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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라, 벼랑 끝으로

3년 만에 신작 <종의 기원> 내놓은 소설가 정유정
등록 2016-05-20 06:30 수정 2020-05-02 19:28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중묘지문’(衆妙之門). 무릇 오묘함의 문. 제1장의 마지막 넉 자. 소설가 정유정(50)의 작품은 소설로 몸 바꾼 중묘지문이다. 는 중묘지문을 일러, 역시 단 넉 자로 묘사한다. ‘현지우현’(玄之又玄). 어둡고도 어둡구나. 정유정에게 그 어두움은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 ‘악’이다. 그가 발표한 소설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악인들이 등장하는 이유다. 정아 아버지(·2007), 점박이(·2009), 오영제(·2011), 박동해(·2013).

악인은 ‘나’여야만 했다

신작 (은행나무 펴냄)에서도 그러하다. ‘유진’ 또한 특별한 악인. 그러나 전작들과 심대한 차이가 있다. 이전 소설 속 악인들이 모두 3인칭으로 서술됐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1인칭(‘나’)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친절하다.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목이 마르고 답답했다. 그들이 늘 ‘그’였기 때문이다. 외부자의 눈으로 그려 보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탓이다. 결국 ‘나’라야 했다.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보여줄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가는지 그려 보이려면.”( ‘작가의 말’에서)

3년 만에 신작을 들고 나타난 그를 5월12일 서울 합정역 인근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만났다. 날렵한 몸매, 상큼한 커트머리, 또렷한 얼굴, 호탕한 말…. 지천명의 나이로도 보이지 않았다. 젊었다. 전날 하루 동안에만 8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는데, 피곤해하기는커녕 딸기꽃처럼 자주 웃었다. 정면으로 마주 앉은 기자는 자주 떨렸다.

소설 제목 ‘종의 기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 안에서 악이 어떻게 점화되고 발현되고 세상 밖으로 뛰어나와서 진화했는지 일련의 과정을 그려 보인 소설이다. 그래서 악인을 하나의 ‘종’이라고 봤을 때 어디서 기원하느냐는 의미에서 ‘종의 기원’이라고 지었다. 짓고 나서 이 어마어마한 제목에 기가 눌렸다. (‘종의 기원’은 찰스 다윈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2014년 2월 스페인 산티아고에 소설을 구상하러 갔을 때 지었다.

사이코패스는 무엇인가.

이번 소설에는 살인사건이 모두 5건이다. 그러나 한 번의 사건은 마지막까지 감춰져 있다. 사이코패스는 간단히 말하면 남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가령 거짓말을 한다든가 위협이 가해지는 자극이 있으면 보통 사람은 뇌의 전두엽이 활성화된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는 불이 안 켜진다. 감각이 없는 것이다. 급박한 상황이 닥쳤을 때 보통 사람은 심장박동이 두 배로 빨라진다. 사이코패스는 절반으로 떨어진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초몰입 상태가 되는 거다.

여전히 언론 보도에서 사이코패스의 내면은 제대로 주목되지 않는다.

인간 본성에서 선과 악이 다 있고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선인이고 어떤 사람은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경기도 안산 시화호 살인사건을 보라. 아무도 상상 못할 만큼 멀쩡한 청년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 사회 속에서 그런 청년을 알아볼 방법이 없다. 내면이 궁금하지 않나?

사이코패스에게 살인은 기본적으로 쾌락이다. 성행위와 비슷하다. 2006년 정남규 사건이 있었다. 그 사람은 감옥에서 목을 매고 죽었다.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이 한 말이 있다. ‘그 사람에게 자살은 궁극의 살인이었다’고. 쾌감이었다는 건데, 그런 쾌감·쾌락은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인 거다. 선사시대에는 태풍이 불면 자연이 부리는 마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연구해서 어떻게든 대비할 수 있게 됐다. 사이코패스도 마찬가지다. 인간 삶을 파괴하는 패악에 대한 대비…. 이런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노력, 똑바로 보려는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 대비책이 생길 수 있다.

인간 내면의 어두운 곳(악)을 소설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이겠다.

피상적으로 보는 것과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건 차이가 있다. 연쇄살인범들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나중에 포기했다. 만나기도 어렵지만, 소설 주인공을 구축하면서 하나의 틀에 갇힐까봐서다.

“문장 자체로 존재하는 문장은 없다” 이번 소설에서 사이코패스는 어떻게 드러나나.

처음에 ‘유진’이 엄마를 죽일 때는 엉성하다. 두 번째 살인은 감춰져 있다. 이게 사이코패스의 기본 메커니즘이라고 딱 한 번 보여준다. 나머지는 다 이유가 있는 살인이다. ‘유진’이 가장 쉬운 해결책으로 살인을 선택하는 거다. 이번 소설은 사이코패스의 전성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고 ‘악인의 탄생기’다.

