튠은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일한다. 주로 컴퓨터 부품들을 조립해주거나 수리하는 일을 한다.
직원은 주인과 튠 둘이다. 손님이 없을 때는 구석에 앉아 중고 모니터를 닦는다. 사람들은 이제 인터넷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용산까지 찾아오는 고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짖을 일이 없는 경비견처럼 튠은 주인의 눈치를 보며 매일 점심을 먹는다. 침체된 상권 분위기에 빠져 씩씩거리던 주인은 최근 사설 오락실 쪽으로 업종을 바꾸려는 계획을 품고 있다. 매일 오락실에 가서 염탐을 핑계로 오후 늦게야 돌아온다. 조립형 PC 시장과 중고 노트북 시장의 대마왕이었던 용산의 제웅은 천천히 몰락했다. 동네마다 대형마트가 들어서면서 대기업의 상술이 용산의 골목상권까지 기습한 것이다.
튠이 10여 년 전 이곳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호구’ 손님은 많았다. 싼 물건을 찾기 위해 온 고객들은 최저가에 맞춰주겠다는 사탕발림만 해주면 지갑으로 빨려 들어왔다.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라 튠도 몇 년 동안 선배들에게 기술보다 사탕발림만 배웠다. 이를테면 자꾸 캐묻고, 전문지식으로 똘똘하고, 과도한 사후관리(AS)를 요구하는 고객에겐 부드러운 말투로 “손님 맞을래요?”라고 해주면 고객은 입술을 내밀고 집으로 돌아갔다. 3천 명이나 되는 ‘용팔이’의 카르텔은 견고했다. “우리가 없으면 이 용산은 몰락할걸.” 용팔이들의 입에서 싱싱한 구라산 해산물이 줄줄 흘러나오던 시절이었다.
튠은 지방의 전자공업고등학교를 나와 몇 년간 부품 공장에서 일하다가 그만두고 산악용 자전거를 한 대 구입해 중국을 몇 개월 횡단했다. 공장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극기를 자전거에 달고 튠은 중국의 우렁찬 산맥들을 넘었다. 중국의 농공들은 지나가는 튠의 여행을 부러워했다. 대부분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거나 튠처럼 자신도 무모한 삶을 끝내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중 몇몇은 자전거 안장 뒤에 자신을 태워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데려가달라고 했다. 고구마를 삶아주며 자신의 막내딸이라도 자전거에 태워 데려가달라는 이도 보았다. 외로웠지만 튠은 막내딸에게 태극기를 선물해주며 돌아섰다. 길손은 미련을 남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언덕을 오를 때마다 페달을 밟으며 튠은 내리막을 생각하고 견뎠다. 그리고 돌아와 용산 전자상가에 취업했다. 세계는 넓지만 자신이 할 일은 별로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반년 넘게 이곳저곳 여행을 하다가 튠은 우연히 쓰촨성에서 자신처럼 자전거 여행 중인 사람을 만나면서 생각이 변했다. 그는 위성항법장치(GPS)를 자전거에 달고 2년째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돌아가면 자전거를 팔아치우고 이런 전자제품 장사를 해야겠어. 이놈이 없었으면 난 벌써 길을 잃었을 거야. 대단한 녀석이라고!” “전 마음이 시키는 대로 페달을 밟아 달려왔어요.” “멍청한 소리 좀 그만해. 우린 자신을 속여온 거라고. 첨단의 시대가 다가온다네. 나침판 따윈 필요 없어. 길을 잃지 않으려면 이젠 GPS 같은 전자제품이 필요해. 나랑 함께 용산으로 가서 용팔이가 되어보세.”
튠은 그렇게 이 길로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봐도 근사한 선택이었다. 튠은 자신의 여행이 큰 의미를 남길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튠은 언제나 자신이 행운아라고 믿었다. 자전거 여행을 함께 하던 그 지인은 몇 년 뒤 용산을 나가 내비게이션 장사를 해서 돈을 왕창 벌었다. 튠에게 소주를 사주며 그는 길을 잃지 않는 법을 자전거 여행에서 배운 것이 다행이라고 했다. 용산 전자상가에선 점점 건물주들이 점포를 대형화하고 온라인과 병행화하며 공실을 메우고 직원 수를 대폭 줄였다. 수많은 용팔이들이 직장을 잃고 떠나야 했다. 튠은 이 아찔한 위기를 잘 넘겼다. 호객 행위와 화술로 능선을 넘으며 숨을 고르던 동료들은 모두 필요가 없어졌지만 튠은 수리기술과 전문지식으로 버텼다.
컴퓨터 전자제품에 둔한 주인이 호구였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서 지배인으로 일하던 주인은 지인의 귀엣말에 속아 용산에서 자영업을 시작했다. 튠의 동료들은 호구 주인을 만나는 것이 제일 좋은 운이라고 말해주었다. 튠은 망할 시대를 만나 이제 자신의 운이 달아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낙후와 자체 몰락의 분위기에 용팔이들은 게임에 빠지기 시작했다. 튠은 지구의 어디를 가더라도 길을 잃지 않는 ‘GPS 수리점’을 하나 차리는 꿈을 아직 포기하지 못했다.
김경주 시인·극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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