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long
폭우에 우박까지 미친 듯 쏟아지던 어느 궂은 날이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우산을 꼭 쥐고 부들대며 길을 지나는데 마주 오는 커플과 마주쳤다. 길이 좁으니 내가 뒤로 조금 물러나 길을 양보해줬지만, 공간을 조금도 좁히지 않고 걸어오던 그들은 결국 비켜서 있는 내 우산에 부딪혔다. 아마 여자 쪽으로 물이 조금 튀었던 것 같다. 물론 내게도 튀었고. 그런데 그 순간 커플 남자는 마치 가문의 원수라도 만난 듯 내게 눈을 부라리며 쌍욕을 내뱉었다. 이런 썩을 ㅇ???후ㅏ?누ㅏ n?! 하지만 현실 쭈구리인 나는 비 오는 날 더러운 꼴 겪기 싫어 꾹 참고 지나갔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참담하고 분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내가 무얼 잘못했지?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무법자형 커플은 꽤나 자주 출몰한다. 이들은 혈기 넘치는 20대 초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데, 보통 목소리가 어이없도록 큰 것이 특징이다. 내 친구 K양은 새로 산 옷을 입고 나와 기분 좋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녀의 귀에 쩌렁쩌렁한 커플의 목소리가 꽂혀왔다. “자기야, 저 여자 어제 내 옷이랑 똑같은 거 입었어.” “정말? 근데 저 여자는 별론데? 역시 우리 애기가 제일 예뻐.” 자기들끼리 한 말이니 가서 따질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속수무책 K양은 ‘별로인 여자’가 되었다. 심지어 뒤돌아 확인하니 그 여자는 별로 예쁘지도 않았다며 K는 피 끓는 억울함을 토해냈다.
왜 그들의 같잖은 애정 놀음 때문에 이러한 피해자가 양산되어야 하는가? 거리의 무개념 무법자 커플, 그들에게 국가적 차원에서 재갈이라도 물려주길 강력히 촉구한다. 여린 민간인은 도대체 살 수가 없다.
지하철 ‘오징어 지킴이 커플’은 최근 그 피해 사례가 유독 속출 중이다. 출근 시간 멍 때리지 않는 이 누가 있으랴. 앞에 남자가 있는지, 개가 있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한참을 가는데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내 앞에 앉은 남자의 여자친구였다. 순간 너무나 억울하고 황당했다. 나는 그 남자를 쳐다본 게 아닌데! 그녀는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그 남자에게 더욱 가까이 기댔다. 아, 정말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 오징어 당신 것 맞습니다! 저는 정말 골백번 다시 태어나도 당신 오징어를 탐내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영원하세요. 제발요!”
민폐 커플은 생판 모르는 이들 중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개념 옹골차던 절친도 어느 날 연애를 시작하고는 때리고 싶게 변모할 때가 왕왕 있다. 특히 그들이 싸웠을 때 그렇다. 모처럼 친구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몇 시간 동안 자기 남친의 험담을 심각하게 늘어놓던 C양에게, 다른 친구 Y군이 “근데 그런 애를 왜 만나?”라고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야, 그래도 너보다 나아.” 두둥. 3시간이 넘게 기 빨려가며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준 대가는 Y군에게 벅찬 뒤통수로 다가왔다. C양, 너 그러는 거 아냐. 인마.
그래, “내가 하면 로맨스”다. 누구와 있어도 서로만 눈에 보이고, 딱 너희 둘만 세상의 주인공인 것 같은 그 기분 이해한다. 그런데 왜 자꾸 인터넷에서 더 유명한, 책 속 한 구절이 떠오를까?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너희도 결국 헤어졌구나.” 제발 조용히 좀 연애해라. 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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