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대한민국에서는 한글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냉전, 즉 저 밑바닥에서 적이 스멀스멀 기어나오며 싸우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열띤 전투가 벌어지는 열전 중이다. 한글전쟁은 그 본질이 문자 전쟁이요, 문화 전쟁이다.”
한글날을 맞아 출간된 (김흥식 지음·서해문집 펴냄)은 한자에서 영어까지 외세어와 싸우고 내부의 사대주의자와 한판 승부를 벌이는 우리말과 우리글의 5천 년 쟁투사를 보여준다. 한글전쟁이 일어나기 전 상황부터 전쟁이 발발한 까닭, 수백 년에 걸친 전쟁이 오늘날에도 열전으로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을 서술한다.
이 책에서 써내려간 한글은 피투성이 역사 속에서 성장했다. 한글 반대 상소문을 올린 최만리의 선전포고, 한글로 된 익명의 투서를 계기로 한글 사용금지령을 내린 연산군의 쿠데타, 일제 식민지 시대 한글 말살 정책의 모진 탄압, 이승만 정권 시기 구한말 성경맞춤법으로 돌아가자고 했던 한글 간소화 파동 등이 일어났다.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한글 앞에 불어닥친 시련과 탄압은 계속됐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도 한글전쟁 중이다. 한글 전용 대 한자 혼용 전쟁, 그리고 외국어 대 우리말 전쟁이 그것. 특히 저자는 영어의 등장에 대해 “한글나라에 떨어진 핵폭탄”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위협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하다. 외국에서 들어온 컴퓨터라고 하는 기계를 표현하는 데 아무런 고민 없이 우리는 그 나라에서 붙인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때 한글은 영어 ‘computer’를 우리가 읽을 수 있도록 표기한 발음기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한글 사용자의 무심함 속에서 사라지는 어휘들. 일테면 부정어와 쓰여야 하는 ‘너무’라는 단어만 남고 긍정어로 쓰이는 ‘상당히’ ‘꽤’ ‘아주’ 등의 단어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너무’만 ‘너무’ 쓰기 때문이다. 어휘의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조리사→셰프, 미용사→헤어디자이너, 치유→힐링’ 등 우리말 명칭이 외국어로 변한 경우도 많다.
“하와이어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200년 이상이 걸렸다. 반면에 대한민국에 영어가 본격적으로 흘러들어온 시기를 멀리는 1945년 이후, 가까이는 본격적인 서구적 산업화가 시작된 1970년대로 상정한다면 이제 고작 50~70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향후 100년 이상 영어의 침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후에도 우리말이 남아 있을까?” 결국 저자는 ‘100년, 500년, 1천 년이 지난 뒤에도 한글이 이 땅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부호를 던지며 결말을 맺는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겨놨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초등학교1학년,한글 안배운다 [21의생각]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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