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의학도 궁은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응급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는 일을 한다. 응급실은 24시간 365일 쉬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일하면 그 근처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과 사고, 범죄 같은 일을 거의 다 경험한다. 응급의사는 죽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업 중 하나이며 인간의 가장 나약한 날것의 상태를 목격하는 장소가 응급실이다. 남들에겐 널널한 1분이 궁에겐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궁은 응급실에서 인간이 몸속으로 집어넣을 수 있는 모든 물질에 관한 것을 경험한다. 어떤 것을 먹고 오더라도 치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이물학과 중독학의 기본이다. 사람들은 락스, 페인트, 휘발유, 엔진오일을 먹고 오기도 하고 자살하려고 담배 한 갑을 냄비에 끓여서 우려먹고 온 여고생도 있었다. 수은 체온계를 깨서 마시고 온 사람도 있고, 김 속에 든 방부제를 모아서 잡수시고 온 이도 있고, 집에서 키우던 아마존산 관목 잎을 따먹고 사경을 헤매다가 돌아간 사람도 있다. 눈, 코, 귀, 입부터 똥구멍까지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을 집어넣고 와서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응급실에선 설명하기 곤란한 것을 넣고 오신 분들에게 설명을 요구할 틈이 없다. 일단 살리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살고 싶어 달려왔지 의사에게 변명하기 위해 온 사람은 드물다. 궁은 대학에서 중독학이나 고산병, 잠수병 같은 환경의학을 배우며 인간이 불편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지곤 했다. 궁은 의대에 진학하기보다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의대에 원서를 내고 술을 마시고 놀다보니 어느 날 해부용 시체가 눈앞에 있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전문의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궁은 그동안 응급실에서 목격하고 느끼는 이야기만 가지고도 장편소설 몇 권 분량을 경험했다. 언젠가 체호프나 루쉰처럼 ‘생명에 중독된 인간’에 대해 써내는 작가가 되리라고 믿는다. 슬럼프가 올 때도 있었지만 궁은 끊임없이 자신이 닿았던 생존 환경을 기록하며 글로 바느질을 하곤 한다. 책상에 앉아 의학기구가 아닌 키보드를 두드리며, 궁은 살과 지방과 비계 덩어리 속에 숨겨진 인간의 나약함과 뻔뻔함과 수치심과 숭고에 대해 써내려가곤 한다.
응급실로 찾아오는 취객은 대부분 비이성·비논리·비인간성·비존엄성이 뒤범벅인 채 온다. 반경 몇km 내의 그날 가장 취한 사람들만 모아놓은 곳이 응급실이라면, 궁이 글을 쓰는 공간 역시 또 다른 응급실이다. 글쓰기란 모두가 다 취했어도 자신은 취하지 않은 채 언어의 심폐소생술을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미 죽은 부분에도 혼자 묵묵히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글 쓰는 작업이라는 것을 궁은 알고 있다.
궁의 실존은 타인의 생존에서 비롯된다. 바꾸어 말하면 궁의 기록은 가장 뜨거운 생존에서 가장 차가운 실존을 끌어내는 일이다. 궁이 지금까지 사망을 선고한 사람은 몇백 명이 된다. 사람을 살리다보면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포기해야 하나 더 해봐야 하나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유가족은 궁이 사망을 선고하면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울기 시작한다. 궁이 1분을 늦게 선고하면 1분을 늦게 운다. 죽은 사람을 두고 그 시간을 정하는 것이 궁의 일이기도 하다. 복잡한 생각이 든다. 궁은 사망 시점을 정하고 유서를 가장 많이 보는 이 직업에 대한 권리가 무엇인지 가끔 몽롱하다. 초반엔 사망 선고를 하고 감정에 복받쳐서 몰래 울다 오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덧 고깃덩어리가 되어 온 환자 앞에서도 많이 냉정해졌다. 죽음과 삶에 대해 담담해졌다기보다는 피와 상처 앞에서 차가워진 것이다.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돌보는 일은 먼저 어떤 인간이라도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것임을 알아가며 궁은 오늘도 골방 구석에서 자신의 기록들에 혈청을 남긴다.
김경주 시인·극작가*그동안 ‘김경주의 분투’를 읽어주신 독자에게 감사드리며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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