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은 요즘 사설 글쓰기 창작 아카데미학원에 다닌다. 시를 배우기 위해서다. 탕은 아내가 잠든 밤 조용히 혼자 일어난다. 밥상을 펴고 앉아 시를 써보기 위해 끙끙거린다. 깎아놓은 연필심을 종이에 꾹꾹 눌러가며 시심을 담은 단어를 고른다. 벽으로 돌아누워 잠든 아내의 숨소리가 부드럽다. “아내의 저 부드러운 숨소리를 단어에 옮겨 심을 수만 있다면 좋은 시가 될 텐데….” 아카데미 강사는 자신에게 가장 가깝고 소중한 것들부터 시로 써보라고 권했다. 육십이 넘은 나이에 시를 배운다는 것이 탕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글쓰기를 따로 배워본 적도 없고 비유니 수사니 하는 것들을 의식하며 단어나 문장에 사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강사 선생님, 마음에 있는 것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겠소?” “맞습니다. 시는 설명하기 곤란한 것들을…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써보는 겁니다.” 탕에게도 그런 것이 많긴 하다. 탕은 젊은 날 택시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난 뒤 절름발이가 되었다. 심야에 외곽으로 나가는 손님을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빗길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에 젖어 사고가 난 것이다. 목숨은 건졌지만 논두렁으로 튕겨나간 한쪽 무릎 아래는 찾을 수가 없었다. “깨어나서 보니 다리 하나가 사라져 있었어요….” “선생님, 정말 그때 날짐승이 무릎 아래 부분을 물고 갔다고 믿으세요?” “그만합시다. 더는 설명하고 싶지 않아요!”
교통사고 이후 탕은 퇴직금을 모아 30년이 넘도록 동네에서 아내와 함께 전파사를 운영해왔다. 반쪽은 철물점이고 반쪽은 전파사다. 아내는 철물점을 주로 맡았고, 탕은 전파사를 맡아 운영해왔다. 욕심 없이 지내니 그럭저럭 반평생을 아내와 함께 살았다. 전구알과 형광등을 팔아 자식들을 대학까지 보냈고 동네 라디오들을 수리해주며 전파사에 딸린 작은 방 한 칸을 얻어 지금까지 살고 있다. 동네 상권이 죽어나가며 많은 전파사들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아직 반쪽짜리 철물점은 유지할 수 있다. 탕은 전파사를 하면서 사람들의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해주는 일이 즐거웠다.
“당신은 라디오와 참 인연이 많은 사람 같아요….” 비가 오는 날이면 탕은 처마 아래서 아내와 함께 수리를 마친 라디오 채널을 맞추어놓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택시를 몰 때도 라디오 채널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는데, 전파사를 운영하면서도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듣는다. 비가 오는 날엔 라디오의 잡음이 더 싱싱하다. 탕이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계기도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시를 들으면서부터다. 심야의 채널에서 아나운서가 시를 몇 편씩 매주 읽어주곤 하는 것을 귀담아들으면서 마음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강사 선생님, 시가 제 마음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더라고요.” “맞습니다. 시를 알면 세상이 다 글썽거리는 것들 투성이입니다. 시를 포기하지 마세요.”
탕은 주변의 만류에도 전파사를 닫지 않고 있다. 탕은 전파사 구석에 앉아 라디오를 수리하고 라디오 채널들을 맞추며 세상을 수신하곤 했다. 시가 잘 늘지 않고 눈이 침침해질 때마다 탕은 라디오처럼 시도 잡음들을 먼저 사랑하기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탕은 얼마 전부터 아내에게 시를 한 편 바치고 싶다. 자신의 남은 무릎을 평생 만져준 이는 아내가 유일하다. 아내의 맑았던 무릎도 잡음이 심해졌다. 탕은 세상을 단념하고 싶을 때마다 아내의 무릎에 누워 다시 용기를 낸 순간들을 기억하곤 했다.
무릎 하나는 자신을 떠났지만 탕은 자신이 한 여자의 무릎에 평생 누울 수 있었던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제게 프러포즈를 한 날 선물해준 그 오래된 트랜지스터라디오 기억해요?” “기억하지. 언젠가 근사한 시 한 편을 써서 당신에게 사연 하나를 꼭 바치고 싶다고 했지.” “하지만 그 DJ 양반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네요.” “허허, 그 양반 벌써 DJ를 그만두었나? 섭섭하게.” 탕은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쓰는 것이 시라는 게 참 좋다고 생각한다.
김경주 시인·극작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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