년간 꾸준히 작업해왔지만 사실 지진은 크게 생각했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작업 초창기, 일본 대지진의 여파가 있을 때 원전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았던 것 같다. 지진 문제와 관련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원자력안전위원회 회의를 참관했을 때였다. 회의 때마다 지진 얘기가 많이 나왔다. 지금 문제가 되는 양산단층이나 그 지역의 활성단층 문제도 이미 논의가 됐던 걸로 기억한다. 그때마다 놀랍게도 위원들은 단정적 태도로 원전이 규모 7.0 이상 내진 설계돼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태도가 전제되지 않았다면 하기 어려운 단정이었다.

원자력 ‘추진’위원회가 아니라 ‘안전’위원회인데도 그런가.

회의 구조가 그렇다. 찬반이 언제나 7:2 구조다. 찬핵론자 7명과 반핵론자 2명의 구조다. 이 구조를 알리바이로 두고 핵 관련 정책의 안전성을 얘기하는 건 기만이다. 이 구조를 바꿔야 하고,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너무 상투적이지만 정치권력을 교체하는 것밖에 없다.

일상의 평화가 깨지는 사회지진 이후 그래도 원전에 대한 법제도적 논의나 정치권의 발언이 시작됐다.

경남 지역 주민 480만 명이 일상적 공포와 불안에 놓인 현실에서 원전 안전성을 재검토하겠다는 발언이야 립서비스처럼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새누리당의 유승민·조경태 의원 등도 원전 재검토 발언을 했던데 오히려 그게 지금 시점의 인기영합주의는 아닌가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걸 몰라서 이제 얘기하는 것인가. 일상의 공포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 일상의 공포가 계속 이어지는 상황에서 발언을 하려면 더 급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린피스 쪽의 주장처럼 ‘서울에 핵발전소를 짓자, 그럴 수 없다면 어디에도 짓지 말자’가 명확하다고 본다.

원전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구조를 바꾸면 충분히 가능한 문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이미 나와 있고, 정부 관계자들도 알고 있다. 탈핵론자와 시민사회는 이미 걸음을 걷고 있다. 문제는 결정 구조다. 전력발전 체계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의지를 갖는 정치권력이 중요하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을 찍었다. 구체적인 이유였다. 박근혜 후보는 원자력 자체에 너무 무지했다. 문재인 후보는 탈핵의 의미나 내용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대통령이 마음을 먹으면 재생에너지 체계로 갈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안 하겠지만.

영화를 보면 탈핵 활동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준비하고 있나.

계속적인 관심은 일상의 평화다. 일상의 평화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깨지는 상황이 기본적인 관심사다. 원전도 결국 일상의 평화와 생존이 깨지는 문제다. 군사주의, 병역거부 문제도 그렇다. 다음 작품으로 군사주의의 역사나 병역거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얘기를 고민하고 있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삶, 힘들고 어려워도 그렇게 걸어나가 길을 만드는 사람들, 그 걸음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삶이 관심사다.

카르텔을 부수는 건 시민의 힘뿐

김환태 감독은 탈핵으로 가는 실마리를 말해달란 주문에 “그것이 정말 가능하다는 믿음뿐”이라고 강조했다. 원자력 없이도 충분히 전기를 생산하고 순환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원전이 신화처럼 남아 있는 건, 원전이 이해관계자들에게 천문학적 돈을 안기는 황금알을 낳는 사업이란 이유밖에 없단 지적이다. 그 강고한 이익의 카르텔을 깨는 건 더디 보이더라도 시민의 힘뿐이다.

원전 1기를 건설하는 데는 대략 2조5천억~3조원이 든다. 이런 공사를 할 수 있는 기업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대림산업 등 5개사 정도뿐이다. 이들 기업과 한국전력, 한수원 등 몇몇 공기업들의 이해관계 속에 기생하면서 ‘떡고물’을 받는 전문가들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두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사용한 핵연료의 방사능이 인체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수치가 낮아지려면 10만 년이 걸린다고 한다. 10만 년이다. 고작 살아 100년을 지구에 머물 뿐인 우리는 도저히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누구도. 아무도.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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