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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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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빠남’에겐 무시가 약

이성적 매력 확인받기, 딱 거기까지만 바라는 이들을 대하는 방법
등록 2015-05-07 21:21 수정 2020-05-03 04:28

봄날도 깊어질 대로 깊어져 여름이 코앞에 다가왔다. 벚꽃잎 휘날릴 때 타기 시작한, 그와의 썸도 이제 진득진득 구질구질한 색깔로 변해간다. 내 마음을 들쑤시고 건드린 것은 분명 그 사람이 먼저였는데, 오늘은 또 정색으로 나를 맞는다. 도대체 시방 뭐하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썸이냐, 장난이냐 그것이 항상 겁나 문제다.

일러스트레이션 long

일러스트레이션 long

분명 처음에는 달달함이라는 것이 폭발했었다. 그녀에게 메신저로 먼저 사적인 대화를 걸어온 것은 그였고, 어느 날 밤 문득 메시지를 보내 그녀에 대해 점점 궁금한 것이 많아진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그였다. 언제나 꿀이 뚝뚝 떨어지는 듯 달콤하기만 한 그와의 대화에 그녀가 닫혔던 마음을 열고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표현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정확하게 그 이후부터 그녀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랬다. 그는 ‘치빠남’(치고 빠지는 남자)이었다. 그녀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그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그녀가 자신 때문에 흔들리고, 자신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만으로 스스로 만족스럽고 즐겁기 때문에 끼를 부리는 이였다. 그가 발전하여 여러 군데에 끼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는 어장남으로 진화한다.

그렇다면 그가 내게 보이는 마음이 진심인지, 혹은 감정을 담은 장난인지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때 그가 얼마나 내게 달콤한 약속과 말을 해주었는가는 별로 고려할 만한 중요 요소가 아니다. 슬프지만 분명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려는 그 사람보다 그저 단순히 즐기고 싶은 그들이 이 달달한 순간에 훨씬 더 능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믿기 싫겠지만, 그의 마음을 구분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그가 내게 마음을 전하는 것에 사용하는 수단을 조금 냉정하게 지켜보라. ‘직접 만남 >>>>>>>> 전화통화 >>>> 메시지 >> 메신저’다. 능동적인 어장남과 달리, 치빠남들은 조금 더 치밀하며 소심하다. 애초에 자기가 욕먹을 만한 구멍 따윈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직접 만난 적도, 통화한 적도 없는데 ××씨는 왜 그런 오해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당신에게 두 번 세 번 엿을 선물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단언컨대 메시지나 PC 메신저로만(!) 노력하는 대시에는 굳이 진심을 담아 반응하고 고민해줄 필요가 없다.

또한 이 치빠남들은 상대방의 적극적인 대시에 정색과 부담스러워함으로 반응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교묘한 대응이 요구된다. 이들에게 똑같이 정색으로 맞섰다가는, 말 그대로 오버하는 여자가 되기 십상이다. 차라리 가공의 인물이라도 만들어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고 말하라. 너 따위는 아무리 끼를 부려봐야 내게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며 무시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가 가장 확인받고 싶은 것은 자신의 이성적 매력이다. 그것을 짓밟아 무시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공격이 된다. 경험상 이 방법을 썼을 때, 그들이 가장 열받아 했으며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매력을 다시 떨치고자 갖은 애를 쓰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봐준다면, 오죽이나 못났으면 애먼 사람에게까지 공들여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지, 치빠남들도 충분히 불쌍한 존재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진심이 아닌 표현에 마음을 내주고 그 마음을 다치는 사람들이 없기를 바라며 이 글을 썼다. 얼마 남지 않은 봄에는 모두가 진심으로 제대로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치고 빠지는 것들에 종말을 고하라.

구여친북스 대표· 저자 @9lover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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