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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치는 지저분한 세계로 간주된다. 정치를 하겠다고 하면, ‘왜 그런 흙탕물에 들어가느냐’ 같은 얘기를 듣는다. 그 이유 중 하나로 돈 문제가 있다. 한국에서는 정치를 하고 선거를 하는 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게 상식처럼 돼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돈 안 드는 선거’를 강조하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선거법 자체가 돈을 많이 쓰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더라도 돈을 써서 표를 얻으려는 ‘돈선거’가 되고 있다. 선거법에서 허용하는 광고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방송은 물론 신문이나 인터넷 언론의 광고도 매우 비싸서 돈이 없는 정당이나 후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여론조사도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많이 사용된다. 홍보성으로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론조사를 많이 하면 선거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여론조사업체는 호황을 누려서 좋겠지만, 이런 방식의 선거운동도 돈 없는 후보들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더 웃기는 것은 정당 내부의 경선을 여론조사로 하는 경우 그 비용을 후보자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이다. 이번에 새정치민주연합이 경기도에서 기초지방단체장 후보를 여론조사로 정하는 과정을 보니, 참여하는 예비후보자들이 1천만~1500만원씩을 여론조사 비용으로 납부해야 했다. 돈 없는 사람은 아예 후보가 되지 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건물에 거는 대형 현수막도 문제다. 선거운동 방법을 극히 제한해놓고 대형 현수막은 허용하다보니,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비싼 임대료를 내고 경쟁적으로 목이 좋은 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최대한 크게 현수막을 만들어서 건다. 건물 현수막 하나 거는 데 몇백만원의 돈이 들어가기도 한다.
유급으로 선거운동원을 채용해서 인사를 하거나 구호를 외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선거운동원이 할 수 있는 일은 티셔츠를 입거나 피켓을 드는 것뿐이다. 그러니 기호를 알리는 수준의 선거운동밖에 안 된다. 물론 사람들을 유급으로 쓰려면 돈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모습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유급 선거운동원이 아닌 자원봉사자들이 길거리에서 정책을 알리는 유인물을 나눠주며 선거운동을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거법은 후보와 정책을 알리는 유인물 배포를 금지하고 있다. 종이 한 장으로 만든 정책유인물이 그나마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다. 유인물은 안 되고 명함은 나눠줄 수 있는데, 명함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도 후보, 배우자, 직계존·비속 등으로 제한된다.
이러니 유권자로서는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선거 하면 떠오르는 게 명함 나눠주는 것이고, 유급 선거운동원들이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 앞에서 인사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 유세차량이 돌며 시끄럽게 하고 건물마다 대형 현수막이 붙는 것이다. 이런 선거 풍경은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독특한 모습이다.
돈봉투 우려 때문에 호별방문 금지
심지어 정치 광고에 많은 돈을 쓰는 미국의 선거에서도 돈이 안 드는 선거운동 방법은 허용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호별방문(door to door)이다. 말 그대로 집집마다 방문해서 후보와 정책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이다. 호별방문은 후보자도 하고 자원봉사자도 한다.
미국의 선거운동 책자를 보면, 호별방문의 효과를 설명하는 일화가 소개돼 있다. 잠깐 소개하면, 미국 공화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 그 지역 출신도 아닌 민주당 후보가 출마를 했다. 공화당에서는 당연히 자기들이 이길 것이라고 안심했다. 그런데 선거를 얼마 안 남기고 여론조사를 해보니, 민주당의 무명 후보가 공화당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깜짝 놀란 공화당 쪽에서 원인을 파악해보니, 민주당 후보가 호별방문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유권자들의 표를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공화당은 뒤늦게 자신들도 호별방문을 하는 전략을 채택해서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 후보를 이긴다. 이 얘기는 호별방문의 효과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호별방문이 금지돼 있다. 예전에 집집마다 방문해서 돈봉투를 뿌릴 우려가 있다며 금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호별방문을 금지한다고 해서 돈봉투를 못 뿌리겠는가? 돈을 뿌리려고 마음먹으면 선거법이 어떻게 돼 있든 할 수 있다.
오히려 호별방문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돈 안 드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런 조항은 돈이 없는 후보나 인지도가 낮은 후보에게는 불리한 조항이다.
사실 호별방문은 발품을 팔며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환경친화적인 선거운동 방식이기도 하다. 석유를 쓸 필요가 없다. 반면 지금 한국의 선거운동 방식은 가장 반환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대형 유세차량이 돌아다니며 석유를 낭비하고, 대형 현수막을 거느라 엄청난 자원이 낭비된다.
그래서 지금의 선거는 ‘돈선거’에 석유선거다. 물론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있다. 대형 유세차량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후보도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경기도 과천시의 서형원 시장 후보는 대형 유세차량을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대신 시민들과 소통하고 작은 콘서트 형식의 유세를 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선거운동을 시도하고 있다. 큰 건물을 사무실로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1평 사무실’이나 천막사무실을 만든 후보도 있다.
만약 지금의 선거를 보며 짜증이 난다면, 돈선거·석유선거를 하는 후보자는 뽑지 말자. 이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리고 제발 선거법 좀 고치자. 시대착오적인 금지 조항은 삭제하고 돈 안 들어가는 선거운동 방법은 허용하자. 이제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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