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에 대해 두 가지 상충하는 이론이 있다. 첫 번째 이론은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잘 설명한다. 뒤르켐은 예술이 근대의 개인주의, 즉 외적 압력에 예속되지 않는 개인의 고유성과 자유를 가장 잘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뒤르켐에 따르면 예술은 근본적으로 질투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한 개인의 예술은 다른 개인의 예술보다 탁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예술은 근대의 개인주의를 대변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개인들 사이의 재능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시장과 정책의 바깥또 다른 이론은 정치철학자 존 롤스가 잘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예술가의 자기 표현을 넘어서 읽히고 보여짐으로써 누구에게나 잠재한 인간의 고귀함을 환기시켜준다. 그러므로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보편적이다.
두 상이한 이론은 모두 예술 혹은 예술가의 탁월성을 인정한다. 두 이론은 재능이란 모두에게 허락되지 않으며 걸작은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단지 그것들이 특수하냐 보편적이냐라는 지점에서 의견이 갈릴 뿐이다.
여기서 사회학적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예술이 비교와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장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예술가들의 작품이 더 팔리고 인기를 끌 때, 비교와 질투는 증폭된다. 소수가 선택되고 돈과 명예를 독식할 때, 나머지 다수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예술이 인간의 고귀함을 구현한다 해도 시장은 모든 작품을 관객에게 노출시키지 않는다. 시장에는 선택과 배제가 있다. 물론 시장의 메커니즘을 조절하기 위해 문화정책이 도입된다. 하지만 입장료를 낮추고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해도 사람들이 갑자기 예술에 친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무관한 고상한 예술을 위해 백원도 지출하지 않는다.
위대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질투를 불러일으키냐 보편적 인간성을 구현하느냐라는 논쟁은 예술시장과 문화정책, 탁월성과 접근성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 낡은 논쟁은 예술이 지니고 있는 다른 면, 즉 예술이 자유로운 실천이자 제작 활동이자 놀이라는 점을 배제하고 있다.
자유로운 실천이자 제작 활동이자 놀이인 예술의 특이성은 어디서 나타날까? 물론 시장 안에서도 나타나고 정책 안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시장의 무자비함과 정책의 고지식함은 그러한 예술의 특이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특이성은 시장과 정책 바깥에서 자주 나타난다. 여러 장소가 있지만 최근 두드러지는 곳은 주거권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나는 장소들이다. 건물의 소유주들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입자들을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주장하며 장소를 점유하고 일방적인 철거에 저항하는 싸움을 벌인다.
세입자들은 그저 장소를 점유하고 용역의 강제퇴거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주거한다는 것은 놀고 먹고 일하고 대화하며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주거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이고 이 주장은 자유로운 삶의 형태, 즉 예술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두리반, 테이크아웃드로잉철거민들이 점유한 장소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유명 예술가들의 탁월한 작품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예술가인 것 같기도 철거민인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의 활동, 그 모든 역할과 선입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만난다. 우리는 그것을 예전엔 두리반에서 보았고 지금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보고 있다.
심보선 시인·사회학자※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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