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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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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남 컬

등록 2015-03-20 17:21 수정 2020-05-03 04:27

컬은 몇 개월 전 또 실종됐다. 설거지를 하다가 고무장갑을 사러 나간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아내가 그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3개월 뒤였다. 아내는 늘 그래왔듯이 한 달 정도 그를 집에서 기다리다가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컬은 중국 하얼빈 헤이룽창대학에서 어학연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컬의 아내는 설거지를 하던 중 담담하게 그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래도 남편분의 생존을 확인했으니 다행입니다.” 컬의 이 무규칙 이종 실종 습관은 꽤 긴 역사를 갖는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그의 모친의 증언에 의하면 초등학교 시절부터였다고 한다. 롤러스케이트를 사주었더니 바퀴를 굴려 나간 뒤 이틀 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무려 200km 바깥 교외의 국도 농가에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잠든 채 발견됐다. 컬의 아버지는 잠들어 있는 어린 컬의 롤러스케이트를 벗기지 않고 집까지 데려와 이불 속에 눕혔다. “롤러스케이트 벗기지 말고 놔둬. 집 나간 벌로 일주일간 롤러스케이트를 신은 채 학교에 보내고 재우도록 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컬은 가끔 그 작은 롤러스케이트를 가방에 챙겨서 사라지곤 했다. 컬은 이후로도 수십 번 실종신고 대상이 되었다. 수학여행 때도 혼자 실종돼 다른 도시에서 발견됐고, 입시를 얼마 앞두고서는 어느 절의 마루 밑에서 발견됐다. 아무리 물어도 컬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가족이 보기에 컬의 실종은 습관성 어깨 탈구처럼 보였다. 다만 그의 누이동생의 증언은 주목할 만하다. “오빠는 집에서도 길을 잃었어요. 고등학교 때 오빠는 집에 있으면서도 집에 가고 싶다고 내게 중얼거린 적도 있어요.”

그의 아내를 처음 만난 것도 실종사건 전후와 관련 있다. 그는 전방에서 무전병으로 복역했다. 하루 종일 병기창에 앉아 고장난 무전기를 수리했다. 무전병은 가족이 그의 실종 경력에 대해 열심히 청원해서 얻은 보직이었다. 사령관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내무대의 병사들에게 그를 특별히 감시하라고 지시했고 그를 종일 병기 창고에 가두었다가 적당한 시기가 차면 내보내자고 했다. 모두가 노력해야 한 병사의 이탈을 막는다고 했다. 하지만 컬은 무전기를 메고 탈영했다. 컬이 발견된 건 부대를 한참 벗어난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였다. 그는 스물두 살 여직원에게 바닥에 무전기를 분해해놓고 사용법을 설명해주고 있었다. 헌병들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그가 탈영병이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았다. 이불에 둘러싸여 몇 차례 군화에 짓밟힌 뒤 컬은 트럭에 태워졌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는 컬을 찾아 면회를 갔고 이후 둘은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 것 같다. “우리 사이엔 둘만이 나누는 이상한 암호가 있었나봐요.” 컬은 전역 뒤 아내를 만나는 동안은 실종되지 않았다. 아내의 필사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결혼 전까지 컬은 그녀와 함께 톨게이트에서 영수원으로 일했다. 늘 맞은쪽에 아내가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딱히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 가지 메아리가 있긴 하다. 컬이 젖을 막 떼고 말을 할 무렵부터, 집 안엔 빚 독촉을 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컬의 어머니는 모유 수유를 하다가 컬이 잠들면 컬을 바닥에 내려놓고 울면서 몇 차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고, 컬의 아버지는 놀이공원에서 컬에게 풍선을 손에 쥐어준 뒤 몇 차례 사라졌다. 아버지는 저녁이 되어서야 놀이공원으로 돌아와서 눈물을 머금고 있는 컬의 손을 다시 잡고 집으로 왔다. 컬은 아버지가 자신을 잃어버릴까봐 그 자리에서 실종되지 않기 위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컬의 부모는 이제 그 옛 시절이 캄캄하다. 컬이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한 것은 첫 번째가 무전기였고, 톨게이트 직원이던 아내가 유일했다.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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