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암탉들은 서로 알둥주리를 차지하고 내려오지 않습니다. 싱싱한 알을 20개 정도 알둥주리에 넣어주면 잠깐 먹이를 먹으러 내려오고 알을 품습니다. 21일이 되면 예쁜 아기 병아리가 태어납니다. 병아리 털이 마를 때를 기다려 살며시 빼어다가 방안 광주리에 모아놓고, 첫 먹이로 달걀노른자를 먹여서 일주일쯤 키워 닭장으로 보냅니다. 암탉이 키우게 두면 병아리한테 먹이를 주느라 흙을 파헤쳐 작패가 심해서입니다.
우리 집은 1년에 100마리 정도만 키웁니다. 나머지는 팔든가 병아리 부러워하는 집에 주기도 합니다. 배냇병아리 20마리를 주면 10마리를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범석이네 닭은 병아리를 까지 않아, 우리 배냇병아리 40마리를 가져갔는데 며칠 만에 족제비가 나타나 다 물어가고 7마리 남았답니다. 그중 1마리는 배를 뜯겨 먹힌 것을 허리를 동여매서 데려왔는데 먹이를 먹으면 밥통에서 밥이 줄줄 샙니다. 상처에 옥도정기를 발라주고 참깨도 먹이고 들기름도 먹였더니 크면서 상처는 나았지만 그 자리에 털이 나지 않아 배가 뻔질뻔질합니다. 그런 놈이 두 다리가 어청하고 덩치도 크고 ‘꼬끼오오오’ 목소리도 우렁차서 대장 노릇을 합니다.
복날 잡아먹고, 용돈이 아쉬울 때 팔아 쓰고, 손님 왔을 때 잡아먹다보면 100마리 되던 닭들이 가을이 되고 알을 낳을 때쯤 50마리 정도 남습니다. 우리에 가두어 키우면서 알을 잘 낳으라고 하루에 한두 번쯤은 닭장 문을 열어 운동을 시킵니다.
워낙 사람 손끝에서 자라서인지 커도 사람만 얼씬하면 졸졸 따라다닙니다. 집 안에 큰소리가 나면 닭 때문입니다. 방문을 콕콕콕 주둥이로 찍어서 누가 왔나 내다보려는데, 문종이를 뚫고 닭 머리가 불쑥 들어와 기절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가슴도 뻔질뻔질 수탉 놈이 마루에 올라와 똥을 ‘찍’ 싸고 ‘꼬꼬꼬’ 하면서 암탉들을 불러 놀다가 아버지한테 들켰습니다. 이놈의 달구새끼들 넓은 들판 놔두고 왜 꼭 집 안을 싸고도나. 대빗자루를 들고 다 때려잡아버린다고 온 집을 싸고 따라가면서 후달구면(몰아세우면) 닭들이 ‘꼭꼬꼬꼬꼭 꼬꼬댁꼬꼬댁’ 뛰다가 ‘푸드득푸드득’ 지붕 위로 날아오릅니다. 맞을 듯이 맞을 듯이 하면서도 한 마리도 맞아 죽지는 않습니다. 무슨 짐승새끼를 그렇게 버르장머리 없이 키우나. 가만 놔두면 한 밥상에서 밥도 먹게 생겼다고, 달구새끼 좀 키우지 말라고 야단이 났습니다.
가을이 되면 꼭꼬댁 꼭꼭 닭들이 여기저기서 알 낳는 소리가 들립니다. 닭들은 여기저기 매달아놓은 알둥주리에 알을 낳지만, 어떤 놈들은 무슨 맘인지 짚더미 속이나 솔가비 더미 속이나 강냉이 짚가리 속에 숨어다니면서 알을 낳습니다. 열심히 찾지만 ‘꼬꼬댁꼬꼬댁’ 소리는 나는데 어디다 낳는지 못 찾을 때도 있습니다.
할머니는 알아도 모른 체했습니다. 어느 장날 어머니가 달걀 꾸러미를 만들어 팔러 가자 할머니는 몰래 낳은 달걀을 한 다래끼 주워와 삶아 꽃처럼 오려 채반에 문종이 깔고 예쁘게 담아 아덜아 어미 못 볼 때 얼른 먹어라, 원없이 실컷 먹어라, 하십니다. 체하지 않게 동치미 국물을 마시면서 먹으라고 깨소금과 같이 주었습니다. 엄청 맛있었습니다. 닭똥 냄새가 나도록 먹고 있는데 어머니가 너무 빨리 오셔서 들켜버렸습니다. 어머니 목청이 높아졌습니다. 누가 아덜 먹이고 싶지 않아서 그래유, 돈이 한 푼이라도 아쉬우니 그러지요. 어머니가 아무리 뭐라 해도 할머니는 딱 한마디, 크는 아덜이 먹어야지, 하시고는 일하러 가버리십니다.
오늘도 닭들은 소먹이 속에 들어가 파뒤집고 놀다가 아버지한테 들켰습니다. 그놈의 닭새끼들 키우지 말라니 말도 안 들어먹는다고 어머니가 파뒤집은 것처럼 혼이 납니다. 어머니가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닭을 안 키우면 안 되냐고, 맨날 아버지한테 싸움만 나는 일 안 하면 안 되냐고 해도, 어머니는 가족은 그런 게 아니라고 아버지가 허약하여 시름시름 앓을 적에 닭 뱃속에 인삼 넣고 찹쌀 넣고 밤·대추 넣고 3마리 푹 고아 먹고 건강해졌다고, 아버지한테 혼나면서도 닭을 열심히 키우고 알도 열심히 팔아 돈도 모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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