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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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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닭 모가지 비틀던 마음

개업 넉 달 뒤 배달하던 친구는 더 못해먹겠다고 하고 여직원은 수배 중이라며 경찰이 데리고 갔는데… 떠날 놈, 갔다온 년, 아무 데도 못 갈 놈이 둘러앉아 삶은 닭을 먹었네
등록 2015-07-16 07:53 수정 2020-05-03 04:28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이에게 기복만큼 큰 위안을 주는 것이 또 있을까. 높은 하늘에서 굽어 살피시는 큰 신들이야 돌봐야 할 어린양과 중생이 차고 넘치니 주문이 접수되는 데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드는데다 자잘한 기복까지 들어줄 턱이 없다. 그럴 때 찾는 제3금융권처럼 내 잠자리 옆에서 함께 잠자고 밥상 차리면 함께 밥 먹고 부뚜막에서 눈물 훔치면 어깨라도 다독여주던 가택신에게 복을 빌고 의지하며 위안 삼았을 것이다.

몸 성히 떠나야 할 것이고, 관청 들어가 고초 겪었으니 잘 먹어야 할 것이고, 애탄 내 간장도 보해야 할 것이니 달구새끼를 폭 삶아 나눠먹었다. 전호용

몸 성히 떠나야 할 것이고, 관청 들어가 고초 겪었으니 잘 먹어야 할 것이고, 애탄 내 간장도 보해야 할 것이니 달구새끼를 폭 삶아 나눠먹었다. 전호용

사과·배·육포 올리고 초라한 개업식

가게라 봐야 손바닥만이나 한 헌노무 가게 열면서 무슨 뻑적지근한 개업식을 했겠는가. “나는 음식을 허고 너는 배달을 허자”며 두 사람의 의기를 하나로 합해 동분서주, 식당이랍시고 차려놓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었다. 허름한 식탁 위에 사과 한 알, 배 한 알, 육포 서너 장, 청주 한 사발 따라 올리고 성주신께 우선 절을 올렸다.

“무탈허게 보살펴주시고 장사 잘되게 혀주시오.”

그 사발에 담긴 술은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눠 마시고 다시 빈 사발에 청주를 따라 개수대와 불판 위에 뿌리며 중얼거렸다.

“물난리, 불난리 나지 않게 허시고.”

가게 바닥에 청주 한 사발을 붓고 중얼거렸다.

“풍년 들고 재복 들게 허시고.”

문지방과 간판에 청주 한 사발을 붓고 중얼거렸다.

“드나드는 사람들 어여삐 여기시고.”

오토바이에 청주 한 사발을 붓고 중얼거렸다.

“배달허는 저놈 사고 나지 않게 지켜주시고.”

화장실에 들어 청주 한 사발을 붓고 중얼거렸다.

“놀랄 일 없게 허시고.”

냉장고와 소금단지에 청주 한 사발을 붓고 중얼거렸다.

“음식 상허지 않게 잘 보살펴주시오.”

이 모두가 다 제 굳은 의지와 성실한 노력과 사려 깊음에 달린 것일 테지만 이리 하고 나면 갠지스강에서 목욕하고 나온 인도 사람들만큼이나 개운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누군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배부른 듯하고 기분 좋게 취한 것도 같다. 그 이유는 어려서부터 보고 배운 것이 그러해서 그렇다. 할미와 어미는 노력 여하에 상관없이 찾아드는 불가항력 앞에서 성주께, 조왕신께, 측신께, 칠성신, 터줏신, 삼신, 장독신, 별별 신께 고개를 조아리며 염원했었다. 어미나 할미가 유약하고 게으르고 공것을 바라는 성품을 지닌 사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것을 평생 동안 몸으로 버티며 체득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엔 가택신들을 불러내 염원했다. 불가항력이란 노력 여하와 상관이 없었으므로.

