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 서정분이는 물푸레 골짜기 중목재 밑에서 나물을 뜯어 먹고 삽니다. 봄이면 매일같이 나물을 뜯어 날라다 장날엔 풋나물로 팔고 무싯날은 데쳐 말려놓고 1년 내내, 나물 팔아 돈을 모읍니다.
이른 봄, 나물이 났나 보러 산에 올라갔다가 쭐쩍 미끄러지면서 발을 헛디뎌 다리를 삐었습니다. 큰일입니다. 소식을 들은 친정어머니가 침쟁이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3일을 묵으면서 침을 맞았는데도 별 차도가 없습니다. 침쟁이는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며 다리도 못 고치면서 변방 노인의 말 이야기만 늘어놓고 갔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다친 데 좋다는 전나무와 오가피, 엄나무를 푹 삶은 물에다 감주를 한 항아리 만들어놓고 줍니다. 처음 하루는 먹을 만했습니다. 먹고 조금 있으면 야야, 감주 한 사발 먹어라. 먹고 조금 있으면 야야, 감주 먹어라. 그놈의 감주 먹으라는 소리 맴썰나네! 정분이는 자기도 몰래 소리칩니다. 친정어머니는 화도 안 내시고 감주가 쉴까봐 항아리에서 퍼서 끓입니다. 한소끔만 끓인다는 것이 잊어버려 거의 조청에 가깝게 돼버렸습니다. 그렇게 짜증을 내더니 약이 다 망가졌다. 죽든지 살든지 네가 알아서 해라! 친정어머니는 엄청 화가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습니다.
정분이는 어떡하지 아이구 어떡해~ 웁니다. 메아리도 같이 통곡을 합니다. 사흘 밤을 뜬눈으로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양념장을 많이 만들어 산나물과 바꾸어보기로 했습니다. 신랑을 들들 볶아 양념장을 만듭니다.
막장에다 친정어머니가 실수로 만든 조청도 넣고 들깻가루도 넣고 남편보고 장날 사과와 배도 사오라고 하여 몇 개 갈아서 넣습니다. 산에서 캐온 더덕을 껍질 까서 잘게 썰고 인삼도 한 뿌리 썰어서 곰팡이 나지 않게 풍년 소주 한 됫병에 담가 맷돌에 곱게 갈아서 넣습니다. 더덕이 보이면 사람들이 따라서 만들어 먹을까봐 보이지 않게 갈아 넣었습니다. 큰 독으로 하나 만들어 샘물 곁에 담가놓고 ‘요술양념’ 한 사발하고 나물 한 다래끼하고 바꿉니다, 라고 크게 써붙였습니다.
한창 나물 때가 되었습니다. 여보, 일찌감치 나물 한 다래끼만 뜯어다줘유. 다리가 부러져가지고도 그놈의 나물 타령이냐, 그놈의 나물 몸썰머리가 난다. 그러지 말구 뜯어다줘유, 내가 요술양념 장사가 잘되어 돈 벌면 반 뚝 잘라줄게유. 그 약속 안 지키기만 해봐라, 가만 안 둔다. 꼭 지킬게유. 통사정을 하여 남편은 나물을 뜯어옵니다.
저녁때 산에서 나물꾼들이 나물 보자기를 이고 지고 내려옵니다. 서정분이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사람들 보는 데서 나물 함지박에 요술양념 한 쪽박이 떠넣고 들기름 넣고 조물조물 무쳐 잡숴보시라고 함지박에 싸리나무 젓가락을 죽 꽂아 돌립니다. 아주 묘하게 정말 희한하게 맛이 있습니다. 무엇을 넣어서 이렇게 맛있냐고 어떻게 만들었냐고 사람들이 묻습니다. 서정분이는 웃으면서 그저 이것저것 많이 넣었다고, 인삼 손가락 같은 거 한 뿌리 넣어놓고는 건강에 좋은 인삼을 넣었다고 내세웁니다.
사람들은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나물도 많이 뜯었겠다, 다들 맛있는 나물 무침을 먹으려고 요술양념장으로 바꾸어갔습니다. 산에 가서 애써서 나물을 뜯어온 것보다 나물이 많이 쌓였습니다. 서정분이는 절룩거리는 다리로 신이 나서 밤늦게까지 남편과 나물을 삶아 널어 말립니다.
처음에는 막장 양념만 만들어 팔았는데 고추장 양념도 만듭니다. 고추장에는 사과, 배 갈아 넣고 고운 고춧가루 넣고 더덕과 인삼 한 뿌리 갈아 넣고, 참깨보생이 넣고 설탕 넣고 시어머니가 물려주신 막걸리 식초를 넣습니다. 고추장 요술양념은 한 술잔에 나물 한 다래끼 바꾼다고 써붙였습니다.
며칠이 지나니 애써 나물을 무쳐주지 않아도 소문이 나서 다들 요술양념장과 나물을 바꾸어 갑니다. 나물이 넘쳐납니다. 널어 말릴 데가 없어 밤새 엮어서 나물 타래미를 만들어 데쳐 나무 그늘에 매달아 말립니다. 정분이는 말을 타고 달리는 꿈을 자주 꿉니다. 봄이 지나가고 서정분이는 다리가 다 나았습니다. 장날마다 묵나물을 삶아 읍내 내다 팔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 행복한 밤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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