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팔아 밥을 버는 사람의 입으로 할 소리는 아니지만, 돈을 받고 내주는 밥은 치사하다. 가령, 푸짐하고 맛있고 저렴하기까지 한 음식점의 음식이라 하더라도 혼이 담긴 ‘구라’를 넘어서긴 어렵다. 그 이상, 그러니까 구라가 아닌 진심만을 담아 밥상을 차린다면 그 음식점은 곧 문을 닫고 말 것이다.
처음 밥을 팔기 시작할 때는 최소한 우럭이라도 내주는 심정으로 밥장사를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초라했고 치사했다(사진의 식당은 글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내가 판매하는 밥의 진심 함유량은 25%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 75%는 계산과 구라가 담겨 있다. 어쩌면 75%에 달하는 계산과 구라 덩어리를 25%의 진심으로 포장해 식탁에 앉아 있는 손님 앞에 내려놓는 것일지도 모른다. 간혹 이 얄팍한 진심이 찢어져 누추하고 구린내 나는 속살이 밖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그 얄팍한 진심이 더욱 얇아져 누추한 계산과 거짓말이 흐릿하게 비춰질 때도 있다.
나는 매일 아침 계산과 구라를 감싸고 있는 얄팍한 진심의 안쪽에서 하루치 진심을 요리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진심포장지 건너 바깥세상이 흐릿하게 눈에 들어온다. 달걀 한 판을 50등분 할 방법을 모색하고, 썰어낸 고깃덩어리를 저울 위에 올려 일정량으로 분할했는지 측정하는가 하면, 김치 한 조각을 더 주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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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준비한 재료로 진심을 요리하고, 요리한 진심에 구라를 더한다. 아이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느니, 최고의 재료를 선별해 만들었다느니, 인공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느니, 서비스라느니, 할인이라느니… 갖은 구라를 덧씌워 배고픈 사람들을 현혹한다. ‘최고의 재료’라는 말 앞에 붙은 ‘상대적’이란 말은 의도적으로 뺐고, 시렁 위에 미원이나 다시다가 놓여 있지 않을 뿐이지 사용하는 수많은 가공식품(간장, 된장, 고추장, 케첩, 토마토퓌레, 우스터소스와 같은 소스류뿐만 아니라 어묵, 소시지, 가다랑어포, 멸치까지도) 안에 인공조미료와 색소, 고과당 옥수수시럽, 방부제, 안정제와 같은 식품 첨가물들이 듬뿍 담겨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음에도 ‘인공조미료 무첨가’를 뻔뻔하게 홍보한다. 거기다 더해 서비스, 할인, 이벤트, 추첨 따위는 계산 놀음에 불과함에도 영혼을 담아 호갱님을 위하는 척 미소짓는다. 이러한 허영과 가식, 거짓, 허세 덩어리를 ‘밥’이라는 실존하는 현물에 담는다. 그 밥이 25%짜리 진심포장지이다.
언젠가 밥과 잠자리를 내주던 친구는 그가 겪었던 유년기의 일화를 들려주며 나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었다.
왜 우리는 노래미 새끼만 먹고 있나친구는 섬에서 나고 자랐는데, 친구를 포함한 3형제를 홀어미 혼자서 건사했다. 섬에서 여자 혼자 세 아이를 건사하는 일은 여간 고된 일이 아니어서 날마다 품을 팔거나 바다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야 했다. 어느 날 친구의 어머니는 횡재수가 들었던지 큼지막한 농어와 우럭을 잡아 잰걸음으로 집을 향해 올라오는데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아랫집 아이와 마주치게 되었다. 어머니는 아랫집 아이에게 밥은 먹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못 먹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대답을 듣고 그대로 가던 길을 갈 수 없어 손에 들고 있던 우럭 한 마리를 아이의 손에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우럭을 내주면서 고민이 들었다. 우럭이 아무리 크기로서니 맛이나 크기가 농어만 하겠는가. 남에게 무엇을 내주려면 크고 좋은 것을 내줘야 할 테지만 집에는 밥 굶으며 에미 오기만 기다리는 새끼가 셋씩이나 있는데 농어를 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아랫집 아이에게 농어 대신 우럭을 내주고 집으로 돌아와 새끼들에게 농어를 끓여 밥을 먹였다. 그리고 꽤나 오랫동안, 섬을 떠나 뭍으로 나와서까지도 어머니는 그날의 일을 부끄럽게 여겼다고 했다. 친구는 이 일화를 이야기하며 자신이 생각하는 나눔이란 이런 것이라고 말했다. 농어를 내줄 수 없는 사정은 누구에게나 있고, 우럭을 내줘서 미안해하기도 하는 마음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나눔의 모습 아니겠냐고.
