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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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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꽤 잘 어울려요

이들을 보면 왠지 행복해… 드라마 보다 옥시토신 분비하게 되는 케미 폭발 커플 열전
등록 2014-08-27 14:14 수정 2020-05-03 04:27
‘케미’. 화학반응을 뜻하는 영어 단어 케미스트리의 줄임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호감이 오가고 호감이 사랑으로 발전하면 도파민이 분비되고 옥시토신이 분출한다. 이 호르몬들의 전달력은 두 사람을 넘어서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케미’에 민감하다. 케미가 좋은 커플을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쯤은 행복지수가 올라가니까. 어떤 드라마에서는 연애가 밥이고, 어떤 드라마에서는 연애가 반찬이지만, 이것이든 저것이든 연애가 없다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스킨십이 없다면 무슨 재미. 노희경은 말했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유죄”라고. 당신의 뇌에서 옥시토신을 폭발시키는 커플은 누구인가. 드라마에서든, 주변에서든 찾아보고 즐기자. 슬프고 답답한 세상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작은 출구가 되지 않을까.


최지우-권상우‘연기 하고 있음’, 그 맛
유혹. SBS 제공

유혹. SBS 제공

‘사랑은 돌아오는 거’라더니 진짜 돌아왔다. 권상우와 최지우가 2004년 이후 딱 10년 만에 SBS 월화드라마 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 둘을 다시 보기 위해 10년을 기다려온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없겠지만) 절대 실망하지 않을 그런 드라마, 에서 권상우와 최지우는 여타 커플은 절대 할 수 없는 그들만의 케미를 선보인다.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내건 은 사업에 실패한 유부남 권상우가 홍콩에서 우연히 사업가 최지우를 만나고, 최지우가 10억원으로 권상우의 사흘을 사겠다고 제안하면서 시작한다. 둘은 서로에게 흔들리면서 ‘내가 하면 로맨스’인 사랑에 빠지고,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진 권상우와 박하선 부부는 이혼에 이른다. 이야기의 절반을 지난 지금, 권상우와 최지우는 공식 연인이 되었고 박하선은 이 둘에게 복수하겠다며 칼을 갈고 있다.

이 둘의 ‘케미’는 인물의 이름에서 이미 ‘그린라이트’를 반짝인다. 이 둘이 서로의 이름을 “차석훈씨” “유세영씨” 하고 부를 때마다 의 한 세 번째 계단쯤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송주 오빠!” “정서야!” 에서 시옷 발음이 시원스럽게 되지 않아 슬픈 장면에서도 웃음까지 덤으로 주며 환상 호흡을 보여줬던 바로 그 권상우와 최지우 아니던가. 그 환상 호흡은 여전히 그대로다.

이 드라마는 요즘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말 그대로의 ‘드라마’다. 유부남 차석훈(권상우)을 마음에 품게 된 유세영(최지우)은 게임을 하듯 돈으로 권상우의 시간을 사고, 이후 회사 대표와 직원으로 함께 일을 하며 서로에게 서서히 빠져든다. 이 이야기 속에서 둘은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관찰하다가 때로는 마음에도 없는 비수를 꽂기도 한다. “겁나요? 하지만 차석훈씨를 무섭게 만든 건 내가 아니에요. 날 찾아오기 전부터 이미 겁내고 있었으니까” 같은, 드라마 대사일 수밖에 없는 대사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이 둘 사이의 공기가 조금 달라질 때면 영화 나 에서 들어본 것 같은 배경음악이 깔린다. 바로 이 포인트에서 권상우와 최지우의 케미가 폭발한다. ‘누가 봐도 연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올드하다’고 느껴지지만 그 맛에 계속 보게 되는 그런 스타일의 연기를 참 잘하는 권상우와 최지우는 이 드라마의 맥을 제대로 타며 장면 장면을 ‘드라마적으로’ 살려낸다.

둘의 케미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다시 한번 폭발하는 중이다. 건조한 공기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확 깨고 들어오는 최지우의 약간은 뻣뻣한 애교와 권상우의 어색한 스킨십을 보고 있노라면 순식간에 손과 발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된다. 눈부신 아침, 권상우의 품에서 깨어난 최지우가 잠든 권상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둘이 함께 밤을 보냈음을 지나치게 정직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든지, 커피를 만드는 최지우를 뒤에서 살포시 끌어안은 다음 최지우를 돌려세워 이마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라든지, 이런 장면이 바로 이 드라마를 끊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다.

