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세월과 더불어 아름답고 세월을 이겨내며 튼튼하다고 돌담을 극구 칭송했으니, 이제 관념이 아닌 육체노동 실전에 돌입해보자. 먼저 내 몸의 경험에 근거해 몇 가지 기본 원칙(?)을 소개한다.
돌담 쌓기 제1의 원칙은 ‘성질 죽이기’다. 쌓다보면 ‘이거 언제 다 하나!’ 혹은 ‘어라, 삐뚤빼뚤이네!’ 등 장탄식이 나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성질 낮추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라고 느긋하게 마음먹어야 한다. 옛말에도 ‘담은 굼벵이가 잘 쌓는다’고 했다. 서두르면 몸과 마음뿐 아니라 담도 무너진다. 먼 산 바라보며 쉬다 수시로 스트레칭도 해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기 편하다. 둘째, 안 보이는 곳에 더욱 신경 써야 한다. 특히 담 쌓기 전에 아무리 귀찮아도 30cm 정도 파고 잡석을 넣어 모르타르 다짐으로 기초를 잡아야 겨울이 지난 뒤 무너지지 않고 배수도 잘된다. 아울러 돌 사이사이를 큰 돌, 작은 돌로 배합해 촘촘하게 쌓아야 한다. 셋째, 돌과 돌이 서로 맞물리게 쌓아야 하고 위로 갈수록 약간씩 좁아져야 돌담이 한 덩이가 되어 중력의 법칙이 최대한 적용된 튼실한 담이 된다. 넷째, 꼭 담 쌓기 전에 실로 수평과 수직 기준선을 잡아놓고 시작해야 눈대중의 간사함에서 벗어날 수 있다. 다섯째, 높이 쌓는다면 돌 사이사이에 시멘트 모르타르 넣기를 강권한다. 마치고 나서도 윗부분 마감 면에 시멘트로 처리해야 오래간다. 이상은 내가 수시로 위반해 톡톡히 대가를 치르며 배운 것임을 상기시켜드리는 바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돌담 쌓기 또한 쌓기 자체보다 쌓기 위한 준비가 일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쌓는 과정은 비록 고되지만 성취감도 있고 즐겁다. 그러나 준비 과정은 주로 고되기만 하다. 먼저 돌 구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가장 좋은 것은 밭이나 경지를 정리하며 나온 돌이다. 자연스럽게 세월의 풍화를 간직하고 모양도 제일 쓸모없는 빤질빤질한 것 빼고 다 있다. 나는 이 돌들을 수시로 밭 한쪽에 크기별로 모아두었다가 작업장으로 날라 사용한다. 가장 알맞은 크기는 내가 이름 붙인 ‘호박돌’이다. 잘 영근 큰 호박 정도면 내 몸이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좋은 게 ‘주먹돌’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 돌이고, 그 다음이 잘잘한 잡석이다. 돌을 구하기 힘들면 주문해야 하는데, 주로 근처 동네 소문에 밝은 굴착기 기사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흔히 ‘망태석’이라고 불리는 크기가 호박돌과 주먹돌 사이의 것도 있고 부스러기 돌 위주의 잡석 등 크기가 다양한데, 하여간 너무 크면 운반은 물론 들어올리기가 장난이 아니니 잘 선택해야 한다.
돌담 쌓기에는 면 쌓기와 막 쌓기가 있다. 나는 좀 힘들지만 면 쌓기를 선호한다. 면 쌓기는 돌의 반반한 면을 밖으로 나오게 하여 멀리서 보아 돌담이 균일한 평면이 되도록 쌓는 방식인데, 아무래도 모양을 내다보면 튼실함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이 경우 모르타르를 중간중간에 넣어주는 것이 좋다. 막 쌓기는 모양이 좀 투박하지만 튼실하다. 내가 아주 오래전에 쌓은 막 쌓기 돌담은 아직도 튼실한데, 나는 혹시 몰라 으름덩굴을 심어 줄기가 돌담을 잡아주며 타고 오르게 했는데 효과가 있었다. 돌담 위에 파스텔 계통의 옅은 보라색으로 피는 으름꽃은 내가 참으로 애지중지하는 꽃이다.
돌담 쌓는 데도 제대로 된 연장이 필요하다. 높고 거대한 석축이 아니니 전문가가 쓰는 도구는 필요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필수다. 돌 일을 오래하면 손이 엉망이 되고 발가락을 다치기 십상이니 우선 튼튼한 가죽장갑과 구두코에 철심을 넣은 단단한 안전화가 필수다. 다음으로 박힌 돌을 빼는 데 곡괭이도 필요하고, 돌이 너무 크면 부수어 사용해야 하니 튼실하고 큼직한 쇠망치도 유용하다. 쇠망치를 사용할 때는 돌이 튀어 눈을 다칠 위험이 있으니 꼭꼭꼭 안전안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돌 작업의 최대 난관인 무거운 돌 옮기기를 위해 구할 수만 있다면 덤프 기능이 있는 동력 운반기를 강권한다. 반면 외발 손수레는 작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유용한 도구이기 쉽다.
돌담 쌓기에서 최적의 시기는 가을걷이를 마치고 난 늦가을부터 초겨울 사이다. 약간 쌀쌀한 날씨에 막걸리 한잔을 걸치고 바흐의 이나 을 들으며 만추(晩秋)에 쌓는 돌담은 참으로 충만한 삶의 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사족 삼아 큰아이의 고교 시절 항변을 첨언한다. “그건 아빠 얘기고!”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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