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선수는 온몸이 광고판이다. 구단 수익의 상당 부분을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한국 프로야구 시장과, TV 중계 클로즈업이 유달리 많은 종목의 특성상 선수의 헬멧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유니폼과 장비의 거의 모든 곳이 광고주들의 표적이 된다. 외국인 선수의 모자 옆에 한국의 유명 과자 이름이 붙어 있거나, 협동조합과 아파트 브랜드가 새겨진 풍경은 가끔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오색찬란하게 새겨진 광고판이 너저분하게 붙어 있는 홈플레이트 뒷부분은 거의 시장 바닥이다. (올해 대전과 광주 구장이 홈플레이트 뒤를 관중으로 채운 것은 미학적으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메이저리그 유니폼엔 광고가 없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유니폼이나 모자 등에 광고를 부착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스포츠의 가장 자본주의적인 리그에서 다소 의아한 일이지만, 메이저리그는 선수의 유니폼엔 과자나 아파트의 이름이 아닌 땀과 흙이 묻어 있을 때 가장 멋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뉴욕 양키스는 유니폼에 선수의 이름도 기입하지 않는다(야구는 개인이 아니라 팀 스포츠라는 이유). 또 다른 마케팅 전략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유니폼에 대한 예의를 통해 야구라는 종교의 격을 높인다.
그러나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이 있으니,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모자에 너나 할 것 없이 유성매직으로 새겨넣은 번호들이다. 부상당해 이탈한 동료가 발생할 때 그의 회복을 빌며 모자에 동료의 등번호를 새겨넣고 뛰는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2000년 4월 지금은 고인이 된 롯데의 임수혁이 쓰러진 그 경기 이후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전원이 모자에 그의 등번호 20번을 새겨넣고 뛴 것이 기원이라는 게 정설이다. 시즌이 끝나갈 즈음이면 대부분의 선수들 모자는 쓰러져 나간 선수들의 번호로 가득하다.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한신 타이거즈의 오승환은 얼마 전 모자에 자신의 등번호가 아닌 숫자 ‘7’을 써넣어 화제가 되었다. 한신의 ‘7’은 늑골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게 된 동료 니시오카의 등번호였다. 일본리그의 규정에 따라 오승환은 주의를 받았지만 한국에서 야구를 배우며 체득한 그의 동료애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난 4월12일 광주에서 열린 롯데와 기아의 경기. 마운드에 선 투수 양현종(기아)의 모자와 타석에 선 황재균(롯데)의 헬멧에는 모두 ‘D.H’라는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1988년생 동기인 둘은, 청소년 대표팀 시절 동료였으나 2012년 대퇴골근육종으로 세상을 떠난 고 이두환(전 두산)의 이니셜을 모자에 새기고 뛴다. 함께 꿈꾸던 시간을 추억하면서 너무 일찍 떠나간 친구의 이름을 새겨 사람들이 그의 꿈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메이저리그가 유니폼에 광고 부착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야구에 대한 예의를 표할 때, 한국의 프로야구 선수들은 그 현란한 광고들 틈에 동료의 이름과 등번호를 새겨넣으며 야구에 온기를 입힌다. 한국 프로야구는 충분히 매력적인 리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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