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극한직업이다. ‘사야’하는 남편. ‘사야’는 사회인 야구의 줄임말이다. 주말인 토요일 아침 전국 사회인 야구 구장은 아침 6시께부터 야구하겠다는 이들로 북적인다. 그 시간에 야구장에 도착하려면 사야인(사회인 야구 하는 사람)들은 새벽 4~5시에 만나 카풀을 해 야구장이 있는 경기도 광주, 남양주, 포천, 일산, 파주 등 교외로 이동한다.
2년간 전적 131전21승1무109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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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경기 일정과 카풀 시간을 알리는 전화나 문자를 받은 뒤 남편들이 아내에게 일정을 알리면 그때부터 아내의 말은 짧고 거칠고 예민해진다. “냉수인 듯 온수인 듯 냉수 같은 물”을 즉각 대령해야 하고, 한밤중에 신선하면서도 적당히 숙성된 양질의 회(아내가 원하는 음식)를 공급해야 하며, 아이들도 돌봐야 한다. 빨래 개기, 설거지 등 각종 집안일도 물론 극한직업인의 몫이다.
사야하는 남편 혹은 남친을 둔 아내나 여친은 인내를 쌓아야 한다. “처음에 야구한다기에 토요일에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것보단 좋겠지 싶어 하라고 했죠. 그러더니 언젠가부터 토요일은 하루 종일 밖에 나가 있고 일요일도 슬금슬금 나가기 시작하더니 이젠 일주일 내내 야구, 야구, 야구! 젠장 그럼 건강해지기라도 하든가! 야구만 갔다 오면 무릎이 까졌다, 삭신이 쑤신다면서 드러눕고 매일 슬금슬금 오는 야구용품 택배는 모른 척해주기도 지쳤어. 이놈의 야구는 왜 하는 거야? 나 괴롭히려고 하냐?” 사야 중독 2년에 접어드는 남편을 둔 아내가 랩하듯 쏟아내는 불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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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에서 연재하는 스포츠 웹툰 는 이제 4개월 된 갓난아기를 둔 부부가 사회인 야구를 둘러싸고 겪는 이야기다. 정확히는 남편이 ‘사야’를 하고 아내는 뒤치다꺼리를 한다. 유영태(33) 작가는 창단한 지 2년 된 사회인 야구팀 ‘사야이’(‘사회인 야구 이야기’의 줄임말)의 감독이다. 연습 경기를 합쳐 2년간 전적은 131전21승1무109패다. “지면 어떤 심경인가”라는 질문에 유 작가는 “이기는 적이 별로 없어서”라는 말을 입에서 꺼냈다 다시 주워삼킨 뒤, “승패에 연연하지 않아요. 지더라도 어떻게 지느냐, 지는 과정이 중요하죠”라고 말했다.
는 유영태 작가의 ‘사야’ 웹툰 세 번째 시즌이다. 최근 책으로도 묶여 나왔다. 시작은 2012년 3월 네이트에서 연재한 였다. 애초 ‘사회인 야구 이야기’ 만화에 팀 ‘사야이’는 없었다. 는 아내와 함께 캐치볼하면서, 사촌동생이 하는 사회인 야구를 먼발치에서 관찰하며 그 이야기를 웹툰에 담았다. 그러다 욕심이 생겼다. “팀을 만들어볼까.” 유영태 작가는 운동신경 0, 운동 욕심 0, 야구 지식 0으로 야구에 관한 한 가진 게 없는 존재다. 야구 웹툰 전에는 축구 만화를 그렸다. “축구도 하는 건 싫어했어요. 보는 걸 좋아했죠. 야구는 처음엔 규칙도 잘 몰랐습니다. 사회인 야구 웹툰을 그리면서 흥미가 생겼어요. 그런데 저처럼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들어갈 만한 사회인 야구팀을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야구를 하고 싶지만 운동신경도 없고, 할 줄도 모르는 생초보들이 모여 팀을 만들어보자고 웹툰에 모집공고를 냈어요. 그때 모인 분들과 함께 만든 팀이 ‘사야이’입니다.” 물론 그중에는 어디선가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만큼 잘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생초보다. 이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팀이 ‘사야이’다. 그리고 생초보 중에 생초보 유영태 작가는 얼떨결에 감독을 맡게 됐다.
