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은 얼마 전까지 계약직 동물원 사육사였다. 주로 원숭이들을 맡았다. 얌은 새끼 알락꼬리여우원숭이의 기저귀를 채워주었고 히말라야원숭이의 목욕물을 덥히고 망토원숭이의 텃세를 버티기 위해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일을 그만두기 전까진 혼기를 놓친 다람쥐원숭이들의 소개팅을 주선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얌은 지금은 애견미용실에서 일한다. 동물행동 상담사 역할로 취업했지만 주로 인터넷으로 고양이와 강아지를 싼값에 매입하거나 분양하는 것이 업무다.
얌은 어릴 적부터 동물과 친했다. 직장에서 해고된 뒤 시골에서 흑염소 농장을 하는 아버지 탓인지 얌은 자연스럽게 동물과 어울렸다. 산과 들에서 뛰노는 동안 동물과의 감수성이 겨드랑이 털보다 빠르게 자란 덕에 얌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엔 동물원에서 일하는 꿈을 갖게 되었다. 얌에겐 인간 생태계에서 먹이사슬의 점유율을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삶은 시시했다. “아빠, 전 아버지처럼 동물과 교감하는 삶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얘야, 사실 난 인간들 속에 더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난 동물의 왕국에서 쫓겨났다. 먹고살기 위해서 흑염소와 붙어먹은 거야.” 얌은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아버지의 흑염소를 한 번도 먹지 않았다.
얌은 대학에서 야생동물학과 동물행동학을 공부했고 체계적인 동물사육 관련 공부를 한 뒤 동물원에 계약직 사육사로 취업했다. 사육사 시험은 경쟁률이 높았다. 뉴스에선 중국의 채용시험 공고에 마르크스 이론도 포함된다고 했다. 사상교육을 받고 있을 판다를 생각하면 얌은 마음이 아팠다. 시험 막바지엔 체력이 떨어지는 얌을 위해 시골에서 아버지가 한약재가 된 흑염소 한 상자를 고시원으로 보내오셨다. 얌은 변기통에 한약 봉지를 모두 까서 흘려버렸다. “이제부턴 사자나 불곰들이 내 딸을 물어가지 않도록 기도해야겠구나.” “아버지는 흑염소부터 자라, 뱀장어까지 평생을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오셨잖아요?” “맞아, 난 평생 그놈들과 부둥켜 살아왔지.” “아빤 비 오는 날 동물원 가는 것도 좋아하시잖아요?” “하지만 난 동물원으로 딸을 보러 가고 싶지는 않구나.” “전 아버지처럼 스스로 만든 작은 동물원에 갇혀 살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얌이 생각한 것만큼 동물원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방사장의 부주의한 사고로 인해 병원에 실려간 베테랑 사육사도 많이 보았다. 새벽 일찍 일어나 밤늦게까지 새끼를 낳으려는 동물과 함께 있어야 할 때도 많았다. 야생동물들끼리 주고받는 경쟁과 학대를 중재할 수 없을 때는 괴롭기도 했다. 원룸으로 돌아오면 얌은 자신도 내실에 있는 한 마리 거북이처럼 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눈꺼풀을 끔벅이다가 잠들곤 했다. 하지만 얌은 곰, 여우, 원숭이, 스라소니, 라쿤, 물범 등 다양한 동물들과 사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얌이 동물원 사육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아버지 때문이었다. 동물농장에 혼자 계시는 아버지의 척추가 망가져 혼자선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얌은 시골로 내려와 간병해야 했다. 동물에게 했듯이 밥은 잘 먹었는지, 아침마다 변은 잘 보는지, 빛깔을 보고 건강을 살피며 아버지를 돌보았다. 아버지는 몇 년이 지나자 늙은 미어캣처럼 몸길이가 줄어들고 누워서 초식동물처럼 풀죽만 드셨다. 얌은 병들어 내실에만 있는 아버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무리에서 밀려나신 지 몇십 년이 되어 이젠 변을 혼자서 볼 수도 없을 만큼 애처로운 상태가 되었다. 얌은 아버지를 조련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두 팔을 걷고 복지에 신경을 썼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지금 애완동물인지 멸종위기의 야생동물인지 얌은 가끔 헛갈렸다. 아버지는 결국 흰오릭스처럼 남은 깃털들을 파득거리다가, 시멘트 바닥에 흰코뿔소처럼 옆으로 누워서 돌아가셨다. 관객은 단 한 명이었다. 얌은 아버지를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사설 동물원으로 들어갔지만 곧 그만두었다. 사육하던 오랑우탄이 죽자 바로 박제해 동물원 입구 전시장에 진열하는 주인의 당원이 되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김경주 시인·극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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