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관을 끌고 다니는 사나이. 부모도 친구도 없이 총 한 자루에 모든 것을 건 떠돌이. 날 찾아 마차를 타고 도착한 상류층 여인. 언제나 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미모의 무희. 온 마을을 불태우며 공격하는 인디언 부족. 야만의 끝장을 맞닥뜨린다는 두려움과 흥분.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황혼 녘 목장의 결투. 내 옆에서 총에 맞아 숨을 거두는 어린 동생. 어딘지 나중에 찾을 수도 없을 한심한 돌무덤만 남긴 채 또 떠나야 하는 나. 그런 나를 바라보며 차마 잡지 못하고 지평선만 응시하는 고혹적인 여인. 담배를 질겅거리며 쓱 보기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늘과 우수가 만들어지는 내 눈빛. 서부영화는 참으로 묘한 장르다. 가본 적도 겪어본 적도 없는 어떤 세계를, 심지어 되어본 적도 없는 성별이 되어 그리워하게 한다. 실은 미국에서도 존재했던 적은 없는 어떤 세계, 그러나 전세계인이 마치 다 거기 출신이기라도 한 양 선험적으로 잘 알고 있고, 어떤 원형에 끌리듯 향수하는 시대. 넓은 평원을 말 달리며 미지의 내일을 향해 가는 그 호쾌함과 쓸쓸함에는 관객의 나라가 어디든 시대가 언제든 성별이 무엇이든, 마음을 두근거리고 비장해지게 하는 뭔가가 있다. 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문명의 질서를 거부한 채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과 야만의 세계를 누비는 그들, 오로지 원초적 힘으로 내 영역을 가르는 그곳에서 자식의 미래와 나의 노년을 염려하는 대신 하루하루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그들의 삶엔, 가족과 밥벌이와 엮여 현대를 사는 우리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러나 은밀하게 동경하는 뭔가가 있다.
는 여러 가지로 서부영화 같다. 최악의 대기근이 있었던 현종 재위기 어느 때라지만 그게 실제로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옛날 옛적 지리산 자락에서, 원스어폰어타임 인 나주, 라고 말하면 충분한 배경에, 원수를 갚기 위해 혼자 적진에 뛰어드는 사나이라든가, 그와 팀을 이루어 복수에 나서는 무리, 라이플과 쌍권총과 바주카포를 연상시키는 여러 무기들, 장고의 관 같은 달구지와, 묻을 사람은 묻고 또다시 말 달려 황야를 질주하는 마지막 장면까지, 우리 맘속 그리운 서부 세계를 한국을 배경으로 옮겨온다. 연마를 통해 더욱 강한 나로 거듭나고 탐관오리가 켜켜로 쌓은 부를 백성에게 돌려주고 어린아이는 보호하고 리더는 신뢰하고 희생과 나눔이 존재하는 는, 우리가 실제로는 겪어본 적 없는 어떤 세계를 동경하게 한다는 점에서 또한 대단히 서부영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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