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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지식을 사랑한 한 남자의 백년

버트런드 러셀의 자서전, <인생은 뜨겁게>
등록 2014-03-29 17:30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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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자서전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의 제목처럼 버트런드 러셀의 삶은, 사랑과 앎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 후끈했다. 이성에 대한 연정부터 인류에 대한 연민까지 너른 사랑의 소유자였던 그는, 학문 영역에서도 ‘편력’이 만만치 않았다. 스승인 화이트헤드와 함께 10년에 걸쳐 집필한 로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 이후에도 철학·사회학·교육·종교·정치 분야와 ‘외도’하며 70권의 저서를 분만했다. 그 덕분에 인류는 지난 세기 학문의 ‘전체 궤도’를 얻을 수 있었다.

20세기 지식인 가운데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러셀은 1872년 영국 웨일스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일생의 대부분을 잉글랜드에서 보냈으나 웨일스에서 눈을 감았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이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평화주의자 순으로 이동했다고 말했지만,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그는 천생 휴머니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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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징병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이를 거부해 케임브리지대학 강사 자격을 박탈당하기도 하고, 반전 칼럼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형을 선고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러시아를 방문해 레닌과 대화를 나눴고, 노르웨이로 가는 수상비행기가 사고 났을 때는 흡연칸에 탄 덕분으로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극단의 시대에 개인의 탁월함과 사회에 대한 기여를 조화시키려고 노력했던 그는,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안녕을 함께 고민한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러셀은 개인의 자유를 믿는 동시에 사회가 약자를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인과 사회 모두를 지키고자 했고, 어느 한쪽을 희생하는 어떤 방안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그에게 독일의 나치즘과 소련의 전체주의는 다르지 않았다.

그가 완고한 혁명가가 되지 못하고 사회주의의 언저리를 맴돌게 된 것은, 한편으로 ‘영원한’ 가치, 초월에 대한 강한 동경 때문이었다. 를 통해 제도화된 종교를 신랄하게 비판했음에도 그는 무신론자라기보다 불가지론자에 가까웠다. 10여 년 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서한문을 걷어내고 재출간한 이 책은, 사람과 지식을 사랑한 한 남자의 긍정과 낙관으로 뜨듯하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볼 것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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