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은 이동조사원으로 2년째 일하는 중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다가 친구 따라 선거기간에 투표 설문조사 아르바이트를 하던 계기가 인연이 되었다. 인구이동 조사부터 도시 하수구 배관 통계까지 핀은 조사원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다. 두 달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봇대 수를 세고 기능을 점검하고 통계 내는 일도 했다. “지난번처럼 고속도로 전봇대에 올라가야 하는 일만 없다면 마다하지 않을게요.” “이보게, 친구. 이 일을 오래 하려면 그 정도 담력은 있어야 한다네. 덕분에 난 시속 100km 넘게 달려오는 고속도로 차들을 아래에 두고 30m가 넘는 높이의 고속도로 CCTV에 매달려 불량 측정을 매년 하고 있네. 따라올 수 없는 전문가가 된 거지.”
핀은 얼마 뒤 회사에서 그가 도로 아래로 추락해서 젓갈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곤 그쪽 일을 접었다. 조사는 자신 있지만 고소공포증을 측량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통계청 알바를 다시 지원했다. 요원이라는 말이 좋아 내검요원과 입력요원 일도 군말 없이 성실히 해냈다. 주로 공공정책센터나 사설 리서치센터에서 떨어지는 하청업을 수행하는 일이었지만 열심히만 하면 정직원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채용정보에 핀은 갈증이 생겼다. “알바는 할당량 채우기에 급급하다는 고지식한 사장님의 생각은 의심됩니다!”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의심되는 설문지는 검수에서 잡아내어 용역비를 까도 되는 건가?” “저에게나 사장님에게나 서로 그냥 빼먹고 가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핀의 성실함은 입소문이 자자했다. 핀은 매일 밤일을 마치고 회사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데이터 클린(clean)!”
핀은 전문대학에서 환경위생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은 통계학이었다. 중간고사 기간엔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바퀴벌레의 종류를 암기했고, 출몰한 한 마리 바퀴벌레의 종류와 수로 집 안에 섭생하는 바퀴벌레 수를 예측하는 논술 덕에 장학금을 타기도 했다. 사춘기 누나들을 가출하게 만들던 바퀴벌레가 자신의 학비를 감당하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린 시절 수십 년 된 다세대 연립주택에 살면서 바퀴벌레와 쥐들과 더부살이를 한 탓인지 환경과 위생에 관련된 일이라면 핀은 불평 없이 잘해낼 자신이 있었다. 졸업 뒤 핀은 아버지의 가업을 계승해서 환경미화원 시험 준비를 성실히 했다. 하지만 환경미화원 시험 응시자가 한 집에서 도저히 함께 섭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바퀴벌레 수만큼 번식하곤 했다. 경쟁률이 턱없이 높아지자 핀은 아예 전공인 바퀴벌레를 살려 세스코 같은 살충회사에 취업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바퀴벌레가 생각보다 지능이 높아졌다는 이유를 대며 직원은 4년제 대학 졸업생만 뽑는다고 했다.
핀은 자취방으로 돌아와 약 먹고 뒤집어진 바퀴벌레처럼 날개를 빼놓고 발버둥치며 분개했다. 그러고는 통계원 조사 업무에 대한 이력서를 다시 쓰곤 했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탑승 인원 조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서류철과 모나미펜 한 자루를 들고 버스에 올라타 탑승 인원을 기록하는 일이었다. 새벽 5시께 첫 버스에 몸을 싣고 종점에 닿으면 내렸다가 후다닥 다시 버스에 올라타고 그렇게 막차 시간까지 연령대별 승차 인원과 하차 인원의 수를 세고 오는 일이다. 통찰력을 발휘해서 연봉대별과 직업대별 승차 인원까지 기록할 필요는 없었다. 대신 점심값을 아끼려고 굶었다가 어지러워서 승객 수를 헛갈리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핀은 이 ‘버스 탑승 인원 조사 업무’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 공짜로 버스를 타고 종일 도시의 버스 노선을 돌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특유의 성실과 근면 덕인지 사내에선 핀에게 서울의 거의 모든 노선을 맡기기 시작했다. 대신 다른 승객들처럼 자신은 종점까지 환승을 한 번도 하지 못한다는 규칙이 창밖을 바라보는 핀의 눈물을 핑 돌게 하곤 했다.
김경주 시인·극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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