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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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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친의 새여친 소식을 들었다

막상 알고 나면 기분 찜찜하고 또 슬퍼지는 구남친의 연애 소식 이제 진짜 보내야 한다,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을
등록 2015-06-26 17:09 수정 2020-05-03 04:28

몇 달 전 새벽까지만 해도 내가 자는지, 안 자는지 궁금해하던 그 녀석에게 새 여자가 생겼단다. 그놈의 페북이 사달이다. 내가 알 수도 있다며 자꾸만 구남친을 눈치 없이 (페북이 친구로) 추천해댈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 녀석과 어떤 여자(나보다 어려 보이는)가 다정하고 말갛게 웃고 있는 사진이 내 뉴스피드에 올라오고야 말았다. 미처 끊지 못한 구남친 친구의 ‘좋아요’ 오지랖 덕분에. 이미 다 잊은 지 오래인데, 나도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 설레도 봤고. 진심으로 그 애의 행복을 빌어도 봤는데, 근데 왜 막상 내 기분은 이렇게 찜찜하고 더럽고, 그리고, 슬픈 걸까?

벗어나자.

더 잘됐다. 이제 정말로 미처 정리하지 못한 것들을 모두 정리할 때다. 아련한 마음과 알 수 없는 그리움들 때문에 지우지 못했던 것들을 지워내자. 휴대전화 사진첩에만 없으면 뭐하나. 엔드라이브에, 다음클라우드에, 아이폰이라면 아이클라우드에까지 ‘자동 올리기’ 되었던 사진들도 모두 말끔히 지우자. 행복해 보이는 그때의 우리를 아무리 다시 들여다봐도 이제는, 다, 정말로 부질없다. 메신저 숨김 목록도 다시 들어가자. 애매하게 숨겨놓지 말고 확실히 차단하자. 다른 소셜네트워크의 연결고리도 모두 다 지우자. 뭐 이렇게까지 하냐고? 자신 있는가? 그 애의 행복한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나, 안 바뀌었나, 자꾸만 들어가 확인하지 않을 자신 말이다. 난 없다. 그러니 지우자. 분노 게이지가 최대치로 꽉 찬 지금이 아니면 또 어려워진다. 지금 하라. 롸잇나우.

하지 말자.

물론 이해한다. 미니홈피 시절부터 갈고닦은, 우리의 ‘씨버’(cyber) 뒷조사 능력은 국과수도 울고 갈 만큼 탁월하다는 것 역시 잘 안다. 그러나 그의 새 여자 뒷조사는 참자. 진짜로 뒷조사 다 했는데, 정말로 그 여자가 모태 예쁨이고, 모태 착함에 모태 부자라면 솟아나는 그 화병은 어쩔 셈인가. 그러다 괜히 뒷조사 흔적이라도 남는 날엔 정말 돌이킬 수 없이 비참해진다. 안 돼. 절대 그것만은 안 된다. 그리고 하지 말 것 또 하나. 오른쪽 마우스 클릭도 막아둔 그 여자 사진을 굳이 캡처하고 저장해서 친구들한테 누가 더 예쁘냐고 묻지 마라. 친구들 대답과 내 대답, 그리고 당신이 듣고 싶은 대답 모두 같다. “당신이 더 예쁘다.” 그 새끼 눈 삔 것 맞다. 그는 그 여자가 당신보다 예뻐서가 아니라, 당신과 인연이 아니라서 떠난 거다. 그런 거다.

의심할 필요는 없다.

정말로 그럴 필요 없다. 당신과 그가 함께 보낸 시간, 함께 나누었던 약속과 이야기. 모두 진짜였다. 진심이었다. 바로 그 순간에는 말이다. 그러니 아름다웠던 당신의 그 순간마저 의심하고 억울해하지는 말자. 우리도 역시 그에게 진심이었지만, 우리도 평생 그만 생각하며 독수공방할 생각은 없었으니까. 그와 헤어진 뒤, 다른 남자와의 새로운 로맨스와 달콤한 미래, 우리도 역시 꿈꿔보지 않았나. 그도 마찬가지인 거다. 지금 그가 내 곁에 없다고 해서, 나와 보낸 지난 시간과 기억마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신과 그는 정말로 사랑했고 행복했다. 다만 그 시절에. 당신이 했던 사랑은 진짜였다. 그러니 괜찮다.

대학 시절 오래 만났던 남자친구의 결혼 소식 이후, 그동안 나는 시시때때로 마음이 많이 무너져내렸고 죽을 만큼 괴로웠지만, 지금은 말짱하게 웃으며 지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그를 그리워해서도, 다시 돌아오리라는 기대 따위도 해선 안 되지만 그래도 나는 참 잘 산다. 그가 없이도. 이제는 정말로 보내주자. 나를 아주 많이 사랑했던 그 사람을.

구여친북스 대표· 저자 @9lover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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