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살던 동네에 있던 허름한 공터는 샛길이면서 작은 텃밭을 가꾸는 공간이었고, 참새가 썩어가는 걸 관찰할 수 있는, 그러면서 약간의 일탈이 일어나기도 하는, 참 쓸모없으면서도 나름 동네의 다목적 배출구 역할을 하는 잉여로운 공간이었다. 아무리 ‘공동지’라 해도 요즘 공원과는 기색이 영 다르다. 공원은 뭔가 덧붙이고 내가 해석할 여력이 없다. 비어 있으나 자기의 기능으로 꽉 차 있다. 어쨌든 이 공터에서 했던 놀이의 기억이 꽤 강하게 남아 있는데 신기하게도 10살 즈음 아파트로 이사한 뒤로는 놀이와 관련한 기억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굳이 유년의 경험에 비춰보지 않더라도 공간이라는 프레임이 가지는 영향력은 상당하다. 잉여의 공간, 즉 삽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참 소중하다. 일상과 비일상이 적당히 버무려질 수 있는 이런 공간은 다양한 층위의 사건이 연결되고 또 거기서 발생하는 감각이 분배된다.
청개구리제작소가 한동안 내세운 슬로건(?)은 ‘당신의 환대와 우리의 환대가 만나는 곳’이다. 뭔가 다정함과 외향성이 흐른다. 실상 청개구리 요원들은 전반적으로 숫기가 없고 내성적이며 ‘까끌’거린다(까칠까진 아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론 상냥한 태도를 가진 이들이다). 어쨌든 이런 수사를 쓰는 것은 그런 내향성을 좀 탈피해보려는 마음을 내건 것이기도 하다.
라는 책의 뉘앙스에 슬쩍 기대 ‘옥상식탁’이라 이름짓고 ‘회합’이라 적었다. 하지만 사실 ‘같이 좀 놀아봐요’라는, 혹은 봄부터 이어진 슬픔과 분노를 그냥 목적 없이 풀어보자는 자리에 가까웠다. 작은 화로도 하나 구해서 섀시와 나무로 그럴듯한 ‘야매’ 그릴도 하나 만들고, 허브잎 넣어 데쳐낸 닭과 파로 닭꼬치도 꿰었다. 하나둘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와 맥주를 풀고 준비해온 재료를 투입해 랑데부 파전 굽고 닭꼬치 구워 하나씩 손에 쥐어주며 짧은 안부를 나누니, 이것 참 그동안 도움을 많이도 받고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날 환대의 마음은 그렇게 닭꼬치를 통해 전달했다(고 믿고 싶다). 빈손으로 와서 열심히 먹기만 한 이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결된 시대답게 이 자리가 무슨 자리인지 전혀 모르고 온 힙한 친구들도, 점점 드물어지는 이 잉여의 공간에 떠도는 독특한 흥에 살짝 고양돼 마시다 돌아갔다. 즐거웠다고, 뭔가 위안이 된다며 건네는 인사에 우리가 위로받았다. 특별히 뭘 하지는 않았다. 잉여의 공간에서 잠시 같은 시간과 기류를 공유하다 떠났다. 그나저나 은연중 내비치는 주당적 기질을 눈치챘는지 사들고 오는 술의 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 다 마시고 없다. 아아, 우리의 빛나는 한때는 그렇게 다시 알코올로 하얗게 불태워 표백되었다. 하지만 알아주시길 바란다. 어떻게 사는지 깊게 물어보진 못했지만 당신의 안녕을 바란다고. 그런데 사실 맨정신이면 더 못 물어봤다. 우리가 좀 부끄러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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