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메시스 펴냄)의 수상 이력과 쏟아지는 찬사를 나열하는 것만으로 지면을 가득 메우기 충분하지만, 이 특별한 작품을 칭송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다. 마블코믹스와 DC코믹스 등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해온 데이비드 마추켈리는 2009년 ‘한 인간의 현실 인식 변화’라는 심오한 주제로 344쪽에 달하는 작품을 발표했고, 그의 묵직한 한 방은 만화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주인공 아스테리오스 폴립은 많은 공모전에서 입상한 건축학과 교수로 한때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마음 한구석이 고장 난 사람이다. 50살 생일에 집이 불타버리자 그는 지갑을 털어 먼 곳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도시 출신에 지적인 환경에서만 살아온 아스테리오스는 예전에 어울렸던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시골 사람들 틈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일하며 자신의 인생, 특히 그에게 가장 가깝고 중요한 존재였던 전 부인 하나와의 결혼 생활을 돌아본다.
아스테리오스는 쌍둥이였다. 그러나 그의 형제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 결핍을 채우려는 아스테리오스의 욕망이 곳곳에서 드러나지만, 역설적으로 자신만의 틀에 갇혀 타인과의 진정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두 요소의 대립으로 인식했으며,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쳤다. 학생들에게는 부정적인 지적만 퍼붓고, 다른 분야 전문가조차 폄하하고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내려 했다. 심지어 조각가인 하나의 작품도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마디로 그는 정신이 마비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었다. 그랬던 그가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을 통해 점차 상대의 의견을 판단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익힌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에게 독단이라는 폭력을 행사했음을 깨닫고, 고물 자동차를 고쳐 그녀를 찾아가는 여정에 나선다.
작품 전반에 걸쳐 마추켈리는 등장인물마다 고유의 글씨체와 말풍선으로 뉘앙스를 전달한다. 또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아스테리오스는 푸른 기하학적 도형으로, 부드러운 성격의 하나는 분홍색의 소묘로 나타내기도 한다. 색깔과 형태가 겹쳐지고 변화하는 양상을 통해 두 사람이 싸우거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을 독특하게 시각화한다. 만화의 표현 방식을 극도로 활용한 이런 다층적 장치들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이 작품에서는 현실을 개개인의 자아의 연장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는 수십억 개의 우주가 모인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남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할 수 있다. 나와 타인의 간격은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본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닿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그 세계에 융화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소통이자 사랑이며 성장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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