권상우와 최지우가 보여주는 ‘케미’의 정체는 익숙함과 편안함이다. 이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추억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권상우와 최지우의 합, 10년 뒤에도 꼭 다시 볼 수 있기를. 안인용 TV칼럼니스트


이희준-김옥빈중독주의, 오지랖 커플
유나의 거리. JTBC 제공

유나의 거리. JTBC 제공

유나 “지금 뭐해”

창만 “밥 먹고 물 마셨다. 왜?”

유나 “나 지금 보육원에 있는 애한테 면회왔는데, 확실한 신원 보증해줄 사람이 필요해. 너도 알다시피 나 꽈자(전과자)잖아.”

창만 “야, 어떻게 그렇게 주변이 다 전과자고 별천지야. 결국은 전과 없고 깨끗한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잖아.”

드라마 에서 흔한 대화다. 유나(김옥빈)는 소매치기다. 창만(이희준)은 세상에 둘도 없는 반듯한 남자다. 유나는 종종 신원 보증할 사람이 필요해 지인 중 “제일 깨끗한” 창만을 찾는다. 창만은 특유의 말투로 “난 니가 오라면 가야 되냐”며 투덜대지만, 반드시 간다. 그럴 때마다 “내가 깨끗해서 좋다는 거지”라고 세뇌시키기를 잊지 않는다. 소매치기라는 직업을 사이에 두고 하는 유나와 창만의 연애를 보다보면 직접 본 적 없는 도파민이 어딘가에서 분비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케미’가 좋은 건 이런 걸 거다.

둘의 교감이 가장 잦은 곳은 함께 사는 다세대주택 복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창만은 유나의 방문을 똑똑똑 두드리며 “유나씨”를 부르고, 유나는 창만의 방문을 두드리며 “방에 있어?” 묻는다. 휴지가 떨어져 휴지를 빌리러 가기도 하고, 놀러갔다 사온 명란젓을 건네기도 한다. “죽이는” 조기 냄새에 방으로 쓰윽 들어간 유나가 창만이 올려주는 조기를 하얀 쌀밥에 얹어 맛있게 먹는 장면은 참 따뜻하다. 방으로 “잠깐 건너와”라는 무심하고 일상적인 대화 뒤에는 서로를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 자고로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인 ‘한 지붕 연애’다.

둘의 연애가 특별한 건 유나의 직업 때문이다. 창만은 유나가 인사동 한복판에서 지갑 터는 광경을 목격했다. 말 그대로 망연자실한 표정의 창만이 유나의 팔목을 낚아채 “정말 실망했다”고 말하는 눈 속에는 “너무 슬프다”는 말이 담겨 있다. 돌이켜보면, 둘이 처음 만난 것도 지갑을 털다가 도망치는 유나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상황이었다. 창만은 유나의 직업을 알았지만, 외면하지 않고 틈만 나면 ‘지갑 유통업’을 그만두라고 어르고 달랜다. 창만에게 유나는 황조롱이다. 어린 시절 다친 황조롱이를 발견하고 치료해주는데 황조롱이가 처음에는 손을 할퀴고 부리로 쪼다가 점점 손에 올라올 만큼 친해졌다. 창만은 “제 손바닥 위에 올라왔던 황조롱이처럼, 언젠가는 유나도 저랑 마음이 통할 거라고 믿어요”라고 말한다.

유나-창만 커플 케미의 근원은 오지랖이다. 창만의 오지랖은 태평양이다. 결정판은 ‘복수 대행’이다. 같이 사는 미선 언니가 어린 제비에게 맞고 돈을 뜯기자 복수하려는 유나를 대신해 창만이 나선다. “남의 일에 끼어들다 빵에 가도 후회하지 않냐”고 묻는 유나에게 창만은 말한다. “이게 어떻게 남의 일이야. 매 맞는 미선씨를 구한 일인데. 미선씨 일은 니 일이고 니 일은 내 일이야. 빵에 가도 할 수 없어.” 오지랖은 이렇게 케미로 승화한다. 미선은 “창만씨랑 친해진 뒤로 너도 오지랖이 장난이 아냐”라고 유나에게 말한다.

