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데뷔를 하지 못한 시나리오작가다. 지난해 가을부터 드라마 기획사와 계약을 하고 16부작 스릴러 드라마를 쓰고 있는데, 전체 줄거리와 1~2부 대본까지 쓰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3~4부를 쓰려고 하니 5번씩 고쳐쓴 이전까지의 작업이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 일에는 여러 사람의 역할과 필요가 얽혀 있어서, 일단은 이대로 밀어붙여 3~4부를 써야 작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절벽 끝으로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한 달간 아무것도 쓰지 못하면서 막막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을 때, 문득 시나리오를 쓰도록 프로그램된 인공지능 ‘작가 로봇’이 있다면 나보다 훨씬 더 잘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쓰는 글은 이제까지 내가 읽거나 본 문학작품, 영화, 드라마, 그리고 직접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들을 조합해 뭔가를 써내기에는 그 양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글의 구조는 탄탄하지 못하고, 각 장면을 핍진하게 그려내기에는 배경 지식이 없고, 취재를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2012년 퓰리처 수상자는 기계?만약 이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있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나온 모든 작품의 구조와 내용, 표현, 문체 등을 분석한 데이터베이스가 저장돼 있다. 그에 대한 관객 혹은 독자의 반응도 들어 있다. 모든 크고 작은 실제 사건과 모든 분야의 전문적 지식과 적용 사례, 수많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과 그에 대한 감정, 전세계 모든 공간에 대한 시각·청각·후각적 정보도 가지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사회적 이슈 등을 분석해 현재 관객에게 소구하는 소재를 찾을 수도 있다. 여기에 타깃과 개봉 시기, 작업 스케줄을 집어넣고 출력하면 되는 것이다. 이 ‘기계 작가’는 마감을 어기지도 않을 것이고, 작품의 완성도나 결과물의 흥행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의 한국 영화계처럼 ‘맞춤형 웰메이드 시나리오’가 선호되는 환경에서는, 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어떤 작가보다 경쟁력이 있을 수 있다. 실제 대기업의 영화 투자팀에서는 신별로 단순화된 모니터링 결과를 적용해 평균적이고 거슬리는 데 없이 안정적인, 결과가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작가 기계는 이 시스템을 적용하는 과정을 비용과 시간, 정확도 면에서 훨씬 효율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이것은 영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정보기술(IT) 기업인 ‘내러티브사이언스’가 만든 알고리즘은 30초면 기사 한 편을 작성할 수 있다. 미국 IT 잡지 에 따르면, 내러티브사이언스의 최고기술책임자 크리스천 해먼드는 2012년, 5년 안에 컴퓨터가 퓰리처상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고 답변했다. 2008년 러시아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쓴 소설 (TRUE LOVE)가 발표됐다. 의 캐릭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체를 조합했다고 하는데, 반응도 꽤 괜찮았다. 이런 조합으로 새로운 작품을 무궁무진하게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작가 기계가 ‘예측 불가능한’ 혹은 ‘진정으로 감동적인’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만이 남는다. 물론 인간이자 작가로서, 나는 이 질문의 답이 ‘아니다’가 되기를 바란다. 그걸 증명하려면 무엇이 인간과 기계 혹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분하게 할 것인가, 미래에 그 구분은 없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사랑할 수 있는 기계가 있다면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는 그 구분이 ‘거의’ 없어진 세계를 그린다. 주인공 테오도르는 감동적인 편지를 대필해주는 작가다. 사람들 간의 사랑을 섬세하게 표현할 줄 알지만, 정작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사랑해온 아내와 헤어져 극도로 외로워한다. 그런 그에게 새롭게 사랑에 빠지는 상대가 나타나는데, ‘그녀’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만다’다.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능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때, 언제나 ‘사랑’과 ‘예술’은 인간에게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개성과 취향을 기반으로 자의식 혹은 개인의 비전을 표현할 수 있는가, 표현하려는 욕망을 가진 ‘주체’가 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것은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여겨져왔고, 따라서 이를 ‘인간성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몸을 가진 인간이 부러워하는 사랑영화 에서 테오도르가 느끼는 혼란, 관객의 혼란은 이 고유한 인간성의 영역에서조차 기계가 인간을 능가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사만다는 상대의 감정을 (그를 비난하는 전 부인보다) 탁월하게 이해할 뿐 아니라 스스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몸이 없이도 ‘섹스’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우고, 변화하고 진화해나가려는 욕망도 가지고 있다. 작곡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는 예술, 창작의 영역에서도 뛰어나다. 목소리만 등장할지라도 그녀와 테오도르의 연애는 여느 인간과의 연애와 다르지 않게 느껴질 뿐 아니라 더 주체적이고 우월한, 예측 불가능한 존재와의 연애처럼 그려진다. 영화 중간에, 사만다에게 몸을 빌려주어 실제 섹스가 가능하도록 하려고 하는 ‘여자 사람’은 사만다와 테오도르의 사랑이 너무도 순수했기 때문에 그 관계를 동경하기까지 한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구태여 인간과 기계를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보다 더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상대가 기계라면, 그 기계보다 불완전한 다른 인간과의 사랑만을 고집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미래에 우리는, 기계라는 ‘새로운 종’과 섞여 그들과 동등하게 살아갈 수도 있는 게 아닐까?
