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은 배 짓는 사람이다. 목선을 짓거나 수리해주며 하루 생계를 해결한다. 홀은 혼자 된 이후 동남아시아의 작은 어촌을 여행하며 살아온 지 꽤 되었다. 베트남의 하롱베이에도 몇 년 머물렀고, 므이엔의 해안가에선 어부들과 어울리며 몇 년 머물렀다. 필리핀의 누에바이시하에선 선교사들과 몇 년 동안 배를 지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다.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에선 메콩강 지류를 따라 걸으며 부서진 목선들을 수리해주고 살았다. 어부들에게 하루 일당을 받을 때도 있고, 숙소를 해결해주면 수임비가 없어도 일을 했다. 홀은 배가 다시 물길을 만나 두렵지 않도록 사람들을 도왔다. 홀이 지어준 나무배를 타고 나가 사람들은 생필품을 나르거나 어업을 하고 돌아왔다. 그들의 삶은 가난했지만 평온해 보였고 풍요로웠다. 홀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강 한 번을 건너갔다 오면 하루가 가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들은 비가 많이 와서 물길이 어두우면 배를 거두고 나무 사이에 그물침대를 걸어두고 잠을 자거나 소일을 했다. 그러다가 다시 물속이 맑아지면 배를 밀고 나갔다. 저녁이면 잡아온 생선을 구워서 나눠먹었다. 떠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 홀은 강가에 혼자 앉아 대패와 몇 종류의 못과 톱이 담긴 공구통을 옆에 내려놓고 해 지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몇 척의 목선이 가물가물 흔들리며 해넘이와 어울렸다. 홀은 모닥불을 피우고 주머니에 있는 대팻가루를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옛 생각이 눈시울에 넘쳤다. 그러다가 홀은 술에 취해 목선처럼 꾸벅꾸벅 졸곤 했다. 홀의 나이도 육십이 되었다.
홀은 고국에서 오랫동안 조선공으로 일했다. 항해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집안이 가난했고 형제가 많았다. 홀은 군대를 다녀온 뒤 직업 해양학교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선체의 조립공정과 선박설계에 관한 수업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소로 들어가 20여 년간 성실히 일했다. 배를 짓는 현장일은 거칠고 힘들었지만 가족을 위해 쉬지 않았다. 그사이 아내의 아랫배에도 작은 선실이 생겼다. 아내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작은 선체의 내부를 만들고 아이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도록 배를 맑게 건조하는 일을 했다. 밤늦게 일하고 돌아와 아내의 배에 귀를 대면 첫 유산으로 가라앉아 있던 아이가 숨을 고르며 떠오르는 상상을 했다. 얼마 뒤 갑판과 격벽의 구조를 짤 때 첫아이가 태어났고, 선수와 선미의 평행부 작업을 할 때 둘째가 태어났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선박 설계도면을 펼쳐놓고 놀았다. 홀은 선미에 걸터앉아 대패질을 하다가 해 지는 바다의 수평선이 힘차게 솟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조선소도 기울기 시작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현장직이 정리되기 시작했고 홀은 오랜 동료들을 잃게 되었다. 노조가 만들어졌고 임금이 밀렸다. 홀은 어느 날 선수에 서서 일이 서툰 외국인 노동자가 선박 이송용 크레인에 깔려 죽는 것을 목격했다. 인부들이 급하게 주검을 치우고 바닥의 핏물을 닦고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시작했다. 주검이 있던 자리에 다시 뜨거운 햇볕이 쏟아졌다. 몇 번씩 비슷한 사고가 생겨났다. 오후가 되면 오전의 사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필리핀과 베트남에서 남편과 오빠의 소식을 묻는 편지와 엽서가 조선소 우편함으로 가득 날아왔지만 아무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홀은 직접 외국의 주소로 편지를 써서 그들의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조합에 가서 부당한 외국인 노동자의 대우를 항의했다. 며칠 뒤 홀은 선급협회에서 비품관리 사무직으로 발령이 났다. 홀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조선소를 떠나야 했다. 매달 오스트레일리아로 아이들의 학비와 생필품을 사기 위한 돈을 보내야 하는 홀은 항로를 잃고 항구에 내려앉은 기러기 한 마리처럼 아득했다. 조선소 근처의 현장 인부가 되어 홀은 격벽을 용접하는 일을 했지만 몇 달 뒤 아내는 가족의 부도수표를 알려왔다. 홀은 가족이 함께 살던 격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악몽을 자주 꾸었다. 홀은 이혼 서류에 사인해서 해외로 가는 선박에 보낸 뒤 공구통을 챙겨 여행을 시작했다. 함께 일하던 외국인 동료들의 고향 어촌으로 가보고 싶었다. 홀은 그들의 가족에게 작은 목선을 만들어주었다. 홀은 가끔 자신도 직접 만든 목선을 타고 가족에게 돌아가는 꿈을 꾸다가 일어나 꺽꺽 울곤 한다. 사람들은 홀을 방카(필리핀식의 흔들리는 배를 말함)라고 부른다.
김경주 시인·극작가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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