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간 우정, 정말로 가능할까?’ 고릿적부터 내려오는 이 식상한 이야기를 굳이 내가 왜 첫 연재부터 새삼 꺼내느냐 하면, 바로 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 때문이다.
심리 스릴러가 긴박하게 진행되던 극장 안, 앵앵대며 울려퍼지는 여자 목소리. “여보세요오~” 하필 걸리려 작정한 날인지, 내 남자친구의 전화가 저절로 받아진 것이다. 슬픈 예감이라 표현하기는 너무 아름답고, 왜 더러운 촉은 틀린 적이 없나. 내 앞에서 자신이 내 남친과 10년 지기임을 강조하던 바로 그 기집애였다. 그녀는 이전에도 여러 번 전적이 있었다. 나와 데이트를 마무리할 늦은 밤에 자주 전화해왔고, 수화기 너머로 말없이 울음만 터뜨린 적도 있었다.
폭발해 영화관을 뛰쳐나온 나를 붙잡고 남자친구는 절대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니긴, 개뿔 뭐가 아닌데? 정말 이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여자애와의 ×톡 대화 내역을 봤다. 아, 썩을. 까도 까도 나온다. 그의 선톡이 없다는 것 하나 빼고는 모든 것이 빡침 포인트였다. 그녀는 시시콜콜한 일들로 연락해왔고, 심지어 비타민이나 숙취 해소 음료, 자양강장제 등을 선물콘(!)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남은 보스몹. 그 둘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만나기까지 했다. 그날 남자친구는 내게 오랜만에 지방에서 친구가 왔다고 했다. 여자의 타고난 촉일까, 나는 기분이 무언가 이상했다. 그치만 쿨하고 싶어, 잘 놀고 집에 갈 때나 연락하라 해줬다. 아, 그랬다. 내가 호구였다! 나 몰래 만나던 그 주말, 그녀는 여자친구가 싫어하면 말하라고, ‘우리’는 다음주에 또 보면 된다며 친절도 베풀었다. 지금 이곳에 그 짓거리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말들은 ‘친구’의 것이 아니라 ‘여자’의 것이었다. 전문용어로는 ‘끼부림’.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그 자리에서 커플링을 빼 던졌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남자친구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얘는 절대 여자가 아니라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멘트까지.
동성 친구와 달리 이성의 친구만이 주는 감정적 유대와 특별한 친밀감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그것을 왜 굳이 연인이 아닌 이와도 나누어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도 있으니 단정지어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는 힘주어 말할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상처받거나 괴로워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유지되어야 할 엿 같은 관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 친구를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대신 그 우정의 적절한 정도와 수위는, 당신의 연인과 그의 이성 친구 사이를 떠올렸을 때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 만큼임은 기억하자. 배려받아야 할 0순위는 당신의 연인이다.
이후, 남자친구는 내가 납득하고 마음이 풀릴 만큼 사후 처리를 했다. 그래도 또 연락할 수 있겠고 애초에 받아주지 않았으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 아닌가 싶어 화도 났지만, 기왕 한번 믿어보기로 한 것이니 더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내 마음은 아직도 불쑥불쑥 롤러코스터처럼 분노가 터졌다가, 평온해졌다가, 다시 미칠 것 같다가를 반복하며 괴롭고 또 아프다. 아마 억울하다 떠들지 모르는 그녀에게 바라건대, 너도 ‘딱 너 같은 찜찜한 이성 친구’가 있는 ‘우유부단한 남자’랑 꼭 연애해라. 그래서 꼭 너른 마음으로 두 연놈들을 교양 있게 품어보길. 너 이 새끼 파이팅^ㅗ^!.
9여친북스 대표·@9loverbooks*팜므팥알은 연애 중입니다. 계~속. 그가 겪은 연애를 진중함·신뢰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감정적 허세를 바탕으로 기승전병맛의 구조로 기록한 본격 연애 칼럼 ‘팜므팥알은 연애 중’은 3주에 한 번 찾아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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