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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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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똥

영양만점 똥이 움직이는 자리마다 움트는 생명… 땅에서 똥 빼앗고 유기농·친환경 기대할 수 있을까
등록 2016-06-17 08:12 수정 2020-05-02 19:28

그녀와 수박을 나눠 먹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수박씨를 씹어 먹고 있었다. “수박씨도 씹어 먹어요?” 수박씨를 접시에 발라내던 그녀의 귀에 수박씨 씹히는 소리가 들렸던 모양이다. 이물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편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수박을 한입 깨물었다. 오물오물 수박을 씹다 입안에서 돌아다니는 수박씨 한 알을 의식적으로 깨물어보았다. 의식하지 않고 먹을 땐 느낄 수 없던 이물감이 치아의 신경을 불편하게 자극했다. 내 너에게 달콤한 살을 내줄 테니 부디 씨앗만큼은 세상에 널리 퍼트려달라는 간곡한 당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수박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수박을 먹고 난 다음날 똥을 싼 곳은 땅이 아니었다. 변기에 앉아 똥을 쌌고 레버를 눌러 씨앗의 가능성을 수장해버렸다.
꿀꺽 삼킨 수박씨는 변기로

쓰임새 많은 똥이 변기를 거쳐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져버린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쓰임새 많은 똥이 변기를 거쳐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러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사라져버린다. 한겨레 박미향 기자

시골집 모퉁이 남새밭에는 토마토, 상추, 쑥갓, 오이, 머위, 더덕, 도라지 등이 자라고 있다. 동백나무가 담장이 되어주고 사과나무와 수국, 국화가 가림막이 되어준다. 어미는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틈에 앉아 똥을 싼다. 아무도 모르게 똥을 싼다. 자식들이나 손님이 찾아오면 변기에 앉아 똥 싸는 시늉을 하지만 사람들이 돌아가고 혼자 남으면 사과나무 아래로 간다.

어미의 이러한 암행을 알게 된 건 재작년 겨울이었다. 추위에 풀과 꽃, 작물들이 주저앉고 사그라진 텅 빈 남새밭 모퉁이 이곳저곳에 똥이 널려 있었다. 오래전에 싸서 흙이 다 되어가는 똥도 있었고 이제 막 싸놓은 싱싱한 똥도 있었다. 나는 어미에게 묻지 않았고 알은체도 하지 않았다. 그저 씨익 웃기만 했다.

겨우내 먹고 싼 똥과 음식물 쓰레기, 닭이 싼 똥, 불 때고 남은 재만 있다면 이듬해 농사는 풍년을 장담할 수 있다. 올해도 남새밭은 풍년이 들었다. 상추는 고소하고 쑥갓은 향기롭다. 살찐 오이가 하나둘 맺히기 시작했고 머위는 웃자라 어린아이만 하다. 똥은 부끄럽지만 잘 자란 농작물은 자랑스럽고 향기롭고 맛이 좋다.

더위가 시작되던 늦은 봄날 그녀와 함께 전북 완주군 소양면으로 바람을 쏘이러 나갔다. 차창을 열고 길을 가는데 똥냄새가 차 안으로 훅 들이쳤다. 짐승의 똥이 아닌 사람똥 냄새가 분명했다. 아직도 인분을 거름 삼아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이내 어미의 남새밭이 떠올랐고 30여 년 전 똥지게로 똥을 지어 나르던 날이 떠올라 차창으로 들이친 똥냄새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래, 30여 년 전 이맘때 온 마을은 똥냄새로 가득 찼다. 온 가족이 1년간 열심히 싸서 모아둔 똥을 밭에 흩뿌려 거름 삼았는데 한두 집만 하는 짓이 아니라 집집마다 농사지을 준비를 그리 했으므로 봄날의 기억은 꽃향기가 아닌 온 마을을 뒤덮은 똥냄새였다.

사람이건 짐승이건 먹은 음식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효율은 매우 낮다. 먹은 음식의 30% 정도를 에너지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똥과 오줌으로 배출한다. 다시 말해 영양분의 70%가 똥에 남아 있다는 얘기다. 흙에 똥은 매우 훌륭한 이유식이 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매일 아침 영양분으로 가득 찬, 죽보다 부드럽고 젤리보다 말랑말랑한 똥을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둠의 터널로 흘려보내 폐기처분하고 만다. 그렇게 흘러간 너와 나의 똥은 하수종말처리장에서 하나가 되어 정화(淨化)라는 과정을 거쳐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소멸해버린다.

