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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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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소설 사이 ‘긴 저널리즘’의 낯선 부흥

심층 르포 무크지 <뱅테앙>의 성공으로 프랑스에서 틈새시장 형성한 ‘롱 폼 저널리즘’…
온라인 유료화 성공 지속 등 ‘미디어의 봄’은 이어질 것인가
등록 2015-09-23 21:59 수정 2020-05-03 04:28

2015년 프랑스 언론계에 ‘롱 폼 저널리즘’(Long Form Journalism) 열풍이 분다. 아직 많은 이에게 생소한 용어인 ‘롱 폼 저널리즘’은 기사와 단편소설 중간 정도 길이의, 분량이 긴 저널리즘을 통칭한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뉴뉴(New New) 저널리즘, 슬로 저널리즘, 해설 저널리즘 등 다양한 형태를 띤다. (XXI)의 성공이 롱 폼 저널리즘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은 심층 르포 중심의 무크지다. ‘유용한’ 저널리즘, ‘다른’ 저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해 텍스트와 사진 그리고 삽화를 이용한다. 2008년 의 유명 기자였던 파트리크 생텍쥐페리와 로랑 베카리아에 의해 만들어진 이 매체는 처음에는 저널리스트들에게 ‘꿈같은 이야기’로 다가왔다. 하지만 단숨에 롱 폼 저널리즘의 본보기가 됐다.

<뱅테앙>(XXI)은 심층 르포를 텍스트와 사진, 삽화로 구현하는 유료 무크지다.

<뱅테앙>(XXI)은 심층 르포를 텍스트와 사진, 삽화로 구현하는 유료 무크지다.

온·오프라인에 ‘심층 르포’ 새 매체 줄이어

로랑 베카리아는 달라진 미디어 환경으로 인해 짧은 속보성 기사가 넘쳐나는 현실에서는 다른 형태의 스토리텔링, 고품질의 콘텐츠를 원하는 독자층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러한 확신이 을 만든 이유라고 밝혔다. 의 시도는 언론에서 제대로 된 심층 르포 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파트리크 생텍쥐페리는 신문사의 제호가 ‘브랜드’로, 독자는 ‘소비자’로, 기사는 ‘콘텐츠’로 서서히 변해가는 사이 저널리즘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고, 저널리즘의 그 어떤 가치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광고 없는 유료 잡지를 만들게 된 계기라고 말한다. “독자의 주머니를 열게 한다는 것은 저널리즘 행위에서 엄격함을 요구한다.”

의 목적은 주제 선정이건 글 쓰는 방식을 통해서이건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새로운 방식’으로 전달하는 데 있다. 은 연간 3번 출간되며 가격은 15.5유로(약 2만5천원)로, 각 호당 5만 부 이상 팔린다. 의 성공으로 (Feuilleton), (Long Cours), (Desports) 같은 심층 르포 중심의 무크지들이 등장했고, 서점에서는 오래전에 사라졌던 무크지 코너가 다시 생겨났다.

<푀이통> (Feuilleton), <데스포르>(Desports), <롱쿠르>(Long Cours),

<푀이통> (Feuilleton), <데스포르>(Desports), <롱쿠르>(Long Cours),

웹에서도 롱 폼 저널리즘의 구현이 시도되고 있다. (Le Quatre heure), (Ulyces), (Ijsberg Magazine) 등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심층 르포를 다루는 새 매체들이 앞다투어 등장했다.

‘슬로 정보’를 표방하는 는 전통 미디어에는 포착되지 않지만 중요한 쟁점을 내포하는 주제·장소·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멀티미디어 르포로 보여줌으로써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겠다는 야망으로 2013년 문을 열었다.

