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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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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집이 된 허브하우스

21년 전 200여 종의 허브 길러내던 할아버지의 농장은 어쩌다 이토록 황폐해졌을까
등록 2016-07-01 16:58 수정 2020-05-03 04:28
전북 진안군에서 허브 농사를 짓는 노부부는 20여 년간 밤낮없이 농사에 열정을 투자하며 정직하게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고된 노동 끝에 돌아온 것은 시장의 외면과 홀대였다. 류우종 기자

전북 진안군에서 허브 농사를 짓는 노부부는 20여 년간 밤낮없이 농사에 열정을 투자하며 정직하게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고된 노동 끝에 돌아온 것은 시장의 외면과 홀대였다. 류우종 기자

노부부를 만난 건 신메뉴를 개발해보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기름진 음식과 어울릴 만한 담백한 피자와 향기로운 샐러드를 개발해볼 요량으로 생잎 허브를 선택했는데, 시중에 유통되는 생잎 허브의 종류는 10여 년 전에 비해 보잘것없이 줄고 가격은 몇 배나 뛰어올라 단가를 맞출 수 없는 수준이었다.

채소 도매상과 이야기해봐도 필요한 허브를 적정한 값에 구입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허브 종류가 줄어든 건 10여 년간 이뤄진 선택과 집중의 결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은 이해할 수 없었다. 시중에서 많이 소비되는 루콜라, 바질, 로즈메리, 여러 가지 민트류는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허브일 텐데도 가격은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노후 대책으로 시작한 신작물 농사

유통 문제인가 생각했다. 생잎 허브는 여느 채소들에 비해 쉽게 숨이 죽는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포장에 과도한 비용을 들이고 냉장으로만 유통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출 수 없는 것이라 여겼다. 가격이 높은 이유가 유통이라면 직거래를 통해 단가를 맞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전북 진안군에 위치한 허브농장을 찾아갔다.

올해 83살인 할아버지는 막 환갑을 넘긴 21년 전인 1995년에 허브농사를 시작했다. 평생토록 고단한 농사만 지어온 초로의 부부에게 허브는 향기로운 노년의 꿈으로 다가왔었다. “그때만 혀도 미래가 있다고 판단혔었어. 전국에 허브농사를 짓는 집이 딱 두 집였는디 우리가 세 번째로 허브농사를 짓기 시작헌 거여. 혀볼 만허것다 싶더라고. 그때는 또 젊었응게.”

노부부는 허브농사에서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시설을 늘리고 종자를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2천 평 규모의 농지에 대규모 원예시설 하우스 5개 동을 짓고 200여 종의 허브를 길러내는 데 사력을 다했다. 유럽 각지에서 종자를 들여와 이 땅에 착생시키고 길러내는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

저 멀리 이국땅에서 자라던 식물의 종자를 들여와 각각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토양과 환경을 조성해 뿌리내리고 가지 뻗게 하는 일이 얼마나 지난했을지, 한편으론 얼마나 가슴 벅찬 시간이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할머니의 말이다. “이 양반이 이것 허것다고 얼매나 공부를 많이 혔는지 몰라. 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이 죄다 허브책들여. 밤낮 그 생각만 허고 찾아보고 연구허고. 그러다 좋은 꼴도 못 보고 이렇게 늙어버렸어.”

할머니를 바라보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추던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우리는 참말로 열심히 일만 혔어. 시설 허고 종자 사는 디다 돈도 많이 들이고. 농사만 잘 지어놓으믄 먹고사는 디 지장 없을 줄 알었지. 근디 이노무 것이 팔려야 말이지. 농사는 잘 지어져서 하우스 안이 가득헌디 팔리덜 안 혀.”

허브도 땅에 심어놓으면 자라고 번성해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는 식물이다. 일전에 시금치와 미나리를 이야기할 때 말했듯이 연한 잎을 먹는 식물이 자라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면 쇠어서 무가치한 것이 되고 만다. 하우스 바깥 맹지에는 씨가 떨어져 번성한 애플민트가 다시 씨앗을 맺고 있었다. 애플민트 줄기가 발끝에 차일 때마다 짙은 향기가 일렁거렸지만 쇠어버린 애플민트를 찾는 사람은 없다.