아기 태명은 ‘유영태 안타’를 줄인 ‘유타’작가는 사야 중독이다. 아내가 출산할 때 자연분만이 힘들어 수술 날짜를 잡아야 했다. 의사가 토요일을 권하자 유 작가는 “하루 당겨 금요일에 하는 것도 가능할까요?”라고 물었다. 금요일에 일찍 아내가 아기를 낳으면 토요일에 리그 경기를 뛸 수 있겠다는 심산이었다. 유 작가는 웹툰에 고백했다. “이때 내가 진짜로 사회인 야구에 미쳤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기의 태명은 ‘유영태 안타’를 줄여 유타라고 지었다. 수술하러 들어간 아내를 기다리면서 초조하게 병실 앞을 왔다갔다 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투수 와인드업 스텝을 밟고 있었다. 출산한 아내의 수발을 들면서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면서는 포수 연습하는 기분으로 했다.
웹툰 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야구팀 ‘사야이’ 선수들. 경기를 끝낸 뒤 기념촬영을 했다. 뒷줄 맨 오른쪽이 감독이자 작가인 유영태씨다. 사야이는 ‘모두가 함께하는 야구’를 지향한다. 유영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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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쩌다 중독된 걸까. 유 작가는 사회인 야구는 집과 같다고 말했다. “야구는 어떻게든 홈을 떠나서 홈으로 들어오려는 게임이잖아요. 안타를 치든, 공을 몸에 맞든 출루를 하고, 잠깐이라도 기회가 생기면 루를 훔쳐서 어떻게든 홈으로 들어오려고 하죠. 집도 마찬가지예요. 집에 있으면 어떻게든 나가고 싶고, 나가면 또다시 들어오고 싶어요.” 아들이 태어난 뒤에는 집을 향한 변덕이 더 심화됐다. 집을 나가서 야구를 하다가도, 눈앞에 귀여운 아들 얼굴이 아른거려 집에 가고 싶다가도, 집에 들어와서 아들을 번쩍 들어올려 미소 한 번 보고 나면 딱 0.3초 좋다. 다시 야구하러 가고 싶다.
질문은 반복된다. 그러니까 왜 그렇게 나가서 야구를 하고 싶은가. 손가락이 얼고 빙판에 미끄러지고 뼛속까지 아릴 만큼 추운 한겨울에도 새벽별 보며 나가 더그아웃 옆에 불 피워놓고 사야하는 이유가 뭐란 말인가. 게다가 131번 싸워서 109번 지면서 말이다.
“사회인 야구는 이기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즐기는 거예요. 하나만 잘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요. 1루수는 어깨가 약해도 되고 발이 느려도 돼요. 잘 잡기만 하면 돼요. 포수는 침착한 성격으로 경기 전반의 흐름을 읽어내는 능력이 있으면 되고, 투수는 가운데로 공을 던질 수 있으면 되고, 외야수는 잘 못 잡더라도 다리가 빠르면 일단 가능해요. 뭐든 자기가 잘하는 것 하나를 찾아서 팀플레이를 하고, 때로 이기기까지 하는 경험을 해보면 정말 짜릿해요.” 유 작가의 답이다. 그가 사야 웹툰을 그리면서 더 많은 사람이 사야를 했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처럼 운동신경 없는 사람도 이렇게 즐길 수 있으니까, 누구든 할 수 있어요.”
아내들이 불평을 랩하듯 쏟아내긴 하지만 의외로 가족·여성 친화적이기도 하단다. “가족과 함께 야구하러 오는 사야인도 많아요. 가족은 응원하고 끝나면 같이 나들이 가고. 주말이 풍성해져요. 그리고 여성 사회인 야구팀도 꽤 있어요.” ‘블랙펄스’라는 출중한 실력의 여성 사야팀도 있고, 요즘은 미혼 남녀가 함께하는 사야팀도 있다. 남성이 여성에게 야구를 가르쳐주면서 경기를 하고, 경기는 회식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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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사야인지라 사야 감독은 선발선수진을 정할 때마다 골머리를 앓는다. 최상의 멤버로만 1~9번 타순을 채울 수 없다. 최상의 멤버로만 수비진을 배치할 수도 없다. 구멍이 보여도 구멍을 넣어야 한다. 이 때문에 감독 유영태는 다른 사야 감독을 만날 때마다 묻는다. “도대체 오더(선발 결정)는 어떻게 짜세요?” 한겨레신문사의 사회인 야구팀 ‘야구하니’의 김동훈 감독은 정식 경기에서는 실력 위주로 선수를 내보내고, 연습 경기에서는 그동안 많이 못 나온 사람 위주로 연습하며 즐길 수 있게 선수를 내보낸다. ‘사야이’팀의 라이벌 ‘용야구단’의 이상민 감독은 선수들의 투표를 통해 오더를 짜기도 한다. 감독 입장에선 손 안 대고 코 푸는 영리한 방법이기도 하다.