그렇게 두 사람이 초라한 개업식을 치르고 넉 달이 지날 무렵 내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함께 개업을 하고 배달을 맡아 했던 친구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전해왔다. 개업을 준비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지금까지 6개월간 두 사람은 각자 가진 모든 에너지를 최대한 끌어모아 가게에 쏟아부었다. 체력은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고 열정도 식어가고 있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보답을 얻기란 아직까지 요원하다. 처음 장사를 해보자고 부추긴 것은 나였다. 그 친구는 그간 군소리 한마디 없이 묵묵하게 일을 해주었으므로 떠난다는 사람을 붙잡을 염치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측신이 조금 서운허셨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비빌 언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비빌 언덕이라 허이면, 주방일 경험은 전무허고, 겨우 20kg 쌀 한 포대 들마시하는 것이 고작인 ‘허당’ 여직원이었다. 어쩌겠나, 이 자리를 지키는 것은 남은 사람들의 몫인 것을. 며칠간 밤잠을 설쳐가며 머리를 쥐어짜 메뉴와 가격을 조정하고, 배달 구역을 좁히고, 새로운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려던 7월1일 오전 11시10분경. 사복경찰 두 명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 여직원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더니 나를 문 밖으로 불러냈다.

“○○○씨는 범죄사실이 있어 수배가 내려져 있습니다. 아직까지 혐의가 명확하지 않고 프라이버시도 있어서 자세한 사항을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오늘 중으로는 돌아오기 힘들 것 같고 시간이 더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짐을 정리해 문을 나서는 여직원의 얼굴을 보아하니 본인도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나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여직원의 얼굴이 담담해 보여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다녀오시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다.

‘어지간한 신은 다 챙겨드렸는디 측신이 조금 서운허셨나…. 며칠 새 사람 기운을 이리 빼놓을 수 있소.’

사람이 벌인 일을 두고 측간에서 구린내 맡으며 고생하는 애먼 측신 탓이나 하며 구시렁대는 내가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이 조금 모자란 듯 허당기가 있어서 그렇지 순하고 때때로 재치도 있어 이런 일에 연루되거나 당할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었다. 무언가 오해가 있을 테고 조사를 받으면 누명이 풀릴 것이란 믿음이 없던 것도 아니었지만 내내 헛웃음이 나오고 한숨이 밀려나오는 것을 막을 길 없이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한 놈은 여섯 달 만에 못해먹겠데, 한 년은 경찰이 찾아와 끌고 가. 뭔 집구석이 이리도 버라이어티한 거여. 푸닥거리라도 한바탕 혀야냐, 고사라도 지내야냐….’

사람 사는 일에 가장 큰 불가항력이란 결국 사람이련가. 그럼에도 가장 힘이 되는 존재 또한 사람일 테지. ‘내일 꼭두새벽에 다시 한번 술상이라도 차려 여러 가택신들 모셔다놓고 막걸리라도 한 사발씩 따라드려야 널뛰는 마음이 가라앉을 것이냐’도 생각해보았지만 허튼 생각 그만하기로 하고 시장에 들러 실한 달구새끼 한 마리를 사들고 퇴근을 했다. ‘가택신들이야 만날 천날 밥상머리 앞에 붙어앉아 밥 얻어자시는 양반들이니 내일도 밥술 뜰 적에 옆에서 함께 밥술 뜨것지. 그 양반들이야 그 양반들이고, 떠나는 놈 잘 먹어야 몸 성히 떠날 것이고, 잘났거나 못났거나 관청 들어가 고초 겪은 년 잘 먹여야 새 기운 날 것이며, 이 꼴 저 꼴 보느라 애탄 내 간장도 보해야 할 것잉게 달구새끼 폭신 삶아 먹이고 먹어야것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여직원은 그날 밤 늦은 시간에야 조사를 마치고 귀가한다는 연락이 왔다. 무탈하냐니 무탈하다 해서 자초지종은 다음날 듣자 하고 말려둔 약초를 챙겼다. 경남 남해군 바닷가에서 구해 말려두었던 하수오 두 뿌리와 충남 태안의 어느 숲에서 찾아낸 더덕과 산도라지, 잔대 말린 것 서너 뿌리, 섬진강을 지날 때 주워 모았던 밤 몇 알과, 대추 몇 알을 챙겨두고 잠이 들었다.

