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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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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르면 넓어지는 벽이여

야박하지 않게 경계짓는 나무 울타리
정원의 나라가 사랑하는 주목도 좋지만 조선향나무로 둘러쳐보는 건 어떤가
등록 2014-06-07 13:02 수정 2020-05-03 04:27
집 뒤 수돗가를 치장한 향나무 수벽. 묘목을 심어 10년 이상 가꿨다. 장마에도 끄떡없고 병충해도 없다. 강명구 제공

집 뒤 수돗가를 치장한 향나무 수벽. 묘목을 심어 10년 이상 가꿨다. 장마에도 끄떡없고 병충해도 없다. 강명구 제공

지난 3월호에 돌담의 아름다움과 돌담 쌓기의 즐거움에 관해 쓰면서 꼭 더불어 소개해야 할 주제가 생나무 울타리라고 생각했다. 거창하게 ‘미학적’이라는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눈을 즐겁게 한다는 측면에서 돌담과 생나무 울타리는 공통점이 있다. 돌담과 생나무 울타리가 선사하는 ‘눈사치’의 핵심은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간에 있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공간은 나누면 좁아지는 것이 아니라 넓어진다. 이차원적 평면이 공간으로 진화해 삼차원으로 관찰자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대개 돌담보다 생나무 울타리가 높기 마련이니 생나무 울타리가 주는 공간감은 돌담이 주는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다.

돌담과 생나무 울타리는 또한 모두 실용적이다. 축대로서 토압(土壓)을 이겨내는 견고함과 고샅길 돌담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는 강고함이 돌담의 미덕이라면 너른 구역을 아름답게 경계짓는 기능은 생나무 울타리의 미덕이다. 이곳으로 이사해 ‘나의 영역’을 모나지 않게 ‘남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내가 택한 방법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준 것이 바로 생나무 울타리다. 나무가 차츰차츰 커가니 공간 분리의 과정 또한 그러하여 집 주변 산과 들을 (나물 캐러, 도토리 따러, 그도 아니면 수액을 채취하거나 심지어 올가미를 놓으려) 수시로 드나들던 동네 분들과 타지인들로부터 야박하다는 느낌도 좀 누그러뜨리고 멀리서 보기에 눈을 편안하게 하는 풍광도 선사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처럼 아름답고 또한 기능적인 생나무 울타리는, 돌담과 달리 조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일단 조성한 뒤에도 관리에 정성을 들여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높이가 낮거나 양이 적으면 큰 가위처럼 생긴 수동식 전정기를 사용하면 되지만 수벽(樹壁)이 높으면 받침대를 놓고 동력 전정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이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매우 힘이 든다. 작업시 기계의 무게중심이 몸으로부터 멀어지면 기계의 무게로 인해 허리를 다칠 수도 있으니 필히 주의를 요한다.

수벽용으로 가장 추천할 만한 수종은 누가 뭐래도 주목이다. 주목은 잘라줘도 나머지 부분에서 싹이 잘 트기에 세월이 지나면 수벽이 매우 치밀해진다. 게다가 그 색깔이 짙은 초록이어서 꽃밭이나 정원의 배경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은 습기에 약해 배수가 필수고 동시에 매우 더디게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목 수벽의 아름다움이 주는 유혹은 이런 단점을 모두 합해 몇 배가 되더라도 쉽게 거절하기 힘들 만큼 강력하다. 그렇기에 노벨상 수상자가 정원일로 손톱 밑에 낀 때를 자랑한다는 거의 ‘미친’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도 가장 흔하고 동시에 귀한 것이 주목 수벽이다.

나는 주목 수벽도 많이 쳤지만 10여 년의 경험에서 현실적 대안으로 조선향나무 수벽 또한 만만치 않은 매력을 지녔다고 생각한다. 예전 시골에서 제사 때 사각사각 저며서 향불 사르던 바로 그 나무다. 그러나 요즈음은 웬일인지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수벽으로서 이 나무의 장점은 주목의 그것과 일치하면서도 습기에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우리 땅 우리 기후에 적응한 결과로 추측한다. 색조로만 치자면 조선향나무 수벽이 짙은 초록에 은은한 쑥색을 더하고 있기에 나는 차라리 이 녀석을 선호한다. 그러나 치명적 단점은 나뭇잎이 바늘 모양이어서 다듬고 가꿀 때 만만치 않은 번거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들여온 측백나무 계통의 다양한 수종이 시장에 소개되고 있는데 빨리 자라고 향 또한 독특한 장점이 있음에도 아직 주목을 대신할 만한 것은 조선향나무를 제외하고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유경험자의 조언을 덧붙이자면 어린 나무로 시작하라는 것이다. 기다려야 하는 갑갑증이 있지만 묘목 값도 싸고 이식이 쉬워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기다림의 미학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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