작품을 쓸 때 엄청난 퇴고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의 퇴고는 이야기를 조각한 뒤 쓸데없는 걸 도려내고 이야기를 말끔하게 구성하는 일이다. 문장에 공들이는 것은 간결하고 정확한 문장을 위해서다. 독자에게 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 위한 거다. 문장은 굉장히 중요하다. 쉼표 하나가 있느냐 없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목적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살아남은 첫 문장이 없다. 수십 번 고쳐 쓴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더라도 소설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버린다. 문장 자체로 존재하는 문장은 없다.

소설가가 되기 전 정유정은 간호사였다. 10년 넘는 무명작가 시절을 거쳤다. 1980년 5월 광주, 열다섯 소녀는 ‘돌아오지 않은 대학생 시민군 오빠’들의 기억을 지금도 선명히 간직하고 있다. 정유정 소설의 뿌리다. 그동안 판매된 작품 부수는 80만 부가량이라고 했다. 한때 복싱에 심취했고 소문난 야구광이다. 핀셋으로 머리카락을 집듯 정교하고 핍진한 묘사에 뛰어나다. 다음 소설 구성을 묻자 “재난 스릴러 소설일 것 같아요. 에서와 같은 전염병은 아니고, 판타지에 가까운…”이라고 귀띔했다.

지난달 춘사도 있었다. 출판사에 최종 원고를 보낸 직후였다. 평소 병환이 없던 아버지가 건강검진을 위해 입원했다가 갑자기 별세했다. 4·13 국회의원선거 전날이었다. 화장 뒤 전남 함평의 선산 납골당에 모셨다. 오래전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옆자리. 부모님 사이에 아버지의 휴대전화를 두었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의 한 민속춤 공연장에서 머리 위로 엄청나게 크게 떠 있는 보름달을 보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작가는 아버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수신될 수 없는 전화번호. 나중에 알고 보니 자식들 모두 아버지에게 같은 전화를 걸었단다. 처음 하는 얘기라며 말을 꺼낸 작가는 눈이 붉어졌다.

이야기는 트렌드가 아니다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최근 한국문학은 부정적 의미에서 정신주의·관념주의 또는 언어유희가 지배적인데.

건강한 숲이 아니라고 본다. 소나무만 있으면 생태계 유지가 안 된다. 우리 문단은 ‘소나무’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커서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다고 본다. 세계적 추세라고도 하지만, 지금은 다시 이야기가 각광받는 시대다. 이야기는 트렌드가 아니고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하다못해 어제 꾼 꿈도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으면 개꿈인 거다. 이야기의 힘이 없는 문화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모든 문화의 근본이다. 문학이 그 핵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나 드라마가 따라올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오로지 소설의 문법으로만 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문학에는 여전히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 경계의 벽이 높다.

순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이상하다. 나한테 추리소설 작가라고 딱지를 붙이는데, 나는 추리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 추리는 범인찾기지만, 스릴러는 생존게임이다. 추리 작법을 가져와서 스릴러 소설을 쓴 거다. 내 이야기는 거의가 살아남기 위한 전투고, 그 과정에서 인간 내면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내가 추구하는 건 재미있으면서도 이야기 자체가 훌륭하고 잘 쓴 ‘웰메이드’ 소설이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소설의 지향점이다. 제임스 조이스가 있다면 스티븐 킹도 있어야 한다. 결국 예술이든 철학이든 인간에게 메시지를 던져줄 수 있는 건 문화이고, 그 기본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한국문학이 갈수록 대중과 소통·접점을 잃어간다는 지적이 많다.

지금 문학은 지나치게 천상에 올라와 있다. 지상으로 확 내려와야 할 뿐 아니라 더 밑으로도 내려가야 한다. 작가가 소설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변화의 징후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읽어내 사람들에게 알려줘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 많은 작가들이 내려오는 걸 두려워한다. 상업작가, 대중작가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번 소설이 예약판매 일주일 만에 한 인터넷서점 종합 1위를 했다. 자랑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독자가 있는 게 기쁘고 감격적이고 희망적이다. 잘 쓰면, 문학의 미래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평소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했는데.

자유의지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고, 하고 싶은 걸 위해서 자신을 다 던질 수 있고, 그 결과를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자신의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내 소설에선 자유의지가 많이 등장한다. 근데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거나 유전은 아닌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다. 작가 시작할 때 직장이 안정적이었다. 남들은 회사 다녀와서 밤에 글을 쓰라고 했는데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안정된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질까봐 사표를 아예 내버렸다. 젊은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으면 자신을 벼랑에 세우라고.

선과 악의 공존, 온전함

성균(成均). 음률을 고르게 맞추는 것. 어그러짐을 바로잡아 온전함에 이르기를 희망하는 뜻이 담겼다. 선과 악의 공존에 대한 깊은 이해, 서로 다른 문학들 사이의 융합과 악수,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화해…. 모두 성균의 길이다. 인간사회는 물론이거니와 세상만물이 ‘불협’을 떼고 ‘화음’으로 가는 길. 그는 성균을 희망하는 작가이며, 그의 소설 집필실은 또 다른 ‘성균관’이다.

*기사 가운데 일부 질문은 정기구독자들의 페이스북 모임(‘21㎝’) 회원들과 오길영 충남대 교수(문학비평가)에게 받았습니다. 좋은 질문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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