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지금은 ‘연애 중’ 유치해도 괜찮아!

‘’나’ 아닌 ‘우리’의 물건 ‘커플 아이템’…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더 바보같이 더 대책 없이 즐기자
등록 2014-08-30 14:24 수정 2020-05-03 04:27
일러스트레이션/ long

일러스트레이션/ long

간질간질 ‘네가 좋네, 내가 좋네’ 하던 썸 타는 사이에서, 이제는 ‘너랑 나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 찜콩!’ 하는 연애의 시작기로 넘어가는 그때, 가장 좋을 때라는 그때, 이것은 장렬하게 시작된다. 들뜨고 신난 마음으로 고기에 등급 확인 도장을 찍듯, 여기저기 보이는 것, 할 수 있는 것마다 커플 아이템들을 장착하고 마련하는 데 온 정신을 쏟는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어떤 족쇄로 변할지는, 이미 경험해봤더라도 그 시점에선 모든 경험치는 제로 상태가 되고 만다. 그 한창 좋은 때에 터져나오는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은 우리를 점잖고 시크한 사회인에서 어느새 혈기왕성한 10대로 회귀하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실반지 하나가, 같은 디자인의 운동화나 시계 따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무엇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애를 시작하고 나면 왜 그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게 되는 걸까? 그런 물건이 없이는 상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병에 걸린 것도 아닐진대, 연애를 시작하고선 늘 그와 무언가 같은 것을 하고 싶어진다. 유치하고 사소한 그 작은 것들이 너무나 간절해진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심리인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문득 같은 아이돌 오빠를 좋아해서, 같은 색깔의 풍선을 흔들고 같은 색의 우비를 맞춰 입던 소녀(라고 쓰고 ‘빠순이’라고 읽는다) 시절이 떠올랐다. ‘나’라는 개인을 떠나 ‘우리’라는 동질감과 소속감을 강력하게 느끼게 해준 첫 번째 경험. 커플 아이템도 어쩌면 그런 맥락에서 하게 되는 것 아닐까? 힘들고 외롭고 오롯이 혼자였던 ‘나’에서, 이제는 힘들고 괴로운 일과 기쁜 일 모두 자기 일처럼 함께 나눠주는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 이제는 ‘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공표하고 싶은, 일종의 영역 표시 같은 것 말이다.

광고

사실 그런 심리나 이유 따위 아무렴 어떠냐 싶다. 언젠가는 그 아이템이 쳐다보고 싶지 않도록 아프고 싫은 기억의 물건이 될지라도, 그것 때문에 멋진 남자들이 다가올 기회를 송두리째 잃게 될지라도, 그 작고 사소한 물건과 그 시간이 사랑하는 이와 함께 만들고 쌓았던 행복임을 우리는 안다. 하루 종일 종로를 누벼서, ‘심플’이라는 미명하에 결국 누구나 다 하는 흔한 디자인의 금가락지를 나누어 끼고는 좋다고 웃던 시절이 있었다. 의기양양하며 살 때는 언제고 정작 커플티를 입고 나온 날엔 창피해서 서로 멀찍이 떨어져 걸었다.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다른 운동화를 신고 그와 소풍 나가던 봄날에는 그 발걸음조차 달콤했다.

애들도 아니고 그런 유아적 심리 때문에 괜한 물건 싸지를 필요 없다 말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혹은 아무리 커플이라도 개인의 취향과 필요는 다르다 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렇게 현명해지면 그거 어디에 쓸 거냐고. 우리는 지금 ‘연애 중’인데, 조금 더 유치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필요 이상으로 조심스럽고 똑똑하다. 이유와 그 바탕을 따져보았을 때 그것이 그저 집착이고 허상이라는 결론이 나와도 뭐 어떤가? 그래도 우리의 그 기억과 그 순간은 달콤한데. 바보 같고 의미 없을지 몰라도 그것 또한 연애의 특권이자 재미다. 내가 권하는 것은 이것 하나. 사랑하는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더 뜨겁고 더 바보 같고 더 대책 없이 연애하자. 고로 오늘 당신의 위시리스트를 허하노라. 지르라.

구여친북스 대표 @9loverbooks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