“재작년까지는 어찌어찌 농사를 지어볼라고 혔는디 인자는 둘 다 늙고 아퍼서 이 짓을 못허것어. 미래가 없는디 자식헌티 이 짓을 허라고도 못허것고. 이것들이 거짐 다 따뜻한 지중해 근방에서 온 것들이라 겨울에 난방을 혀줘야 허는디 난방비는 고사허고 인건비도 안 나와. 인자 그만허자 혀서 지난겨울에 난방도 안 틀고 내방쳐뒀덩만 다 얼어 죽고 로즈메리 정도만 남았어. 로즈메리는 찾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만 살려놨어. 가끔 찜질방 허는 사람이 찾아와서 한 트럭씩 사간게 그것은 살려놔야지.”

찜질방에 팔 로즈메리만 남아

내가 농장에 찾아간 시간은 오후 2시 무렵이었다. 노부부는 오전에 밭일을 하고 잠시 쉬던 중이었는데, 밭일이란 허브를 가꾸는 일이 아닌 콩과 옥수수를 비롯한 푸성귀를 심어놓은 밭에 나가 김매는 작업이었다. 혹시라도 남아 있는 허브 중 필요한 것이 있을까 싶어 시설하우스를 둘러봐도 좋겠냐고 물었을 때 노인의 표정은 시무룩했다. “둘러보는 것은 괜찮은디 그냥 혼자서 둘러봐. 농사지을 때 사람들 찾아오믄 데꼬 댕김서 뭐고 뭐고 설명도 혀주고 혔는디 인자는… 미안혀요. 설명도 혀주고 혀야는디, 미안혀.”

시설하우스 다섯 동 중 두 동만 관리되고 있었고 세 동은 창고와 개집으로 쓰이고 있었다. 개집으로 쓰이는 시설하우스 안에는 저 알아서 일어선 페퍼민트와 스피어민트가 무성하게 뻗어났지만 곧 말라죽을 것으로 보였다. 관리되는 두 동에는 로즈메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또한 관리한다기보다는 죽지 않게 물만 주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내 키보다 높이 자란 로즈메리는 강인해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하우스 안을 지키고 있었다.

하우스를 둘러보고 나왔을 때 노인은 농장 입구 나무 그늘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노인에게 로즈메리 화분 몇 개를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노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노인의 설명은 이랬다.

“식물이란 것은 다들 뿌리가 있는 것이여. 화분에서 크던 놈들이 땅으로 뿌리를 내려서 그만치나 큰 것들이거든. 근디 그 뿌리를 잘러불믄 아래로 뻗은 뿌리만큼 나무도 죽는 것여. 이른 봄이믄 괜찮어. 이른 봄에는 야들도 한 해를 살아갈 준비를 허는 중이라 뿌리를 잘라도 다시 새 뿌리를 내릴 준비가 되어 있거든. 근디 요새 같은 한여름에 뿌리를 잘라불믄 야들도 대책이 없는 거라. 저 아래 뻗은 잔뿌리로 올해를 살어야것다 마음먹고 살어가는디 잘라불믄 못 살고 죽어. 내가 자네한테 이것 팔자고 맘먹으믄 팔 수야 있어. 나야 좋지. 근디 갖고 가서 일주일도 못 살어. 죽는 것여. 그런 거 뻔히 아닌디 어떻게 팔 것는가. 봄이나 되믄 와서 사가. 그럼 안 죽고 살 것이네.”

“저것 끊어 자쳐라”

얼마 전 어미는 매실을 수확했다. 한때 유행하던 매실청을 사람들은 더 이상 담그지 않는다. 매실 20kg을 1만1천원에 팔고 돌아온 어미는 나에게 말했다. “저것 끊어 자쳐라.” 매실나무도 21년 정도 된 듯하다.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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