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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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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배로 태평양을 건널 생각이다

3년 전 중고로 산 동성호에 돛을 달고, 연애할 때 빼고 누군가 보고 싶기는 처음인 사람을 만나러 우루과이로 가려 한다
등록 2015-06-10 21:08 수정 2020-05-03 04:28

요즘 나는 배를 몰고 태평양이나 대서양 건너 지구 반대편에 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이유는 이따가 말하겠다. 처음부터 미쳤단 소리 듣기 싫은데다 이런 경우 사람들은, 같이 가자는 것도 아닌데 저 통장에서 돈 빠져나갈 것처럼 달려들어 뜯어말리니까.

인류 최초 배는 통나무, 못할 건 뭔가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긴 항해는 그동안 세 번 했다. 현대상선 컨테이너선을 타고 부산에서 두바이까지 갔고, 또 한 번은 홍콩에서 인도양, 홍해, 수에즈운하, 지중해, 대서양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갔다. 그리고 지지난해엔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북극해를 갔다. 인천에서 출발하여 일본 혼슈와 북해도 사이를 관통하고 사할린과 캄차카반도를 타고 올라간 다음 베링해를 넘었다.

인도양은 노을이 장엄했고 수에즈운하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지중해는 바람이나 파도 하나하나가 그 동네 역사 같았고 대서양은 자체만으로 사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베링해는 듣던 대로 파도가 대단했다. 롤링 때문에 계속 침대에서 굴러야 해서 내가 마치 밀가루 반죽 되고 있는 것 같았다. 북극해의 유빙은 햇빛을 받으면 더없이 아름다웠다.

사실 북극해 다녀온 다음 긴 항해는 이제 그만하기로 했다. 지치기도 했거니와 안상학 시인이 ‘푸른 물방울’이라고 이름 붙인 지구별에 대한 궁금증이 웬만큼 풀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거문도에서 여수 오가는 여객선만 ‘쎄가 빠지게’ 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뜬금없이 더 먼 항해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것도 혼자서. 배는 다시 몰고 와야 하니까 돌아오는 것까지 하면 지구를 완전히 한 바퀴 도는 것이다.

나에게는 배가 한 척 있다. 이름은 동성호. 3년 전 중고로 산 선외기이다. 선외기란 엔진이 선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으로 항구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낮고 작은 보트이다. 보통 ‘쌔내기’라고 부르는데 가까운 곳을 재빠르게 왔다갔다 하는 용도라 다른 배라도 지나가면 파도를 넘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가만히 있다가 다시 가야 할 정도이다. 엔진과 조종대만 있기 때문에 비가 쏟아져도 피할 선실이나 조타실이랄 것도 없다.

이런 배로 대양을 건넌다고?

응.

못할 건 또 뭔가. 인류 최초의 배는 바다에 빠진 사람이 붙든 통나무나 널빤지였다. 우연히 그것을 붙들고 살아난 사람이 다른 나무를 덧대어 묶는 것으로 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머잖아 통나무 속을 파내는, 집념의 사나이도 나타났다. 자동차도 맨 처음엔 ‘구루마’였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 내 배는 첨단이다. 문제는 내 배가 첨단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나뿐이라는 것이다.

암튼, 배는 있다. 그런데 엔진을 사용해서 가려면 엄청난 양의 휘발유가 필요하다. 동성호 기름통은 두 말이면 꽉 찬다. 경제속도로 가면 대략 50km 정도이다. 그러니 대양을 건너려면 커다란 기름배가 따라와야 할 판이니 그럴 바에야 차라리 그 배 타고 가지.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람이다. 그래 돛을 달자. 내 어렸을 적 웬만한 배들은 돛 달고 다녔다. 당장 우리 할아버지 세대들만 해도 돛 달고 거문도에서 울릉도엘 다녔다. 가는 데 두 달, 머무는 데 두 달, 오는 데 두 달, 이렇게 반년 걸리는 행보를 옆집 마실 가듯이 다닌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하겠다. 요트 돛도 아니다. 요트라면 뭔 걱정인가마는 아주 작은 것도 몇억씩 한다고 들었다. 그러니 그냥 옛날 돛이다.

‘소비가 아니라 쓰레기에 반대한다’는 사람

목표는 우루과이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끼어 있는 나라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곡괭이를 들고 지구의 중심을 향해 정확히 파고 들어가면 그 나라가 나온다. 완벽한 반대쪽. 비록 우리가 토목공화국으로 명성 떨치고 있는데다 나도 한 시절 삽과 곡괭이질로 먹고살았지만 언제 그 짓을 하고 있겠는가.

그러니 바다이다. 하지만 우루과이는 남아메리카 중에서도 하필 동쪽 대서양에 붙어 있다. 태평양을 건넜다 하더라도 남극 대륙이 마주 보이는 드레이크해협을 지나야 한다. 여긴 베링해보다 더 악명 높은 곳이다. 오죽하면 ‘절규하는 남위 60’이라는 별칭이 붙었겠는가. 반대쪽 항로도 있다. 인도양 지나 아프리카 대륙 따라 내려갔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 희망봉 넘어 남대서양을 가로지르면 된다. 아, 제기랄. 어디로 가든지 졸라 멀다.

그런데 왜 이 지랄일까. 한 사람을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면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연애할 때 빼고 처음이다. 더군다나 이번은 노인이고 남자다. 바로 지난 3월에 퇴임한 전 우루과이 대통령 호세 무히카.

그를 찾아가보고 싶은 이유는 먼저 137호에서 와의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공화국은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원리로 움직이는 체계이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신(神)도 아니고 주술사도 아니다, 나는 대통령도 국민들 다수가 살아가는 방식 그대로 사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소비 자체가 아니라 쓰레기에 반대한다” “요즘 사람들은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교통체증의 질식 상태로 앉아서 인생의 절반을 버리고 있다. 자유란 삶을 누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내 목표는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적 사고방식을 남겨두고 떠나려는 것이다” 같은 그의 말이 나온다.

