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柱我)라는 아이가 있다. 시간을 좀 거슬러 보자. 전북 부안 출신의 씩씩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모 건설회사에 입사하여 3년간 해외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광양제철 건설 현장으로 파견이 된다. 그곳 사무실에서 여상을 갓 졸업하고 입사한, 전남 벌교 출신의 뛰어난 미모에 늘씬한 아가씨에게 반한다.
점 보러 갈 집에 뇌물을 먼저 먹이고
결혼은 쉽지 않았다. 우선 나이 차이가 많았다.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심정으로 청년은 청첩장부터 찍어가지고 아가씨 집으로 찾아갔다. 최소한 궁합이라도 보자며 어머니는 방어막을 쳤다. 청년은 찾아갈 예정인 점집을 알아냈다. 그리고 먼저 쫓아가 약간의 뇌물을 먹였다. 궁합보다 더 크고 강렬한 게 사랑이니까. 당시 한 번 보는 데 2만원이었는데 5만원을 주었다. 점쟁이는 부탁을 들어주었다. 단, 일요일은 안 좋으니 토요일에 식을 올리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예식장 날짜를 바꾸고 청첩장도 다시 찍어야 했다. 그 덕에 언니가 태어나고 주아도 세상에 나왔다.
아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9개월 만에 걷기 시작했다. 빨랐다. 그것도 그냥 아장아장이 아니라 러닝머신 위를 걸었다. 보통의 아이들은 첫돌 때 간신히 발자국 떼는 정도이다. 이 정도면 독보적인 운동신경이다. 이 운동신경은 훗날 체육시간 물구나무서기 시험 때도 빛을 발한다. 딱 하룻저녁 연습하더니 다음날 완벽하게 합격했다.
아이는 자라면서 떼를 쓰거나 앙탈 한번 부린 적 없었다. 전혀 속 썩이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어느 정도인가를 알려주는 장면이 있다. 온천 시추 작업 다니던 아빠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엄마가 회사에 취직하게 된다. 문제는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과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이 한참이나 어긋난다는 것. 고민이 깊어지자 아빠가 결단을 내렸다.
“우리 주아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다섯 살짜리 아이 목에 보조키 목걸이를 걸어준 것이다. 예상대로 아이는 혼자 문 따고 집으로 들어갔다. 누굴 찾지도, 칭얼대지도 않았다. 요구르트를 찾아 한 모금씩 빨며 공책에 그림을 그렸다. 보조키를 깜박 잊고 온 날에는 현관에 기대 앉아 언니나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날은 종종 잠이 들곤 했다. 늦은 오후 햇살을 받은 채 약간 기울어진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이. 잠든 아이를 비추는 석양빛. 작고 여린 손. 앙증맞은 신발. 반쯤 열린 귀여운 입술. 다섯 살짜리 주아.
그 외에는 실컷 뛰어놀았다. 이제 그만 놀고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 엄마는 그런 말 하지 않았다. 스스로 판단해 그만 놀 때까지 그냥 두었다. 어느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목표를 내 목표로 한다.’ 부모나 교사가 요구하는 것을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성장한 다음 다른 사람의 것과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서로 충돌한다. 당연히 괴롭다. 이거 앓는 사람 의외로 많다. 주아 엄마·아빠는 그렇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철학자의 어려운 책에서 배우지만 생활에서 깨달아 이미 그런 수준으로 살고 있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아이는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자유로웠다. 그리고 훗날 이렇게 말하게 된다.
“엄마, 그때 나를 맘대로 놀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주아는 모든 것을 혼자 해냈다. 학원 고르는 것도, 옮기는 것도, 자신이 판단해서 선택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해야 되는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분명하게 정해놓은 다음 그것들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빠는 택시 일 나가기 위해 날마다 네 시에 깼다. 눈을 떠보면 주아 방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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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안 자고 공부한 거야?”
그렇다고 주아는 대답했다.
“잠을 푹 자야지.”
“이제 잘 거야. 아빠 일어나는 것 보고 자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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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아빠는 현관을 향해 반듯하게 놓여 있는 네 켤레 신발 중 자신의 것을 신고 나갔다. 식구들 신발을 현관 쪽으로 가지런히 놓아두는 것이 주아의 버릇이었다. 음식점 종업원처럼.
수연(秀娟)이는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수재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만난 단짝 친구로 희정이가 있다. 둘은 이틀이 멀다고 만나 수다를 떨고 공부를 했으며 노래방도 종종 갔다. 옷가게 골목을 싸돌아다니기도 했는데 어떤 날은 13시간이나 계속 같이 놀기도 했다. 학원도 같은 곳을 다녔다. 고등학교만 서로 달랐다.
춤은 좀 엉뚱한 곳에서 췄다. 백화점 화장실 옆 창고 입구 같은 곳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수연이 혼자서 마구 몸을 흔들었다.
