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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밑동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

배추 절이고 김장하는 입동 전,
너무 떨어서 추위가 놓이지 않을 때 죽을 끓여 뜨끈뜨끈하게 한 그릇씩 먹었네
등록 2014-11-29 15:43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겨레 박미향 기자

입동 전에 무를 뽑아 김장할 것은 밭에 고랑을 대강 파서 슬쩍 묻어놓고 거적으로 덮어놓습니다. 겨울 날 것은 구덩이를 깊고 넓게 파고 무를 다듬어 차곡차곡 세웁니다. 구덩이 한 자 정도까지 띄워 무를 채우고 구덩이 주위로 큰 나무 토막을 놓고 중간에 긴 막대기를 건너지르고 튼튼한 막대기를 중심으로 하여 얇은 막대기를 촘촘히 걸치면 지붕처럼 비탈지게 됩니다. 입구는 짚단을 크게 만들어 막아놓고 위에 거적을 덮습니다. 파놓은 흙으로 지붕 위를 수북이 묻으면 비가 들어가지 않고, 눈이 와도 얼지 않아 안전하게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겨울 동안 그 안에서 뿌리도 내리고 싹도 나면서 살아 있는 무를 봄이 올 때까지 필요한 양만큼씩 꺼내다 먹습니다.

다듬은 무잎은 저녁에 마당에 호야불을 매달아놓고 가족이 화롯불에 손을 쬐면서 시래기를 엮어 답니다. 떡잎은 떼어내고 간식거리로 잔챙이 무를 드문드문 섞어 대강 간추려 아버지 곁에 갖다놓으면 아버지는 짚을 세 가닥으로 만들어 무잎 두세 꼭지씩 엮습니다. 짚을 덧대며 자꾸자꾸 엮어 묵직해지면 끝에는 새끼줄을 비벼 꼬아 고리를 지어 미리 만들어놓은 장대에 겁니다. 위에는 용구새(초가지붕 맨 위에 덮는 용 모양으로 꼰 짚)를 덮어 비가 와도 젖지 않고 파랗게 잘 마릅니다.

입동 열흘 전에 김장을 해도 무척 추웠습니다. 김장 첫날은 밭에서 배추를 뽑아 손질해 절이는 일을 합니다. 큰 가마솥에 물을 많이 붓고 밤나무 가랑잎으로 후르륵 불을 때 약간 물이 미지근해지면 소금을 풀어 배추를 절입니다. 절이다 물이 식으면 또 가랑잎으로 후르륵 불을 땝니다. 물이 너무 차면 소금이 배로 들고 배추가 잘 절여지지 않아서입니다. 빈 항아리와 집 안에 있는 그릇을 있는 대로 마당에 쭉 꺼내다놓고 할머니는 배추를 절이고, 어머니는 그걸 날라다 항아리에 담으며 배추 머리 부분에 소금을 적당히 올립니다. 한 켜 담은 위로 잎 부분이 머리에 닿도록 엇놓으며 배추를 담습니다. 아침나절에 절인 배추가 저녁나절에 푹 줄어 내려가면 빈 그릇을 옆에 놓고 위에서부터 옮겨담으며 너무 안 죽은 것은 덧소금을 조금씩 더 뿌려 보살펴놓습니다.

다음날 절인 배추를 아버지가 지개로 져 날라 강물에서 맨손으로 할머니와 어머니가 종일 씻습니다. 옆에다 황닥불을 해놓고 가끔씩 손을 쬐고 물을 데워놓고 손을 적시며 배추를 하루 종일 씻어 뺑대발을 펴놓고 건져 물을 빼 집으로 다시 져 날라 항아리에 켜켜로 담으며 덧소금을 뿌려놓았다 다음날 속을 장만해 김장을 합니다.

김장은 반양식이라고 겨울 내내 만두도 해먹고 하느라 아주 많이 합니다. 고무장갑도 없던 시절 그 많은 양을 하느라 하루 종일 너무 떨어서 저녁에는 배추밑동으로 죽을 끓여 뜨끈뜨끈하게 한 그릇씩 먹었습니다. 옛날 조선배추는 밑뿌리의 머리 부분 굵기가 4~5cm 정도 되는 것이 머리는 크고 꼬리 쪽이 갑자기 가늘어 깎으면 팽이처럼 생긴 것이, 매운맛 없이 무보다 달고 맛있었습니다. 배추밑동을 잘 다듬어 가마솥 맨 밑에 통째로 집어넣고 죽이 될 만큼 물을 붓고 막장을 풀고 생배추를 씻어 손으로 뚝뚝 뜯어 물 위에 올라오도록 많이 넣고 그 위에 쌀을 씻어 올려 안칩니다. 끓기 시작하면 불을 약하게 때 은근히 끓이면 쌀이 배추 위에서 익습니다. 이때 쌀이 배추 밑으로 가라앉으면 쌀은 너무 풀어지고 배추와 배추밑동이 익지 않기 때문에 배추가 완전히 무른 다음에 섞어줍니다.

배추밑동죽은 입에 떠넣으면 구수하기도 하고 약간 단맛도 나는 듯도 한 것이 입에 짝 붙어 맛있다 소리가 절로 납니다. 방 안이 훈훈해지게 화롯불을 들여놓고 뜨거운 죽을 먹습니다. 식구들은 배추밑동죽에 든 배추밑동이 맛있다, 엄청 맛있다며 먹는데 동생은 맛이 없다며 골라내 상 위에서 팽이를 돌립니다. 아버지가 보시고 나도 젊었을 적에는 잣죽도 먹기 싫은 적이 있었다고,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시면서 배추밑동을 따로 골라 젓가락에 꿰어 양념간장을 찍어 드십니다. 그걸 보고 온 식구들이 다 같이 젓가락에 꿰어 들고 간장을 찍어 먹으니 이렇게 별난 맛인 줄 몰랐다고 다들 좋아합니다. 아예 한 양푼 골라 건져놓고 간장에 찍어 먹습니다.

툴툴거리던 동생도 먹어보더니 맛있다고 얼른 하나 더 먹습니다. 사돈 참외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더니 배추밑동 먹는 방법도 여러 가지라고 웃고 먹고 하다보니 추위가 놓였습니다. 내일을 위하여 달밤에 아버지는 김장독 묻을 구덩이를 파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무를 씻어 채를 썹니다.

전순예 1945년생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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