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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는 결국 케인스 아니었나

니컬러스 웝숏의 <케인스 하이에크>
등록 2014-03-22 17:42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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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의 라이벌을 단 한 명 꼽으라면 아마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899~1992)의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올 것이다. 두 경제학자의 대립 구도는 ‘정부 개입’이냐 ‘시장 방임’이냐, ‘거시경제학’이냐 ‘미시경제학’이냐, ‘자유주의’냐 ‘신자유주의냐’ 등으로 자주 회자된다.

영국 언론인 니컬러스 웝숏이 지은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는 대결 구도에 초점을 맞춰 두 사람의 삶과 학문,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다. 케인스와 하이에크가 남긴 저작과 편지 등 다양한 기록과 시대적 배경을 꼼꼼하게 참조해, 개별적인 발자취도 충실하게 담았을 뿐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를 곱씹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두 사람의 대결은, 1930년대 케임브리지대학을 견제하고 싶었던 런던정경대학(LSE)이 교수로 불러들인 하이에크가 케인스의 저작 을 비판하는 서평을 에 실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실 케인스나 하이에크 두 사람 모두 ‘균형재정’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관심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실물 경제정책에 깊숙이 간여했던 케인스는 경제를 경제 자체의 도구에 맡겨두면 완전고용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고전파 경제학을 배격하고, 정부의 개입이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하이에크는 케인스의 주장대로 정부가 경제 운용에 개입하면 물가 상승 등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와 경제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고 봤다.

두 사람의 다른 입장은 (케인스), (하이에크) 등의 대표 저작이나 서신 교환 등을 통한 논쟁에서도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대공황 이후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 미국의 완전고용 법안 등에서 보듯 세계경제의 혼란을 수습한 것은 케인스의 이론이었다. 그러나 하이에크는 자신의 자유주의를 케인스의 그것과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런 노력은 1970년대 들어 끝내 빛을 봤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엄습에 따라 ‘작은 정부’로 대표되는 하이에크식 해결 방안이 대두된 것이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는 정부 역할을 중시하는 ‘케인스 경제학’이 다시 대두되는 변곡점이었으나, 곧이어 찾아온 국가 재정위기 국면에서는 ‘하이에크식 경제학’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었다.

이처럼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의 대결 양상에 대해 지은이는 기본적으로 제3자적 입장으로 서술하지만, 책을 끝맺으면서는 케인스 경제학의 대가인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말을 인용한다. 또 하이에크의 후예로 꼽히는 ‘자유시장주의자’ 밀턴 프리드먼이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정책을 펼쳐, 결국 케인스식 경제 운용을 했다는 점도 언급한다. 대결의 승자는 결국 케인스가 아니었나 무게를 싣는 것이다.

최원형 오피니언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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