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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그려보아요, 끈질기게 바라보며

‘동물을 사랑하여 관찰하고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전 과정을 포괄하는 신기한 드로잉 책 <지금 시작하는 동물 드로잉>
등록 2015-05-01 21:31 수정 2020-05-03 04:28

1. 초급자를 위한 조언: 생각하며 관찰해보세요.

2. 중급자 이상을 위한 조언: 생각 없이 관찰해보세요.

라는 책을 낸 그림 그리는 오은정씨가 (안그라픽스 펴냄)에서 주는 교훈이다. 초보자는 겉으로 보이는 형상에만 집중하는데 구조나 본질을 알면 그만큼 좋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중급자가 한 단계 뛰어넘는 디테일을 표현하려면 아무런 생각 없이 순수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두 가지에는 ‘관찰하다’가 공통된다. 좋은 관찰 방법이 있다. 사랑하는 것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이다. 그 대상으로 오은정씨는 동물을 추천한다.

단순히 드로잉 실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책은 ‘동물을 사랑하여 관찰하고 그림 그리는 일’이라는 전 과정을 포괄한다. ‘여름에 그린’은 동물과 함께한 추억, ‘가을에 그린’은 동물과 즐겁게 지내기 위한 그림 그리기, ‘겨울에 그린’은 동물복지의 어두운 이면, ‘봄에 그린’은 동물과의 공존을 다루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한다. 저자가 전해주는 사연으로 인해 그림을 보면 마음이 애틋해진다. 저자가 함께 사는 고양이들에 얽힌 사연을 듣고 고양이 그림을 보라. 한참 물끄러미 바라봐질 것이다.

그가 기르는 고양이 두 마리는 동물병원에서 데려왔다. 한 마리는 비 오는 날 앞발이 잘린 채 구정물로 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것을 누군가 구조해 동물병원에 맡기고 간 것이다. 동물병원에 간 친구가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그 흰 고양이는 앞발을 창살 밖으로 지치지 않고 뻗으며 울었다. 목이 다 쉬어 있었다. 정식 입양을 위해 병원으로 찾아간 날 그는 또 다른 고양이를 만난다. 구석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고양이였다. 미술학원에서 쭈그리고 앉아 나가지 않았다 한다. 그 고양이도 들이기로 한다.

“오랜 시간을 들여 앉아 있는 반려견의 등 모양을 뚫어져라 쳐다보면 얼핏 세 번의 굴곡이 있는 것 같아도 더 오래 보면 훨씬 많은 굴곡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저자는 사진을 보고 그리는 것보다 이런 눈을 통한 관찰을 우위로 치는데 그 이유는 눈으로 보는 데는 지난 경험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런 태도를 로먼 크르즈나릭이 좀더 ‘자기계발적’으로 뒷받침한다. “공감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창조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 다시 인용이다. 피터 싱어는 말했다. “동물을 잘 관찰해보면 생김새가 사람과 다를 뿐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비영리 동물보호단체에 가입해 유기동물의 안락사 대기 기간을 연장하기 위해 돈을 보태고, 유기된 고양이를 임시보호하는 일을 한다. 동물을 보호하는 작은 실천으로 이런 일을 든다. 동물학대 비판 댓글에 ‘좋아요’를 누른다, 여행을 다닐 때 사료 한 봉지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겨울에 물이 얼었을 때 길고양이를 위해 물 한 사발을 놓아준다. 무엇보다 ‘사랑의 눈길’이 먼저다. 그렇게 일단 그려라.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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