2013년 9월24일 제68차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어떤 나라도 혼자서 기후변화를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세계의 힘 있는 지도자들은 어떻게 하면 다음 선거에서 이길까만을 걱정하고 있다”고도 했다. 인용하고 싶은 게 더 많지만 원고량 채운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그만둔다. 암튼 다 알고 있는 말에 감동을 받아보기도 처음이다. 이유는 그가 자신의 말을 실제로 실천하고 생활하기 때문.

어떻게 비행기 타고 땅콩이나 씹겠는가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그래서 생각했다. ‘이 양반을 한번 만나봐야겠군.’ 그의 본명은 호세 알베르토 무히카 코르다노(그 동네 사람들 이름은 길기도 하지). 젊은 시절 마르크스주의자로 정부에 대항하여 싸웠으며 1985년 사면될 때까지 15년 감옥살이를 했다. 그중 11년은 독방 생활이었다. 그거까진 그렇다고 친다. 비슷한 경우가 우리나라에도 많으니까. 대통령까지도 뭐 그렇다. 우리는 아빠가 대통령이면 딸도 대통령 하는 나라 국민 아닌가.

그다음이 멋지다. 대통령이 되었는데도 28년 된 낡은 자동차를 끌며 월급 90%를 기부하고 노숙자에게 대통령궁을 내주고 자신의 작은 농장에서 생활한다. 고등학교 졸업장도 없지만 철학자이자 행동가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는 현자로 불린 사람이다.

한국과 우루과이는 직항이 없다. 북미나 유럽을 경유하면 대략 이틀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양반 만나러 가면서 어떻게 땅콩이나 씹겠는가. 도착해서도 문제다.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를 유난히 싫어하는 놈들은 늘 있기 마련인데다 명색이 대통령이었으니까 몽둥이 든 경호원이라도 한 명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허리 구부러진 문지기라도. 그러니까 그 양반 농장 앞에서 나는 대한민국 소설가인데 무히카를 만나러 비행기 타고 왔다고 말하면 들여보내주겠냐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 섬마을에서도 시인으로 종종 잘못 불리는데 말이다. 또 여기저기 숱한 매체들이 날마다 찾아올 텐데 개인에게 일부러 시간 내줄 것 같지도 않다.

그래서 궁리한 끝에 지구 반대편에서 혼자 배 몰고 찾아왔다고 한다면 만나줄 거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마치 사흘간 무릎 꿇고 있으면 제자로 받아들여주었던 무림의 고수처럼. 무릎 꿇는 것보다는 항해가 낫다. 그러니 까짓것 무조건 가보는 것이다. 나는 지구인인데 이 행성 어딘들 못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 그럼 준비해보자. 잘못하면 1년 넘게 걸릴지 모르니(그사이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조종실 밑 빈 공간에 간단한 부엌을 만든다. 쌀과 양념 넣을 칸도 만든다. 어차피 냉장고는 없으니 김치는 조금만. 잠깐, 흙을 좀 실어서 밭을 만들까? 아니 화분으로 하는 게 낫겠군. 갑판에는 천막으로 지붕을 씌우고 벽돌 한 장 정도 괴어 이부자리를 만든다. 휘발유는 비상용으로 네 말, 커다란 물통 하나에(계속 흔들리기 때문이다 배의 물은 썩지 않는다) 빗물받이용 우산 같은 것도 하나 준비해야겠군,

화장실은 필요 없다. 바다는 통째로 화장실이다. 항해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큰 변소를 통과하는 짓이기도 하다. GPS는 소형이나마 가지고 있으니 됐고 라디오는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 것을 찾아 고치고 음, 최소한 음악은 들어야 하니 휴대용 MP3도 하나. 책은 딱 세 권. 도중에 난파당할지 모르니 기록할 수 있는 유성 사인펜과 노트. 그리고 신호킷과 조명탄, 손톱깎이, 칫솔, 돋보기, 망원경, 위장약과 진통제, 이런저런 옷가지, 소주 몇 병… 젠장, 살림살이 그대로군. 이래서 혼자 갈 수밖에 없다.

다른 선주랑 태풍이 좀 걱정이다

당장 커튼을 찢어 돛부터 만들어야겠다. 가다가 망가지면 돛새치를 낚자. 등지느러미가 워낙 커서 돛으로 썼다고 해서 돛새치이지 않은가. 그러기 위해서는 300호 낚싯줄(거문슈퍼에서 파는 것 중에 가장 굵은 것이다)에 오징어 루어도 챙기자. 요즘은 트롤낚시도 유행하고 있으니 충분히 구할 수 있다. 그 외 낚시 채비는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

혹시 아는가. 100kg짜리 새치 한 마리 낚았는데 그 녀석 가던 방향이 마침 남미 쪽이라 내 배를 한 300리쯤 끌고 갈지. 가만, 반대로 가면 어떡하지… 이놈을 길들여서… 에이, 그것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기로 하고.

지금 이러고 있다. 그런데 동성호는 내 개인 배라고 부를 수는 없다. 사진작가 선배와 공동구매를 한데다 관리를 맡고 있는 후배랑 합치면 뭣만한 배에 선주만 자그마치 세 명이나 된다. 내가 몰고 가버리면 두 사람은 생짜로 돈 주고 생선을 사먹거나 풀만 먹고 살아야 한다. 더군다나 여름이 다가온다. 태풍이 계속 생기기 시작하는 때이다. 이게 좀 걱정이기는 하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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