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둘은 구덩이 파고 여덟은 등 두드리는 건?

꼬투리잡다 돌서들 사이 빠진 꽁을 ‘들고 온’ 아버지, 무를 긁고 메밀가루 맨두피를 만들어 모처럼 먹게 되었네
등록 2014-12-27 14:41 수정 2020-05-03 04:27

건넛마을로 마실 다녀오시던 아버지는 아주 잘생긴 장꽁(꿩) 한 마리를 산 채로 두 다리를 포개어 거꾸로 들고 오셨습니다. 날아다니는 꽁은 본 적은 있지만 직접 곁에서 화려하게 생긴 수꽁을 보는 것은 처음입니다. 가족들이 다 신기해하며 어떻게 잡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김송은 제공

김송은 제공

아버지가 강을 막 건너려고 지름길로 오느라고 돌서들(바위라고는 할 수 없고 돌이라고 부르기는 큰 아름드리 돌들이 질서 없이 쌓여 있는 곳)로 내려오는데 장꽁 두 마리가 까투리 한 마리를 놓고 싸우고 있었답니다. 엇청한 다리로 돌서들 위를 달려가 걷어차기도 하고 모가지를 서로 물고 뜯기도 하고 서로 목을 엇대고 한참을 서 있기도 하며 끝날 것 같지 않게 맹렬하게 싸우고 있더랍니다. 저렇게 화려하고 잘생긴 놈들도 싸움을 하다니 인물값도 못한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 구경을 하고 있었는데, 이길 것 같던 놈이 바위 위에서 발이 미끄러지며 돌서들 속으로 빠져버렸습니다. 큰 돌 틈으로 모가지를 내밀고 멀거니 눈만 멀뚱거리며 나오지 못하는 동안 다른 놈은 꽁꽁거리며 아주 우아하게 화려한 날개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날아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재수 좋은 장꽁을 까투리도 따라 ‘꼬드득득 까드득득’ 하며 한참을 날아 올라가더니 마른 풀 사이에 내려앉아 기어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뛰고 걷기도 하며 아주 정답게 둘이 놀더랍니다. 아버지는 큰 돌 틈 사이에서 장꽁을 뽑아올려 들고 오셨습니다.

모처럼 꽁맨두(꿩만두)를 먹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물을 끓이고 아버지는 꽁을 잡아 꽁지 쪽 긴 깃털은 누에를 키울 때 쓰려고 여러 개 뽑아 묶어 매달아놓습니다. 애기누에는 너무 작아서 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서 꿩 깃털로 쓸어 옮기기 때문입니다. 봄이면 산에 돌아다니면서 꽁털을 주워다 썼는데 이웃에게도 나눠주고 쓸 수 있게 되었다고 기뻐하십니다.

잡은 꽁은 끓는 물에 튀해(튀겨) 털을 뽑고 살을 발라 잘게 다집니다. 내장도 버리지 않고 가는 싸릿가지로 끝에서부터 씌워 뒤집어 소금에 바락바락 주물러 깨끗이 씻어놓습니다. 어머니는 뼈와 내장을 삶아 국물을 장만합니다.

오빠들은 무 구덩이에서 무를 꺼내다 숟가락으로 아주 얇게 긁어줍니다. 맨두에는 생무를 긁어 넣어주지 않으면 시원한 맛이 안 납니다. 무를 긁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수저로 위에서부터 고루 넓게 반경을 잡아서 긁어야지 처음부터 좁게 긁으면 긁기도 불편하고 껍질만 많이 남고, 조각이 나게 뜯어지면 잘 익지 않고 먹을 때 우들거려 맛이 없습니다. 얇게 긁은 무는 꼭 짜고 무국물은 만둣국에 부으면 국이 시원한 맛을 내는 데 한몫합니다. 썰어놓은 김치를 삼베 보자기로 짜고 두부도 짭니다. 다진 꽁고기를 넣고, 모처럼 하는 꽁맨두라 참깨보생이(깨소금)도 아끼지 않고 듬뿍 넣고 들기름도 듬뿍 넣고 만두소를 만듭니다. 온 가족이 나서지 않으면 짧은 해에 만둣국 먹기가 어려워서 온 식구가 다 나섰습니다.

할머니는 메밀가루 반죽을 하여 맨두피를 만듭니다. 반죽을 조금 떼어 손바닥에 올려놓고 두 손을 돌려 동그랗게 만들어 분가루(덧가루)에 굴린 다음 엄지손가락은 위로 올리고 나머지 여덟 손가락은 밑에서 등을 두드리듯이 조물조물 돌리면 옴폭한 맨두피가 만들어집니다. 맨두피에 소를 가득히 넣고 왼쪽 손에 쥐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 두 손가락으로 끝 부분을 꼭꼭 눌러 붙이면서 마지막에 조금 덜 붙여 바람구멍을 남깁니다. 바람구멍을 남겨야 국물이 들어가 고루 익고 먹을 때도 국물이 배어나오는 것이 아주 맛이 있습니다.

팔모 소반에 처음에는 한입에 쏙 들어가게 아주 예쁘게 빚은 맨두를 뉘어서 한 바퀴 돌려놓고 다음부터는 돌려 세웁니다. 메밀맨두는 분가루만 묻히면 바싹 붙여 세워도 서로 붙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맨두를 빚으면서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두 사람은 구덩이 파고 여덟 사람은 등 두드리는 게 뭐게? 우리는 몰랐는데 할머니는 맨두 빚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맨두피를 만드는 할머니 손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이해가 갔습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얼마나 손이 빠른지 기계처럼 맨두를 빚어 팔모 소반 가생이부터 돌려 세워 계속계속 안으로 안으로 뱅글뱅글 돌려 세워 소반이 가득 찼습니다. 색깔이 조금 까무잡잡하고 진한 회색빛이 나는 것이 삶아 먹어치우기엔 아까울 정도로 예쁜 모양입니다.

꽁 대신 닭이라고 닭을 키우니 가끔 닭맨두를 해먹고 설에도 닭맨두를 해먹었는데 오늘은 우연찮게 꽁맨두를 먹게 되었습니다. 꽁맨두는 조금 시구운(신맛)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닭맨두보다는 별난 맛에 국물도 남기지 않고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