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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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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울지만, 그 앤 웃고 있어

이별 뒤 멀쩡할 수 있는 스킬, 치매 촉진·유체이탈·‘반’역지사지
등록 2015-04-11 19:23 수정 2020-05-03 04:27

사랑했던 그 사람이 나를 버리고 떠나도, 우리는 다음날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하고, 말짱히 사람 구실을 해야 한다. 가슴속 심장이 사라진 듯 아파도, 우리는 혼자 추스르고 벌떡 일어나야 한다. 아파도 아프다 말을 못하는, 치사스러운 ‘어른의 이별’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 한 줄기 기발한 솔루션이 되어줄 스킬들을 소개한다.

일러스트레이션 long

일러스트레이션 long

1. 조기 치매를 촉진하라

우리의 이 아픈 마음은 다 그 망할 놈의 기억력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던 시절의 그 모든 사소한 기억들,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지금은 내가 아프지 않는 것이 먼저다. 다 잊고 지우자. 뇌가 최대한 연상 작용을 활발히 하지 못하도록 뇌를 학대하자. 기억의 연상 작용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우리는 일상생활을 정상적으로 영위할 수 없다. 이것은 이별한 우리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원인이다. 이를 없애기 위해 우리는 조기 치매를 촉진하려 한다. 먼저 매일매일 음주하라. 매일의 음주는 뇌 기능 손상을 부르는 직빵 솔루션이다. 그리고 견과류 등 뇌나 몸에 좋은 거 일절 먹지 마라. 그의 생일도, 전화번호도, 그 사람 표정도, 말투도, 그 무엇도 잊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보자.

2. 유체이탈 사고법을 익히라

내가 내가 아닌 양, 다 모른 체해라. 마음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파도, 정말 모르는 것처럼 굴어라. 머리와 가슴을 분리하라. 내 마음이 아니고, 저 우주 어딘가 ‘빵상 외계인’의 마음이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걔가 아픈 거지, 내가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까 아픈 빵상의 마음은 빵상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생각하라. 마음이 무너지는 그때, 머리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엉뚱한 짓을 계획해보라. 갑자기 만화 주제가를 크게 불러보고, 진짜 웃기고 이상한 춤을 춰보고, 엄마한테 시답지 않은 개그를 해보라. 슬픔에 빠질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슬픔이라는 건 내게 존재하지 않는 양, 쉴 틈 없이 다른 생각과 일을 벌이며 자신을 굴리자. 아픈 마음에서 도망쳐 멀찍이서 딴짓을 하자.

3. 역지사지 따위 개나 줘라

그 사람 입장 같은 건 생각해보지 마라. 이미 헤어진 사람, 이제 와서 위해줘서 뭘 어쩔 텐가? 설령 내 잘못으로 그가 떠났다 해도, 내 잘못은 그가 떠난 그 자체로 벌을 받아 사라진 거니까 자책하지 마라. 그만하면 충분하다. 헤어지고 나서, 그때 그 사람 마음은 어땠을까, 곱씹고 눈물 흘리는 이들이 많다. 아니다. 신경 쓸 필요 없다. 가장 불쌍한 사람은 그때 아팠던 그가 아니라 지금 아픈 당신이다. 헤어진 지금 그도 나만큼 괴로울지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짓는 것도 다 관둬라. 아니다. 형돈이와 대준이 오빠가 말해주지 않았나, 아니아니아니아니아니, 너는 울지만 그 앤 웃고 있어. 그게 진짜다. 헤어지고 나니 그의 좋은 기억만 떠올라 힘들다면, 주변 친구들에게 다시 물어봐라. 사귀는 동안 당신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고 나서 까먹었던 그 무수한 사건들, 친구들은 기억할 거다. 감정을 곱씹을 거면 그걸 꺼내 곱씹도록 해라.

노파심에 주의를 드리건대, 1번을 따라하다가는 정말 비명횡사하는 수가 있다. 그건 그냥, 차력쇼처럼 보여준 거니까 진짜 따라하지는 마시길. 당신 혼자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그 이별의 시간 가운데, 괜찮다면 나도 끼어 함께 응원하겠다. 아프고 괴로운 그 순간에, 내 야매 같은 조언으로 당신이 한 번이라도 웃음지을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일하고 집에 가서 눈 딱 감으면 또 하루는 가고 시간은 흘러 약이 된다. 오늘도 당신 참 많이 애썼다. 토닥토닥.

구여친북스 대표· 저자 @9lover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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