‘똥냄새’ 사라진 마을

“도시에서 낳고 자란 아이들은 평생을 살아도 맡아보기 어려운 냄새가 되었어요.” 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는 차창으로 밀려든 똥냄새를 맡으며 이렇게 말했지만 시골과 도시를 오가며 살아가는 나 또한 이제는 맡기 어려운 냄새가 되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다 하던 짓을 이제는 한두 집도 하지 않는다. 이제 사람의 똥은 어디에서나 가능성을 상실해버린 폐기물이 되었다. 쾌적하고 편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수세식 화장실이 지어지고, 정화조와 하수도를 묻고 하수종말처리장으로 흘려보내 약품을 섞어 정화한 깨끗한 물을 강으로 흘려보낸다지만 땅과 강과 바다는 깨끗한 물만을 원하지 않는다.

먹고 남긴 똥을 돌려줘야 똥에 남아 있는 영양분을 바탕으로 땅이 살고 강과 바다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이 먹고 사는 순환이 이루어지는데 인간은 돌려주지 않는다. 아니 돌려주고 싶어도 돌려줄 수 없는 구조로 도시를 건설해버렸다.

똥이 흘러가는 하수도에는 똥오줌만 흘러드는 것이 아니다. 생활하수, 공장폐수, 독극물 등이 뒤섞여 오·폐수가 되어버리니 그 똥으로는 땅과 강과 바다에 사는 생물을 살릴 수 없다. 겨우 자연을 보호한답시고 한다는 짓이란 약품으로 정화한 깨끗한 물을 강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최선이므로 언젠가는 사람도 땅과 강과 바다에서 밥을 얻어먹지 못할 날이 도래할 것이다. 겨우 깨끗한 물이나 한 모금 얻어마실 수 있으려나….

내 어미는 배운 것이 없어 내가 이 글에서 말하는 ‘순환’이니 똥의 ‘가능성’이니 하는 말을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쯤으로 여길 것이다. “똥을 기냥 내삐리는 것보다야 밭이다 싸믄 암만 혀도 거름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이 순환을 말하는 것이고 밭에 똥을 싸는 행위가 가능성의 실현일 것이다. 어미보다 배운 것 많고 아는 것 많은 나는 세련되게 말은 할지 모르겠지만 세련되게 밭에 똥을 쌀 줄은 모른다. 입만 방정이다.

그 입은 말하는 입이기도 하거니와 먹는 입도 방정맞기는 매한가지다. 유기농이니 자연산이니 친환경이니 뭐니 뭐니 해가며 찾아 먹기는 잘도 찾아 먹으면서 그것이 가능해지도록 되돌려줄 의지는 없다. 변기에 앉아 똥을 싸고 물을 내리고는 무에서 유를 기대한다.

정화조 물 먹고 쑥쑥 큰 미나리

어미는 올해도 어김없이 정화조에서 흘러나오는 물길 옆에 미나리와 토란을 심어놓았다. 똥거름을 직접 주는 것보다야 못하겠지만 정화조에서 흘러나오는 물에도 영양분이 풍부한지 미나리와 토란은 잘 자란다. 시골집의 하수도는 생활하수가 빠져나가는 관과 똥오줌만 흘러가는 관으로 나눠져 있다. 결국 밖으로 나오면 하나로 합쳐지는 구조이긴 하지만 둘을 나눈 것은 매우 현명한 생각이었다. 생활하수에는 세제, 락스, 비눗물 등이 섞여 있어 정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지만 정화조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똥오줌뿐이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토란과 미나리를 키운 똥물은 마을 입구에 있는 저수지로 흘러간다. 마을에는 두 개의 저수지가 있다. 계단식으로 된 저수지인데 산에서 흘러내려온 빗물과 마을 사람들이 쓰고 버린 물이 위쪽 저수지에 모여 1차 정화가 되고, 정화된 물은 아래 저수지로 내려가 다시 한번 정화된다. 유기물이 많은 위쪽 저수지엔 부들, 마름을 비롯한 수많은 수초가 빽빽이 들어차 있고 그 아래에서 수많은 물고기들이 번성한다. 아래 저수지는 유기물이 부족해 수초가 번성하진 못하지만 물이 맑아 일대의 농업용수로 활용된다. 농업용수로 활용된 물은 수로를 타고 바다로 흘러간다.

작은 마을의 하수 처리 방식이지만 큰 도시에도 얼마든지 적용할 수 있을 법하다. 깨끗하기만 하다고 자연을 살리는 것은 아니다. ‘뭣이 중헌지’ 다시 한번 생각해볼 일이다.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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