기계와 구별되는 인간이 되려면미래를 배경으로 기계와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영화나 문학작품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미래 세계가 암울한 디스토피아일 때, 기계는 ‘잘못된’ 욕망을 가지고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을 지배하려고 한다. 인간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이 자신을 능가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통제하려 한다. 통제권과 지배 능력을 두고 기계와 싸운다. 반대로 의 로봇이나 의 터미네이터와 같이 기계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존재인 경우가 있다. 사랑을 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려고 거대한 불의의 세력과 맞서 싸운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명확하게 인간의 존재 가치와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적인 인간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좀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을 능가하는’ 혹은 ‘더욱 인간적인’ 기계의 등장은 우리에게 극단적인 두 가지 관점을 제시한다. 우리는 아주 거대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볼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지구상에서 인간이 가장 진화한 존재이며 다른 종을 이용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동물과 비교해 유일하게 ( )하는 인간으로 정의하려고 끊임없이 애써왔다. 이제 우리는 기계와 우리를 비교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만들었으나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우리의 유일한 특성을 다 가지고 있으며 더욱 우월한 존재가 나타났다고 할 때 비로소 우리는 겸허하게, 지구의 생태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생명체 중 한 종으로 우리를 자리매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동물이나 식물을 보는 ‘지배자’의 관점에도 변화가 생길 것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할 수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인간’이라는 종의 특성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그 어느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아주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우리의 특성은 무엇일까?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큰 이슈를 몰고 다니는 ‘뢰브너 프라이즈’는 매년 열리는 대회로,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인간 연합군이 심사위원과 5분간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해야 하는 대회다. 심사위원을 가장 잘 속인 인간지능 프로그램이 ‘가장 인간적인 컴퓨터’ 상을, 인간임을 가장 잘 확신시켜준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인간’ 상을 받는다. 2009년 이 대회에서 ‘가장 인간적인 인간’ 상을 받은 브라이언 크리스찬은 그의 저서 에서 인간을 기계와 구분짓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 대회(뢰브너 프라이즈)는 우리가 인간으로서 우리 자신을 꾸짖는 대회, 어떻게 하면 우리 자신이 더 좋은 친구, 예술가, 선생, 부모, 연인 등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우는 대회, 우리가 다시 우리 자신으로 돌아오는 대회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인간과도 다른 인간그러니까 우리가 기계와 구분될 수 있는 방법은, 우리 자신이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지 않는 방법은, 더 나은 능력을 갖는 게 아닐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하나의 개체로서 인간을 향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 창작을 할 수 있는 능력,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고유한 것이 아니라고 할 때 고유한 것은 더 잘게 쪼개진다.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어떤 것을 창작할 것인가, 어떤 충동을 느낄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리고 매 순간 우리는 어떤 것을 느끼는가. 내 주변의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내가 살고 있는 매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만이 다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것이 된다.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느낌’을 ‘집중해서 더 잘’ 느껴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익명적인 존재, 오직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가 되는 것.
에서 테오도르가 써준 편지는 편지를 주고받는 당사자들의 역사를 잘 알수록, 그 역사가 ‘당신의 삐뚤빼뚤하고 작은 치아가 그리워’ 같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주 작은 특징에 대한 사랑들로 이루어져 있을수록 더 감동적이었다. 기계와 다른 ‘인간’이 되는 방법은 어떤 인간과도 다른 인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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