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예능에 ‘별에서 온 남자들’이 맹활약 중이다.
한국인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4차원 캐릭터. 아예 한국인이 아니거나 한국인이라도 한국적 감수성이 거의 없는 인물들이다. MBC (이하 )의 헨리와 샘 해밍턴, 그리고 KBS (이하 )의 정준영이 있다. 주말을 ‘들었다 놨다’ 하는 남자들, 지금 한국은 왜 이들의 이국성에 흥미를 보이나.
“조균 없습니까?” ‘파인애플 참사’“267번 훈련병 헨리!”가 뜨자 지난 3월2일 의 시청률이 15.5%로 오르며 과 SBS 을 제쳤다. 슈퍼주니어 M의 멤버로 중국계 캐나다인인 헨리는 군대에 대해서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군대 무식자’. 가상이지만, 입대하면서 그가 끌고 온 여행가방엔 이런 물건이 들었다. 자외선 차단용 군대 선글라스, 쉬는 시간을 위한 랩톱 컴퓨터, 아침 스트레칭을 위한 요가 매트, 아이돌의 필수품 키높이 깔창…. 리얼리티 예능의 웃음을 위한 설정 같지만, 헨리가 하면 설득력이 생긴다.
슈퍼주니어 멤버들의 농담을 곧이곧대로 믿은 그는 군대에 대해 “맛있는 것도 많이 있다고 들었고 많이 자고 친구들도 되게 많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PX에서 총을 판다는 얘기를 듣고 현금을 준비해온 그는 “총은 많으면 좋죠… 오마이갓, 스나이퍼도 쓰고 싶어요” 같은 멘트를 날린다. 그를 면담한 장교는 “천진난만하게 (보이는) 5살에서 7살 정도의 초등학생 느낌”이라고 말한다. 헨리가 한국식 ‘군대 코드’를 전혀 몰랐으니 틀린 말이 아니다.
“조균 없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번역하면 “조교 없습니까?” 군대의 매니저라고 들었지만, 막상 들어와서 보니 행동을 감독하는 “빨간 모자” 사람이 없으니 좋다는 말이다. 인구에 회자되는 ‘파인애플 참사’도 있었다. 같은 내무반 선임의 외모를 보고 “파인애플 닮았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한국 물정 모르는 청년, 군대에서 훈련을 받다가 기분이 좋아지자 급기야 교관의 볼에 뽀뽀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분파 헨리는 마냥 웃지도 않는다. 내무반에서 선임이 “군생활의 팁은 웃는 것”이라고 하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으니 “웃음이 안 나옵니다”라고 직언을 날린다. 진정한 진심 폭로자. 천진난만한 캐나다 청년의 사전엔 ‘적당히 맞춘다’가 없다. 대충 눈치로 군기 든 척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귀엽다. 왜냐고?
그에겐 방송의 필수 요소 ‘3B’가 있다. 한국 정서를 모르니 여기서 그의 정신은 아기(Baby), 군살 없는 탄탄한 몸은 야수(Beast), 스물여섯 나이가 무색하게 해맑은 얼굴은 미남(Beauty)이다. 여기에 성별 코드도 마구잡이 청년이다. 남자들한테도 분위기 전환용으로 “사랑합니다” 해서 선임에게 “남자들끼리는 (그런 말) 안 하는 게 좋겠다”는 타박도 듣는다. 자기 검열이 없으니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문화에서 자란 한국인이 차마 하지 못하는 말들을 쏟아놓는다. 라펠을 묶고 암벽을 타는 훈련을 마치고 바들바들 떨면서 “저… 이거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는 진심 폭로자가 된다. 영하의 날씨에 탈의를 하고 얼음강에 들어가는 훈련에 대해선 “저 인생에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에요”라고 진지하게 되뇐다. 여기서 그치면 좋지만 먼저 들어간 선임들을 “미친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이”라고 덧붙이는 순진하다 못해 무구한 구석도 있다.
즐거운 불안, 묘한 안심자, 사설이 길었다. 이제 헨리를 보는 우리를 보자. 이런 헨리의 행동이 왜 재미가 있을까. 한국 남성문화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얼굴은 물론 키까지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라. 외모만큼 문화 코드도 단일하다. 이렇게 단일성이 강하니 한국 코드를 모르는 외국인의 ‘외계성’이 강해진다. 코드를 아는 한국 사람은 도저히 흉내내지 못할 4차원. 만약 한국 사람이 그랬다면, 알면서 모른 척한다는 혐의를 받았을 것이다. 김선영 TV평론가는 “아무리 엉뚱한 한국인 캐릭터도 집단 속에서 그렇게 행동하면 예의 없다고 하지만, 타 문화라 그렇다고 하면 용서가 된다”고 분석했다. 물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귀여운 외모도 한몫하지만”이라고 덧붙였다. 샘 해밍턴이 가진 외국인 캐릭터에 박형식이 가졌던 아기병사 이미지가 더해지니, 헨리는 두 배로 재미있다. 원래 위반은 흉내보다 힘이 세지 않은가. 더구나 금기를 몰라서 하는 위반은 자연스럽기도 하다.
“반응이 즉각적이죠. 1초의 머뭇거림도 없죠. 좋으면 ‘하~’ 웃고, 싫으면 ‘앙~’ 울고. 마치 강아지 같지요. 즉물적인 매력덩어리죠.” 헨리가 아니라 추사랑에 대한 황진미 영화평론가의 묘사다. KBS 에 나와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성훈의 딸 사랑이처럼, 헨리는 ‘즉물적 매력덩어리’다. 황진미씨는 사랑이를 두고 “훼손되지 않은 자연을 보는 느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헨리에게 대입해도 괜찮다. 묘하게, 추사랑도 아버지는 재일동포지만 일본말을 모국어로 하는 아이다. 덧붙이면, 헨리와 사랑이는 “한국식 개발이 훼손하지 않은 존재들”인 것이다.