편의점에서 맥주캔을 맞부딪치고, 퍽퍽한 일상이지만 둘이 함께 있을 때 가장 환하게 웃고 슬며시 손을 잡고 어깨에 손 올리면 싫은 척하지만 좋아하는 ‘오지랖 커플’의 덤덤한 연애는 안 보면 보고 싶은 중독성이 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조인성-공효진괜찮아, 조금 다를 뿐이야
괜찮아, 사랑이야. SBS 제공

괜찮아, 사랑이야. SBS 제공

지해수(공효진)와 장재열(조인성)의 첫 만남은 그리 신선하지 않다. 둘은 한 토크쇼에서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 뒤 각자 부정적 평가를 내린다. 정신과 의사 해수는 자신감 넘치는 재열이 “자기애성 인격장애자”라고 비꼬고, 인물 심리에 도가 튼 추리작가 재열은 말끝마다 가시를 세우는 해수가 “사랑할 때 나오는 옥시토신이 단 한 번도 분비된 적이 없는 여자”라며 절대 애인이 없을 거라 단정한다. 오해로부터 시작된 팽팽한 긴장감은 식의 로맨틱 코미디 전개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평범해서 진부할 정도다.

그런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둘의 사랑은 진짜 흥미로워진다. 첫인상과 진단은 오해와 편견에서 빚어진 것이었으나, 둘은 실제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해수는 관계기피증과 불안장애를, 재열은 강박증과 분열증세를 겪는다. 말하자면 영화 이나 처럼 독특한 ‘사이코’ 로맨틱 코미디가 기대되는 설정임에도, 둘의 사랑을 바라보는 범상한 태도가 이 드라마를 독특하게 만든다.

해수와 재열의 사랑은 일반적인 연인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 없이 예사롭다. 둘은 서로의 트라우마를 알고도 부담스러워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는다. 재열은 어머니의 불륜으로 성적 트라우마를 겪는 해수에게 ‘천년의 어둠이라도 빛이 드는 건 한순간’이라며 그녀가 쌓은 벽을 단번에 뛰어넘고, 해수는 아동학대로 인한 강박증으로 화장실에서만 잠들 수 있는 재열을 보고도 태연하게 대한다. 그들은 결코 상처를 호들갑스럽게 전시하지 않고 ‘그냥 가볍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인다.

각자의 트라우마를 뛰어넘은 감정에 대해서도 특별한 ‘펀치 드렁크 러브’가 아니라 “딱 좋아. 내 스타일이야”라고 경쾌하게 이야기한다. 여행지에서 비싼 호텔비 때문에 싸우고 어디까지 진도를 나가야 할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여느 연인들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다. 수많은 로맨스가 주인공의 상처를 최대한 극적으로 전시하는 데 골몰할 때, 정작 정신질환자들이 선보이는 ‘보통의 연애’는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인간과 상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어서 정신과를 택한 해수나, 잔혹한 폭력과 학대를 경험했음에도 인간에게 주어진 상황이 모질고 잔인한 것이라 말하는 재열이기에 서로의 상처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한 상처의 공감을 넘어 그 근원을 성찰할 줄 아는 시선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다.

정신분열증에도 불구하고 태아를 위해 약을 먹지 않으려 하고, 그런 아내를 아낌없이 사랑하는 남편을 보면서 해수가 재열에게 말한 적이 있다. “저들이 영원할 거라고는 안 믿어. 근데 응원은 하고 싶어.” 실제로 해수는 그들을 위해 매일 초를 켜고 기도한다. 평범한 인간의 연약함을 잘 알기에. 해수가 피곤해서 미처 일어나지 못한 어느 새벽에는 재열이 그녀를 위해 촛불을 켠다. 사랑이 모든 걸 치유하지는 못한다. 사랑에도 기도가 필요하다. 그걸 알고 서로를 대신해 기도하는 이 커플은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 존재인가. 그 순간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도 더 이상 평범하지 않게 느껴진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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