내러티브 저널리즘 전문 디지털 매체인 는 “문학적 퀄리티와 저널리즘적 엄격함을 갖춘 진짜 이야기”를 선정해 시리즈 형태의 기사로 제공한다. 이들은 최고의 내러티브 저널리즘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프랑스뿐 아니라 전세계의 작가들 혹은 매체들과 협업하고 있다. 은 “미디어 다양성 확보를 위해, 저널리즘의 고결함을 회복하기 위해” 창간된 국제뉴스 전문 매체다. 이미지를 중시하고 ‘신속하게’ ‘차분한 속도로’ ‘느리게’라는 세 가지 템포로 뉴스를 전달하고 있다.

이 매체들은 대체로 저널리즘스쿨을 갓 졸업한 젊은 저널리스트들이 ‘발로 뛰는 저널리즘을 통해 진짜 이야기를 전달해보겠다’는 열정으로 만든 온라인 유료 매체다. 이들은 매일 새로운 기사를 계속 써내야 하는 기존 매체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식으로 뉴스를 제공하고 있다.

주로 ‘평범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는 이 매체들은 한 주제에 관한 풍성한 정보와 다양한 서술 방식을 통해 뉴스를 심층화하고 때로는 전망도 제시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차별적이고 질 높은 콘텐츠만이 독자의 관심을 끄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롱 폼 저널리즘은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현하려는 젊은 저널리스트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이 저널리즘의 휴머니즘 장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창립을 준비 중인 롱 폼 저널리즘 매체도 있다. 출신 기자들이 주도하는 (Les Jours)다.

는 지난 6월3일 크라우드펀딩 캠페인을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목표액 5만유로와 1만 명가량의 후원 회원을 모았다. 의 스타 저널리스트 이자벨 로베르를 비롯한 11명의 기자들과 개발자 5명이 뭉쳤다. 이들이 구현하려는 저널리즘은 ‘옵세셔널(Obsessional) 저널리즘’이다. 이슈를 한번 선정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겠다는 것. “끊임없이 쏟아지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저널리스트뿐 아니라 독자도 질렸다. 우리는 이러한 정보의 홍수, 기억 없는 뉴스들과 싸우고 싶었다. 아울러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정보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이고 지면을 할애하고 싶었다.”

<레주르>는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목표액 5만유로와 1만 명가량의 후원 회원을 모았다.

<레주르>는 크라우드펀딩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목표액 5만유로와 1만 명가량의 후원 회원을 모았다.

(L’imprevu)도 문을 열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데이터 저널리즘 사이트였던 (Owni·2012년 폐간) 편집위원들에 의해 창간된 는 ‘슬로 미디어’를 표방한다. ‘양질의 콘텐츠를 위해서는 저널리스트에게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 매체는 환경·사회 문제를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독자에게 전달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편집장 클레르 베르틀레미는 창간 이유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우리는 다양한 환경문제와 사회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한다. 그런데 왜 뉴스 사이트냐고? 이 문제들은 뉴스와 함께 다뤄야만 독자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광고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웹 기반 뉴스 사이트로, 기존 인터넷 신문의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과는 다른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속보 기사에 매달리기보다 심층 분석 기사를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제공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독자가 꼭 알아야 할 의제가 정보의 홍수 속에 파묻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제1세대 인터넷 신문이라 할 수 있는 (Mediapart)(Arrêt sur Images)의 성공 역시 이들이 퀄리티 저널리즘을 통한 유료 모델을 선택하도록 자극했다. 프랑스 탐사 저널리즘의 상징이 된 는 2014년 9월26일 창간 당시 목표했던 구독자 10만 명을 돌파했고, 가장 대중적인 미디어 비평 매체로 자리매김한 는 미디어 비평으로도 온라인 콘텐츠의 유료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1세대의 성과는 ‘제2세대 인터넷 신문’으로 불리는 신생 매체에 ‘웹에서 퀄리티 저널리즘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이자벨 로베르는 “우리는 지금 ‘뉴스 미디어의 봄’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페이스북 등 새로운 기술 덕분에 혁신적인 콘텐츠 제공이 더욱 쉬워졌다. 벨기에의 미디어 학자 이자벨 뫼레는 “디지털은 저널리즘의 휴머니즘적 영역을 장려하고, 저널리스트들에게 장인에 견줄 만한 재능을 계발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오늘날 문학적 저널리즘을 더욱 세련되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등 기성 언론도 가세