밤샘 마감을 하고, 밤새 애를 재워도 일단 집을 나가 야구를 하면 행복한 사야인. 아기 볼 때도 다음날 야구 컨디션을 고려한다. 웹툰 육아부부의 사야이 갈무리
감독 유영태는 제1원칙을 ‘가장 많은 선수들이 경기에 나가는 것’으로 정했다. 계기가 된 건 가장 짜릿했던 2013년 5월11일의 경기였다. 사야이팀이 처음 창단했을 때부터 점점 성장해온 모든 과정을 지켜본 ‘용야구단’과의 경기에서 10-9로 이겼을 때다. “너무 기쁜 마음으로 회식을 했어요. 그런데 경기 못 뛴 친구들이 있었어요. 팀으로서 역사적인 순간에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회식 자리 귀퉁이에서 술잔을 비우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안 좋았어요. 승리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가슴 깊이 새겼죠.” 다만, 못하는 선수를 중요 경기 선발명단에 넣었을때는 ‘이기려는 자’들을 설득하는 정치력도 필요하다.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 사야이팀에선 아직 정의가 통한다.
사야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저보다 더 운동신경 없는 친구, 다리도 느리고, 타격도 못하고 공도 못 던져서 ‘짱 박는 위치’인 우익수만 보던 임우재군을 1루수로 만들었을 때입니다.” 감독 유영태는 사야이의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책임감은 강하지만 실력은 참 없는 임우재씨에게 말했다. ‘내가 널 1루수로 생각하고 있다. 네가 1루수를 하고 만약 잘하면, 실력이 미진한 다른 친구들이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할 거고, 팀 사기가 엄청나게 올라갈 거다.’ 임우재씨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고가의 1루수 글러브도 샀다. “배수진을 친 거죠. 그러더니 정말 1루에서 공을 잡아서 아웃시키는 거예요. 보통은 ‘그냥 했나보다’ 했을 플레이였는데 다들 ‘우재가 해냈어’라며 기뻐했고, 그때 거짓말처럼 팀 사기가 엄청나게 올라갔어요.” 직접 마운드에 올라섰을 때도 기억에 남는다. 팀 내 투수가 모두 사정이 생겨 경기에 참여할 수 없게 되자, 5일간 단기 속성 훈련 끝에 직접 마운드에 섰다. “우리 팀을 포함해 상대팀 경기까지 망치면 안 된다는 책임감에 5일간 밤낮없이 후회 없이 연습했어요. 비록 경기는 27-2로 졌지만 내가 공을 가운데로 던져넣을 수 있다는 자신감, 운동하는 재미도 느꼈어요.”
사야인 2년 만에 44%나 늘어사회인 야구 인구는 점점 늘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사회인 야구팀과 리그가 등록해서 경기 일정을 파악하고 개인 기록도 관리하는 사회인 야구 커뮤니티 ‘게임원’에 등록한 선수는 2012년 35만4827명에서 2014년 50만9375명으로 2년 만에 44% 늘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나보다. 유 작가는 ‘사야’ 웹툰을 통해 “사회인 야구를 모르는 사람이 사회인 야구가 하고 싶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사야를 전파하려는 데는 이 땅에 친구 같은 아빠를 많이 만들고 싶은 바람도 있다. “저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가까우면서도 대하기 어렵고 먼 존재예요. 제가 아버지가 되고 보니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됐지만, 이제 와서 아버지한테 친한 척해봐야 어색해요. 나는 좀더 친한 아빠가 되고 싶어요. 아들과 같은 사야 리그에서 같은 팀으로 뛰는 것을 목표로 삼고 같이 야구하다보면, 딸을 무등 태우고 같이 야구장을 다니다보면 친구 같은 아빠가 쉽게 되지 않을까요.” 극한직업 사야인이 야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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