“내 꺼 하자 네가 날 알잖아 어? 네가 날 봤잖아 어? 내가 널 끝까지 책임질게 같이 가자 힘든 길 걷지 마 어?” 인피니트의 가 나오면 가볍게 턴을 한 다음 무언가를 노려보며 무릎을 구부렸다가 펴고 격투기나 육상선수 출발 준비 같은 자세를 거쳐 제자리뛰기를 했고 “죄다 기생 오라비 촌티 나는 꼬라지 너희들 감 찾는 사이 얼씨구 풍년이 왔네 난 Low 한 게 아니야 마초처럼 완전 Raw 해” 블락비의 가 나오면 손을 흔들며 허리를 비틀고 허벅지에 손바닥을 얹고는 약간은 민망한 자세까지 일순간에 되풀이한 다음 순간 동작을 멈추곤 했다. 보통 끼가 아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끼를 집에서 보여주는 측과 바깥에서만 드러내는 측으로 나뉘기 마련이다. 수연이는 후자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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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히는 것은 싫어했다. 얼굴부터 가렸다. 특히 작은 눈이 콤플렉스였다. 아빠는 그게 이상했다. 부부 모두 쌍꺼풀에 눈이 큰 편이었으니까. 그는 아내가 처녀 때 쌍꺼풀 수술 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노력은 결실을 얻는 법. 결국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던 해 1월3일 쌍꺼풀 수술을 했다. 없던 게 생기자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헤어스타일을 바꾸었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그대로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수연이는 외동딸이다. 엄마가 약을 입에 달고 살아서 둘째 낳을 생각을 안 했다. 태몽은 아빠가 꾸었다.
“머리를 이렇게 풀어헤친 귀신이 나타나기에 이단옆차기로 차서 넘어뜨렸고 주먹으로 두들겨 패서 쫓아냈지요. 그러고 나니 속이 아주 시원했어요.”
이걸 태몽이라 불러도 되는지는 모른다. 다만 약한 아내와 가녀린 갓난아이를 둔 가장의 위치와 역할이란 게 그런 것이다. 모든 위험으로부터 지켜내고 싶은.
태어난 날은 1997년 8월12일 아침 10시30분. 그 날짜 그 시간에 태어나면 우주로부터 뜨거운 불의 기운을 받는다고 본다. 범상치 않은 두뇌에 재주가 많고 자기표현 능력에 심지가 굳다는 특징이 그 불기운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수연이는 딱 그렇게 자랐다.
어렸을 적 장면 하나.
엄마가 약기운에 눌려 잠이 들어버렸다. 혼자 문 열고 들어온 아이는 옆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엄마’를 부르며 괜찮으냐고 물었다. 조그마한 얼굴에 걱정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기특해 아빠가 커다란 흰 곰인형을 선물로 사주었다.
어느 날 엄마가 슈퍼 다녀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태어나서 첫 번째 심부름으로, 이 정도는 해내지 않을까, 하는 실험 성격이었다. 아이는 제 몸만 한 곰인형을 들고 나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달려 나가보니 이미 갔다는 슈퍼 주인의 말. 엄마는 마음이 바빠져서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아이는 한 손에 봉지를 들고 다른 손으로 인형을 안은 채 버스 정류장에 서 있었다. 마치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으로. 왜 그랬을까. 혹시 곰인형의 고향인 북극행 버스를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여섯 살 때였다.
엄마는 아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다. 딸아이를 낳게 되면 꼭 긴 머리 소녀로 키워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것이다. 수연이는 그렇게 했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아이. 엄마는 그 모습이 너무 멋있었고, 예뻤고, 고마웠다.
그리고 날마다 아이와 눈을 맞추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갈 때는 정신없기 마련이다. 늦잠을 자기 마련이고 준비물도 많고 밥도 먹어야 해서 부산스러운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다녀오겠습니다, 일갈하고 뛰쳐나가는 것, 그게 그 나이의 일반적인 모습 아닌가.
수연은 좀 달랐다. 거의 매일, 현관 나가기 전 엄마와 함께 몇 초간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오래전부터 저절로, 암묵적으로, 그렇게 해온 것이다. 서로가 눈을 맞춘다는 것. 얼마나 중요한 행위인가. 사랑과 친근과 신뢰. 세상 좋은 모든 것이 그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고 확대되고 비축되었다.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와서도 그랬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두 눈동자 안에 모든 게 다 들어 있으니 말이다.
한 번이라도 인생을 생각해봤을까짐작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주아와 수연이는 작년에 세월호를 탄 2학년1반 학생들이다. 내가 이 두 아이와 가까워지게 된 것은 단원고 희생자 약전(略傳) 사업 때문이었다(약전은 내년 졸업식에 맞춰 경기도 교육청에서 발간한다).
주아는 언니가 선물로 주었던 지갑을 두 손으로 꼭 쥔 채 떠올랐다. 수연이는 빈 가방과 함께 일주일 만에 떠올랐다. 주아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집에 있고 가슴속에 있고 내 주변 어디에도 우리 주아가 있다.” 아빠는 응접실에 이렇게 써놓았다. “못해준 게 사랑이다.” 수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천지가 뒤집어졌는데 세상이 그대로인 게 정말 이해가 안 된다.”
세월호 참사 500일이 지났다. 이토록 아름답던 아이들이 죽어버렸는데 이를 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비겁하고 비열한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하며 필요할 때 그저 노란 리본만 단다. 한 번이라도 아이들 한명 한명의 얼굴과 인생을 생각해봤을까.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래서는 안 된다. 이래도 된다면 딱 한 가지 이유일 때만 가능하다. 밝혀지면 큰일 나는 무서운 비밀이 있는 경우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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