사실 우리는 몸에 익은 서열문화가 지겹다. 몸은 수직적 서열에 익숙하지만, 무의식은 누군가 그것을 깨주기 바란다. 안전하게 나 아니고 다른 이가 위반하면 통쾌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헨리는 그런 욕망을 대신하는 존재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는 “그를 보는 시선에는 불안과 안심의 양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엔 그가 어떤 행동으로 주변에 당혹감을 안길까 하는 즐거운 불안, 결국 군대문화에 적응할 거라는 묘한 안도감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순치되지 않는 외국인이 결국엔 순치될 것을 알기에, ‘우리가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최후에 남는다.
군대는 ‘한국의 집’이다. 경제수준이 웬만한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한국화된 공간이다. 김선영 평론가의 지적처럼 “수직적 소통체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려면 집 안이 남에게 보이기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어야 한다. 이제 한국의 군대는 ‘표면적으로는’ 외국인도 데리고 올 만한 공간으로 여겨진다. 예전에 비합리가 난무하던 군대는 남에게 들킬까 부끄러운 공간이었다. 이제 군대는 ‘자랑스러운’이라는 상투어는 아니라도, 초대할 만한 집으로 상정된다. 한국적 방식을 극대화해 드러내고 검증을 받는다. 황진미 평론가는 “우리 방식이 나쁘지 않다는 안도가 있다”며 “서구에 대한 후진성의 콤플렉스가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일종의 문화적 상대주의”라고 표현했다. 자부심까지는 아니라도 크게 잘못되지 않았다는 안도가 있다는 것이다.
헨리와 해밍턴, 헨리와 정준영잠시, 헨리와 해밍턴으로 돌아가자. 샘 해밍턴은 ‘하얀 얼굴의 한국 아저씨’ 캐릭터다. 말만 한국 사람처럼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도 한국인과 비슷한 외국인, 그것이 샘에게서 발견한 캐릭터다. 그런 샘도 수직화된 소통체계에 들어가 의문을 품는 순간이 있었다. 김선영 평론가는 “샘이 선임에게 왜 ‘다나까’ 투를 써야 하는지 물었지만,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해주지 못했다”며 “의 위계는 가끔 부조리극 같은 상황을 낳는다”고 분석했다. 무언가 누군가 잘못했다고 지적을 받는데, 그가 잘못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샘으로 돌아오면, 그의 한국 아저씨 캐릭터는 오래갈까. 그 캐릭터의 생명력은 한국 사람 같아서 생겼지만, 계속 한국 사람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재미가 떨어진다. 충돌과 위반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처럼 순치된 외국 사람을 보면서 느끼는 재미가 지속되긴 쉽지 않다.
샘이 ‘하얀 얼굴의 한국 아저씨’ 이미지라면, 정준영은 ‘까만 머리 외국인’ 같은 캐릭터다. 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의 새 멤버인 정준영은 헨리와 비슷한 ‘서열 파괴자’ 구실을 한다. 김선영 평론가는 “은 허당 형님을 조롱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막내부터 형까지 서열이 분명한 수컷들의 집단”이라며 “독특한 막내 캐릭터인 정준영은 서열을 자연스레 허무는 구실을 한다”고 분석했다. 어린 시절부터 인도네시아, 중국, 프랑스, 일본 등에서 살다가 19살 때 한국에 돌아온 정준영은 ‘자유로운 영혼’ 캐릭터다. 한국인이면서 한국인 같지 않은 이미지인 것이다. 앞서 존박도 있었다. 냉면에 목숨 거는 ‘냉면애자’ 캐릭터도 교포가 아니면 설득력이 없었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는 “정말 몰라서 저러나 하는 혼돈이 존박의 캐릭터에 재미를 더했다”고 분석했다.
외국인 여성보다 외국인 남성이 더 뜨는 이유는 무얼까. KBS 이후 외국인 여성이 확실한 캐릭터를 굳히고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황진미 평론가는 “여성들이 모이면 민족성보다는 여성이라는 특성이 도드라진다”고 지적했다. 군대 혹은 위계로 대표되는 한국 남성의 캐릭터가 분명한 것에 견줘 한국 여성의 특성은 더 모호하다. 그래서 한국 여성과 다른 ‘거울상’으로서 외국 여성의 특징도 외국인 남성에 견줘 불분명하다. ‘원본’이 불분명하니 위반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숨은 가이드라인지금 여기의 문화적 금기는 성(性)과 서열에 있다. 그러나 성에 대한 금기는 공중파가 아직 깨기 어렵다. 그러면 남는 것은 서열문화. 서서히 무너지는 서열문화를 앞서 깨는 ‘가상의 존재’로 외국인 남성이 있다. 물론 여기도 즐거운 불안과 묘한 안심의 논리는 작동한다.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끝 부분에 좋았다.” 라펠을 타고 암벽을 내려온 헨리가 한 말이다. 그렇게 헨리는 ‘진짜 사나이’가 되고 있다.
사족처럼 덧붙이면, ‘자유로운 영혼’도 한계는 있다. 위반은 방송이라는 일종의 ‘설정의 공간’에서 그쳐야 한다. 만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같은 ‘리얼 라이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불편함을 비친다면? 퇴출을 각오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한국 사회가 외국인 연예인을 소비하는 방식이다. 강명석 편집장은 우리를 스쳐간 외국인 남자들 중에 “흑인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것도 숨은 가이드라인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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