물론 이러한 신생 매체들이 모두 성공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롱 폼 저널리즘이라는 틈새시장은 포화상태다. 미디어 경제학자인 줄리아 카제는 경제적 자립이 불투명한 신생 매체들이 성공하려면 매체 고유의 정체성과 그에 따른 브랜드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만약 웹에서의 뉴스 소비 행태가 종이신문과 유사하다면, 이 신생 매체들 중 한두 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개인들은 인터넷에서 몇몇 매체에 한정적인 구독을 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에는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신문을 선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나 같은 기성 언론들이 신생 매체와 유사한 포맷의 콘텐츠를 제공한다면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미 ‘롱 폼 멀티미디어 르포’를 제작하는 기성 언론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독자에게 유료 구독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증가하면서다.

(L’Equipe)은 스포츠 전문 멀티미디어 앱인 ‘렉스플로르’(L’Explore)를 지난해에 론칭했고, 역시 지난 6월 ‘그랑포르마’(Grands Formats)를 론칭했다. 그랑포르마는 핵심 이슈를 사진과 동영상, 인포그래픽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전달하는 아이패드 전용 디지털 매거진으로 1년에 세 번 발행될 예정이다. 주요 이슈에 대한 기존 기사들을 업데이트하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심층 보도로 재탄생시킨 그랑포르마 제1호의 제목은 ‘세계로 향한 IS의 도전’이다. 이 멀티미디어 분석 기사는 교육 자료로도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는 주요 시사 이슈에 대해 시간을 두고 신중한 판단을 내리려는 독자층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그랑포르마를 론칭했다고 밝혔다. 동영상과 인포그래픽을 혼합한 분석 기사는 이미 웹사이트에도 있다. 그러나 그랑포르마는 더 많은 콘텐츠와 볼륨으로 매거진과 흡사한 형태를 갖췄고 올가을쯤 제공될 제2호부터는 유료 서비스(4.99유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의 프리미엄 유료 독자(월 9유로)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언론사 사이트, 뉴스 포털 등을 통해 정보는 끊임없이 제공되지만 제대로 된 정보는 만나기 힘들다. 이러한 ‘정보의 역설’ 현상이 오히려 정보 생산 속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트위터 등을 통해 실시간 보도가 확대되면서 기자들의 사실 보도가 갖는 매력은 크게 감소하는 반면, 맥락과 분석을 전달하는 기사의 중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르피가로>는 ‘롱 폼 멀티미디어 르포’를 선보일 수 있는 ‘그랑포르마’를 론칭했다.

<르피가로>는 ‘롱 폼 멀티미디어 르포’를 선보일 수 있는 ‘그랑포르마’를 론칭했다.

사실 보도보다 맥락·분석이 중요해지는 추세

그러나 최신 뉴스에 대한 언론사들의 강박관념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다. 미국 시사잡지 (The Atlantic)의 부편집장인 맷 톰프슨은 “넘쳐나는 정보로 인해 괴로워해야 하는 세상에서 저널리스트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정보의 폭로가 아니라 정보를 분석하고 조직화하며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이다. 독자들은 점점 더 새로운 뉴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뉴스에 대한 이해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면서, 뉴스 저 너머의 미래를 상상할 수 있고,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저널리즘의 황금기가 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쩌면 롱 폼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프랑스의 신생 매체 대부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통 저널리즘의 원칙에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요소들을 결합시켜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려는 노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무수히 쏟아지는 의미 없는 뉴스 정보에 질린 것은 비단 독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민정 편집위원·저널리즘학연구소 연구이사
*에 실린 글을 지면에 맞게 다듬었습니다. 과 는 콘텐츠 제휴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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