수돗물에 첫 물, 늦은 물이 어디 있겠느냐만
크게 뜯은 닭다리를 어머니가 그릇에 담은 뒤 닭국물을 붓고 있다. 전호용

크게 뜯은 닭다리를 어머니가 그릇에 담은 뒤 닭국물을 붓고 있다. 전호용

다음날 아침 일찍 가게로 나가 첫 물에 닭을 씻었다. 수돗물에 첫 물, 늦은 물이 어디 있겠느냐만 하루 지나 처음 여는 수돗물로 달구새끼며 약초를 깨끗이 씻어 솥에 담고 무르게 삶아 아침상을 차렸다.

떠날 놈, 갔다온 년, 아무 데도 못 갈 놈이 밥상에 둘러앉아 삶은 닭을 먹었다. 떠날 놈은 닭가슴살을 좋아해 닭가슴살을 찢어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고, 갔다온 년은 닭다리살을 찢어 밥그릇 위에 놓아주었다. 이 두 연놈은 닭껍데기를 먹지 않아 나는 닭껍데기를 골라 먹었다.

“너 좋아하는 닭가슴살이다.”

“옥살이허고 나믄 잘 먹으야 혀. 어여 많이 먹어.”

이 또한 배워먹은 것이 이러하다. 팔뚝 부러진 날 아비는 만춘향으로 나를 데려가 짜장면을 사 먹였다.

“어서 많이 먹어라.”

가출해서 한 달 만에 돌아온 날 어미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저녁상을 차려냈다.

“밥도 못 먹고 살었간디 빠싹 말렀네. 어여 먹어.”

파혼 소식을 알리고 터덜거리며 마당을 걸어 나설 때 어미는 달구새끼의 모가지를 비틀었다.

“가꼬 가서 삶어먹든 볶아먹든 알어서 잘 챙겨먹어. 내가 어서 죽어야지….”

아!!!

달구새끼 살을 발라 두 사람의 밥그릇 위에 올려주고 껍데기를 내 입에 밀어넣을 때 그 수많은 달구새끼들의 모가지를 비틀던 어미의 마음이 알아져버렸다. 자식이란 불가항력 앞에서 달구새끼의 목을 비틀며 못난 자식의 복을 빌었구나. 이것 먹고 몸이라도 성허라고, 산목숨이니 이것 먹고 목숨 부지혀서 제발 철 좀 들라고.

닭 한 마리를 게 눈 감추듯 발라먹고 난 뒤 자초지종을 듣자 하니 울화가 치밀어올랐다. 잘못을 하기는 했으나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르고 죄를 지어 벌금 445만원을 내고 풀려났다며 헤벌쭉 웃고 있었다. 까마득히 오래전에 여차저차 사정이 있어 외국인에게 통장 하나를 빌려줬는데 그 뒤로 그 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지냈단다. 그런데 얼마 전에 그 통장이 범죄에 이용되었고 수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어 경찰이 찾아온 것이었고 그것을 해명하느라 꼬박 하루가 걸렸다는 이야기를 신나는 무용담을 풀어내듯 재잘거렸다. 물론 타인에게 통장을 양도하였으므로 금융실명제법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게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말이다.

“임병…, 내가 느그 아부지냐. 한 놈은 못혀먹것다고 뻗대, 한 년은 빙구짓이나 허고 댕겨…. 아이고, 멕인 달구새끼가 아깝다!”

함께 밥 먹는 사람이 빙구건 천치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는 또다시 어두운 새벽에 눈떠 잠든 달구새끼의 모가지를 움켜쥐었을 테지. 보고 배운 것이 이 모양이라 울 안에서 함께 밥 먹는 사람이 빙구건 천치건 간에 몸이라도 성하게 해달라며 빌고 또 빌며 국수를 삶아 먹이고 청국장을 끓여 상 위에 올린다.

‘떠나는 사람 다리에 힘 실어주시고, 남은 사람은 어떤 고된 일 앞에서도 지금처럼 허허 헤벌쭉 웃을 수 있는 여유 담아주시오.’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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