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유부남이 되어 저 멀리 아득히 꺼져버린 첫사랑 오빠와 연애하던 시절, 나는 정말 답 없는 집착녀였다. 당시 그와 우리 집 사이의 거리는 차로 40분 정도, 나를 데려다주고 가던 그때가 밤 11시였으니, 아마 더 빨리 도착했을 거다. (그래, 사실 난 이게 문제다. 뭘 분 단위로 연락이 와야 하는 데드라인까지 잡고 추리하고 난리. 김전일인 줄!) 그렇게 그의 차가 떠난 지 정확히 50분이 지나고부터 나는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왜 도착했다는 전화가 없지?’ 연결되지 않은 통화 기록이 30여 개가 생겼을 무렵, 나는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다. 모든 사건·사고의 변수를 상상하며 눈물 범벅이 되어 신에게 기도를 올린 건 물론, 그의 집 주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사고 차량 번호를 조회해보기까지 했다. 우리 엄마는 그날 나의 모습을 거칠고 적확하게 표현해주셨다. 그랬다. 나는 정말 ‘염병을 떨고 있었다’.
나는 나만 또라이일까봐 걱정했는데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비슷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위아더월드’ 또라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내가 조금 더 조급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미혼남녀 65.8%가 ‘연인과 연락이 안 될 때 불안감을 느낀다’고 하고, 그때 남성은 ‘일단은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56.3%), 여성은 ‘응답할 때까지 연락한다’(66%)고 답변했단다. (고맙다. 덕분에 외롭지 않다.) 보통 이런 연구 결과에서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애착 관계 이론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이 설명이 나는 꽤나 불편한 것이, 그럼 ‘우리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 키웠길래 내가 지금 이렇게 집착이 쩌는 거냐’는 패륜적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까지 마라, 심리학놈들아.
사실 현재를 살며 연애하는 우리에게 이런 증상이 생긴 것은, 아마 분 단위, 초 단위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하고 점검할 수 있는, 아주 안전하고 숨 막히는 통신 기술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몸이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함께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메시지와 음성 통화 덕분에, 연인들은 서로에게 떨어져 혼자의 시간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마저 퇴화돼버린 것 같다. 그래서 서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면, 극심한 불안 증세를 경험하고 외롭지 않은 일에 외로움을 더욱 느끼게 되는 거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영국에서의 연구가 쫙 나와줘야 한다. 영국의 어느 심리학 실험에서는 연인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바람피우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 보인 바 있다. 배우자의 애정에 굶주리거나 집착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내버려지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바람피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버려지기 전에 버리겠다’라는 못되고 불쌍한 심리다.
뭐 이런 실험, 원인 그 모두를 찾아봐도 사실 마음 다스리는 일은 어쨌거나 자기 몫이고, 사랑하는 상대에 관해 초연하고 쿨하기란 어렵다. 그래도 이 때문에 너무 괴롭거나, 바람 같은 극단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상대방을 최대한 존중하며 연락 방법을 찾는 것, 혹시 어긋나더라도 좀더 상대방을 믿는 것, 또 혼자인 내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 사랑으로 인한 나의 불안과 걱정이 상대에게는 부담과 두려움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언짢지만 잊지 말 것. 이 정도가 괴로운 당신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야매 해결책. 근데 난 ‘집착남’ 매력 있던데, 왜 남자들은 집착을 안 해주지? 헤헿…☆
구여친북스 대표 @9lover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