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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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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극우적 세계관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파시즘적’ 해악

‘부정선거’ 프레임 이용해 진보 등에 반대하는 ‘극우 동맹’…민주공화정 실현 위해 ‘더 많은 민주주의’ 요구하는 싸움 해야
등록 2025-02-04 07:30 수정 2025-02-04 07:37
2020년 11월3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조지아 제14선거구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큐어넌 음모론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가운데)이 지지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해 미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2020년 11월3일 미국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조지아 제14선거구의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큐어넌 음모론자 마저리 테일러 그린(가운데)이 지지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해 미국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윤석열은 부정선거 진상규명에 대해 과연 얼마나 열의를 가진 것일까?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절차에 응하는 윤석열을 보며 든 생각이다. 애초 윤석열은 부정선거가 실제 있다는 걸 전제로 한 주장을 공공연히 해왔다. 심지어 헌정사상 처음 수사기관에 체포될 때 공개한 자필 편지에도 “우리나라 선거에서 부정선거의 증거는 너무나 많다” “부정선거를 음모론으로 일축할 수 없다”고 써놨다. 그런데 탄핵심판에 출석해서는 비상계엄 선포와 부정선거론의 연관성에 대해 “팩트를 확인하라는 차원”이라고 했다. 같은 자리에 나온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당시 부정선거를 사유로 들지 않은 이유를 묻는 말에 ‘증거가 많지만 확인된 것은 없어 공식적으로 부정선거를 언급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문제적이어도 문제 삼아야 문제지

 

부정선거론에 대해 진심이 있었다면 윤석열은 취임하자마자 이 문제 해결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부정선거를 뿌리 뽑는 것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겠나? 그러나 그런 정황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윤석열이 부정선거론을 믿지 않은 건 아닌 것 같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작성된 ‘부정선거 관련 관리 대책’이란 문건을 보면 부정선거론을 꽤 진지하게 다룬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022년 4월 대통령 당선자와 여당 의원들의 상견례 자리에서 유경준 전 의원이 부정선거론에 대해 반박했다가 윤석열과 설전을 벌인 사실도 확인됐다.

그럼 대체 뭔가? 윤석열의 태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부정선거는 존재하지만, 당장 진상 규명할 필요는 없고, 나에게 유리할 때 활용하면 된다’라는 거 아니겠나? 우리는 여기서 윤석열이 ‘고발사주’ 사건이나 ‘명태균 게이트’에 대해 어떻게 그토록 뻔뻔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단서를 찾게 됐다. 어차피 부정선거로 당선되는 세상인데, 검찰이 정당에 특정인에 대한 고발을 사주해 선거 개입을 시도하는 것이나 미공표 여론조사를 받아 보고 특정인의 공천을 약속해준 것 정도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이는 일견 엘리트 특수부 검사의 세계관 같기도 하다. 의원님, 회장님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겠는가. 기본적으로 다들 죄짓고 산다면, 죗값을 받느냐 마느냐는 수사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즉, 문제로 삼기로 하면 문제가 되고 문제로 삼지 않기로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냉소적 세계관이 배경에 있는 셈이다.

내란죄 피고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2025년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피청구인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내란죄 피고인인 대통령 윤석열이 2025년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피청구인 좌석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윤석열·김용현 두 콤비의 황당한 문답에도 이 세계관에서 비롯된 태도가 반영됐다. 윤석열은 탄핵심판에서 김용현을 직접 신문했는데, 이는 신문이라기보다는 마치 판사를 앞에 두고 두 공범이 서로 위증을 위한 말 맞추기를 대놓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윤석열 쪽의 의도를 김용현이 파악하지 못해 오히려 자폭해버리는, 가령 포고령 1호의 정당성을 김용현이 너무 열심히 설명하는 바람에 ‘잘못 베껴 왔다’는 윤석열의 주장이 무너지면서 ‘위법성을 알았지만 실행 가능성이 없어 내버려뒀다’는 결론으로 봉합되는 장면 등은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까웠다. 어쨌든 감히 누가 판사 앞에서 이런 일을 하겠는가? 행위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문제적 행위가 있더라도 문제로 삼아야 비로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극우 유튜브 세력의 세계관

 

생각해보면 윤석열이 헌법과 법률에 맞지 않는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혐의의 한가운데로 돌진해버린 것도 이 세계관의 영향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있다. 일단 비상계엄 선포로 시작하는 일련의 구상을 관철하는 게 우선이고, 국가 비상사태였는지 따지는 것은 나중 일이다. 김용현에 대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윤석열은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직후에도 국회의원을 끌어내는 계엄군의 작전을 계속할 것을 주문하면서 “국회의원이 190명 들어왔다는데 실제로 190명이 들어왔다는 것은 확인도 안 되는 거고”라고 한다.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이라는 실체적 진실이 존재해도, 계엄군이 그 난장판 속에서 국회의원을 끌어내 감금하면 얼마든지 정족수 등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은 거로 간주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이런 식의 태도로 미뤄보면 윤석열에게 부정선거론은 스스로 그것을 얼마나 진심으로 믿고 있느냐와는 별개로, 총선 결과 부정을 위해 선포한 비상계엄에 명분을 부여하고 극우 유튜브 시청자층으로부터 지지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윤석열 자신의 법적·정치적 이득의 영향을 논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해악을 논해야 할 정도가 됐다는 것이다. 서울서부지법에 대한 극우 유튜브 세력의 테러가 대표적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만 하더라도 극우 유튜브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시간이 지나면 사법부에 의해 야당 대표가 정리(?)되면서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구도가 만들어질 판이었는데 뭐 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계엄군이 선거관리위원회 침탈을 목표로 삼았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평소 부정선거론을 주장해온 이들은 ‘선관위 상륙작전에 성공했다’며 환호했다.

이들 극우 유튜브의 세계관에서 한국은 중국 공산당의 집요하고도 조직적인 침투와 조작의 대상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 일부 세력도 중국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으며, 언론과 인터넷 공간은 중국 자본과 중국인들에게 장악된 지 오래다. 한국의 선거는 중국 정부의 놀라운 기술력에 힘입어 조작되고 있으며, 한국은 마치 홍콩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파시즘에 대한 대응은 단 하나, 용납하지 않는 것

 

윤석열이 지지층을 향해 반복적으로 발신한 메시지의 핵심은 한국판 큐어논(QAnon)이라 할 수 있는 이 세계관을 인준하는 것이다. 이제 반중국 코드는 ‘친중-친북-권위주의-공산주의-민주당-진보-페미니즘-차별금지법’을 하나의 ‘반대해야 할 대상’으로 묶는 접착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윤석열의 ‘반국가세력과 주권침탈세력에 의한 부정선거’라는 프레임은 앞서 극우 집단이 고안해낸 개념 사슬을 ‘반대’하기 위한 동맹으로서 ‘윤석열-국민의힘-조선일보-극우 유튜브-보수 기독교계-극우화된 젊은 남성’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들 극우 동맹이 힘에 의한 해법을 주장하면서 윤석열을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실제 사법부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데까지 이른 것은 사태가 파시즘의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들은 이제 헌법재판관들을 노골적으로 공격하며 탄핵심판 결론에 대한 불복을 예고하고 있다.

파시즘에 대한 대응 방법은 역사적으로 볼 때 단 하나,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뿐이다.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극우 동맹은 계속 영향력을 키워가거나 최소한 보전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현상 유지는 답이 될 수 없다. 민주공화정을 지키는 것을 넘어 더 완전하게 실현하기 위한,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싸움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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