그러나 돈을 받고 내주는 밥그릇에는 우럭도 아닌 노래미 새끼만도 못한 물고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계산하고 구라 쳐서 밥을 파는 나는 농어를 먹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나 또한 노래미 새끼만도 못한 밥을 먹는다. 아니 젠장, 분명 농어와 우럭을 잡긴 잡았는데 그 고기는 어디로 사라지고 너나 나나 농어와 우럭의 뱃속에 들어 있던 노래미 새끼만 먹고 있는 것인가. 크고 맛난 농어와 우럭은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부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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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 4대 보험료를 비롯한 각종 세금, 전기·수도·가스 요금, 임대료, 카드수수료, 통신료, 은행 이자, 홍보비…. 그러고 보면 농어와 우럭은 이 모든 비용 속으로 녹아들었고 이 또한 나눔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나는 왜 자꾸 내가 차려준 노래미 새끼를 받아먹은 사람들에게 미안해지고, 그렇게 미안해지는 만큼 날로 가난해져만 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설명해주는 수많은 책들, 개선 방법을 알려주겠다는 수많은 강의들, 너의 농어(부)를 지켜주겠다는 사기꾼들이 눈만 뜨면 씨부려대지만 부유한 자보다 가난한 자가, 농어를 먹는 자보다 노래미 새끼를 먹는 자가 절대다수인 세상에 살고 있다.
농어 살점을 떼어주던 쇠똥구리들생각해보면 말이다, 나는 혹은 당신은 그 선한 마음으로 만인에게 당신의 농어를 나눠주겠다며 이런저런 세금과 수수료로 떼어주었는데 결국 그것은 나눔이 아니라 호구짓이었던 건 아닐까.
출근 시간부터 저녁에 퇴근하는 시간까지, 혹은 어느 야심한 시간에도 21세기 쇠똥구리들이 낡은 유모차에 의지해 기어다닌다. 그 쇠똥구리들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노인들인데 세상이 버린 상품의 찌꺼기들을 주워모아 굴리고 다닌다. 그들은 나이 들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고 버림받은 욕망의 찌꺼기들을 주워 밥을 먹고 산다. 그들은 한때 나나 당신들과 다름없이 노래미 새끼를 먹으며 농어의 살점을 떼어주던 사람들이다. 이제 그만 쉬어도 될 것 같은데, 국산 전자제품과 자동차 애용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고 열심히 농어 살점을 떼어주며 국익 선양했던 사람들인데, 오늘날 쇠똥구리 신세일지 몰라도 내라는 세금 안 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꼬박꼬박 내며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인데 이제 그 농어 고기 한 점 너거들이 떼어주면 안 되는 거냐. 국가에서 비용을 들여 치우고 정리하고 분류해서 재활용해야 할 쓰레기들을 노인들이, 쇠똥구리들이 알아서 척척 치우고 정리해주니 그들에 대한 대책 마련은 오히려 손해일 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이 시대에 발생한 찌꺼기를 치우기 위해 길거리로 나서는 것을 방관하는 자세는 패륜에 가까운 것이다. 젖동냥도 유분수지 그만큼 키워놨으면 농어는 그만두더라도 우럭은 내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처음 밥을 팔기 시작할 때는 최소한 우럭이라도 내주는 심정으로 밥장사를 하자고 마음먹었지만 나는 그보다 훨씬 더 초라했고 치사했다. 나는 오늘도 노래미 새끼를 25%짜리 진심포장지로 포장해 우럭이라고 우겨 식탁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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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손님이 오냐고?” “꽤 오기는 와.”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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