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준비를 하며 아일랜드 소녀풍의 니트를 꺼내 입었다. 그리고 바라본 거울 속엔 털옷 입은 임꺽정이 서 있었다. ‘아, 진짜 빼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왔구나.’ 피눈물을 흘리며 “오늘부터 필살 다이어트”라며 굳게 결심하고 나왔지만, 퇴근길 내 손에는 어김없이 맥주와 과자가 들려 있다. ‘내일부터 하면 되지’ 하는 누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아아, 난 안 될 거다. 기왕 망한 김에 쓸데없는 생각도 하나 더 해봤다. 다이어트와 연애의 공통점, 나를 한평생 옭아매는 이것들에는 이런 닮은 점들이 있더라.
다양하고 쓸데없는 연구를 해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영국에, 다이어트와 연애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 주제다. 정말 다양한 변수에 따라 다이어트와 연애는 그 성패가 갈린다. 그런데 그 연구들을 보다보면, 결론이 모두 하나같이 진지하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결국 모든 연구의 결론은 살찐 사람은 숨만 쉬어도 살이 찌며, 매력적인 이성이라면 똥방귀를 뀌어도 인기가 터진다는 거다. 어쨌거나 그냥 다 유전자 탓이라던데? 그랬구나. 안 빠지는구나. 안 생기는구나. 될 놈만 되는 거구나. 다음 생을 기다려야겠구나. 잘 알았으니까 연구 그만해라, 영국놈들아.
02. 미친 감정 기복을 겪는다이 공통점에는 많은 이가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운동을 하며 개운한 기분에 역시 내 몸을 사랑하길 잘했다며 행복에 젖어 있던 우리는, 운동을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떡볶이 노상을 보곤 다시 극심하게 우울해진다. 다이어트 이게 뭐라고, 내가 굶고 운동해가며 저렇게 맛있는 떡볶이도 못 먹어야 하는지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연애는 또 어떤가? 사랑하는 그와 함께 눈을 맞추며 깊은 황홀경에 빠져 있다가도, 곧 그가 연락을 조금이라도 늦게 하거나 적극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분은 땅끝까지 치달아간다. 다이어트도 연애도, 이전의 내가 아닌 새로운 내가 되는 과정이기에, 스스로 능숙하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혹 당신이 하루하루 기분이 미친× 널뛰듯 바뀌는 그들의 주변인이라면 그들을 불쌍히 여겨주자. 다이어터도 사랑에 빠진 이도 모두 다 약자이니까.
03. 미워도 다시 한번만…이번엔 정말 완전히 성공일 것 같던 다이어트도 주말의 폭식과 함께 실패를 맞고, 이번엔 정말 영원일 것 같던 사랑도 기어이 끝을 만나고야 말았다. 마음의 긴장을 잃은 순간, 요요는 찾아오고 무정한 이별은 반복된다. 그리고 그 처절한 끝을 알면서도 우리는 다시 또 월요일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고 새롭게 찾아올 사랑을 꿈꾼다. 미워도 다시 한번, 연애와 다이어트는 절대 영원히 놓아버리고 포기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많이 닮아 있다.
드라마 에서 동진은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다고 했다. 어른들에게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기 때문이라고. 같은 맥락에서, 다이어트 역시 이렇다 싶은 새로운 목표나 희망이 없이 그저 하루를 살아내는 어른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목표가 되어준다. 모쪼록 한번에 모두가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다시 한 발짝 나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는 점도 그 둘은 닮았다. 찬바람 부는 겨울이 온다. 다이어트와 thㅏ랑, thㅏ랑과 다이어트 이번엔 모두 쟁취하시길 빈다.
구여친북스 대표 @9loverbooks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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